누구나 빠르게 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 이유가 단지 속도를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으나 고속도로가 존재하는 참 이유는 다름 아닌 빠른 이동에 의한 시간 절약이다. 그런데 그런 고속도로가 정체된다면 어떤가? 답답하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초조하기도 하다.

모든 세상사가 고속도로의 이치와 같다. 무엇이든 막힘없이 술술 풀리는 것이 좋지. 제동이 걸리고 막힌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가히 좋은 현상은 아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벌써 오랫동안 고속도로의 차가 가득한 것처럼 정체 현상을 안고 있다.

지난 1월에 필자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재개했다. 1년만이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공백기에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않는 이유를 묻는 전화가 집으로 종종 왔었는데, 참 힘들었다. 솔직히 1년 만에 서비스가 재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조인은 필자가 구해야 했고, 그 사람은 1년 전에 함께 했던 동일 인물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지실 분도 계실 줄로 안다. 필자의 구인 조건이 지극히도 까다로운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하나도 까다롭지 않다. 중개기관과 필자, 그리고 보조인. 이 삼각 구도 상에서 협상을 할 때는 언제나 내 마음은 열려 있다. 다만 비록 필자의 위치가 이 서비스 내에서는 을(乙)이라고 해도 필자 본인이 취해야 할 이득을 생각하여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하면 보조인이 이를 거절했다.

물론 이는 본인에게 운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동안 단 두 통의 전화만을 센터를 통해서 받았기 때문이다. 노파심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중개기관에게 탓을 돌리는 게 아니다. 중개기관의 입장에선 보조인 인력의 품귀 현상 때문에 이용자 본인이 기관에 전화를 걸어 보조인 인력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 왜 1년 동안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우선 많은 장애인 동료에게 듣는 말인 ‘보조인이 없다.’는 말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내게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 최중증장애를 가진 필자는 움직임의 대한 욕구도 크고, 움직여야 할 이유도 많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이것이 해결 되지 않아 불편함이 많다는 것 역시 잘 아는 중개기관에 다니는 많은 지인들이 외면할 리가 없다.

두 번째 이유라고 한다면 아까 언급했듯 내가 제시한 최소한의 조건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가감 없이 말해 활동보조서비스가 돈 보다 봉사정신이 더 필요한 서비스 아닌가? 그러면 계약을 맺는 가운데 이용자가 서비스 받기 원하는 날은 맞춰줄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최소한의 딜 조건이다.

아무리 갑과 을의 관계가 성립 된다 해도 엄연히 이용자가 있어야 가능한 직종이다. 필자는 그간 다년간의 서비스를 받았고 그 때마다 보조인이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여겨 그야말로 모든 권한을 보조인에게 위임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필자 본인이 이 서비스의 주체가 될 방법은 다름 아닌 필자에게 유리하도록 시간을 짜는 것. 그것밖엔 없었다. 그러므로 시간 배정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런 소신이 있음에도 시간 협상을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필자의 유동적 스케줄’ 때문이다. 본인은 마음과는 달리 자택에서 글을 집필하는 일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에서의 ‘이동’ 섹션은 여가의 의미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유기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그럴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이용자의 권리는 없다.

물론 ‘시간 협상은 충분한 소통을 통하여 이용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나 이것은 유명무실하다. 실제로는 보조인의 아르바이트 정도 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용자의 필요에 의한 시간 소비는 힘들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용자는 이를 두고 항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일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지만 가능하므로 결국 도와주는 자의 여유정도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서비스의 특성상 누구 하나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그 관계는 깨질 수 있으므로 만일 공석이 되면 아쉬운 것은 이용자이니 침묵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결제 관련 문제도 있다. 당시 서비스를 받을 때에는 ARS 결제를 이용했다. 한 번에 최대 8시간까지 밖에 결제가 되지 않아 예컨대 10시간을 결제할 예정이라면 먼저 8시간 결제 후 두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결제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8시간에 맞춰 결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시에 결제해야한다. 필자는 농담으로 ‘용변을 보러 가다가도 결제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이후 ARS 결제 시스템은 사라졌다. 그게 딱 내가 서비스를 중단한 때부터다.

얼마 전 본지에 게재된 기고문 중에는 중증 장애인의 활동보조를 원한다는 글이 있었다. 그 글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글을 쓰신 분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도 경증 장애인의 보조를 원하는 분들도 많다.

실제로 중증 장애인의 보조를 하려면 상대적으로 인력 비율이 많은 40대에서 50대 사이의 중년층 보다는 2~30대의 청년층 보조인이 필요하다. 아무리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장애인이라고 해도 온 몸이 경직되는 장애인과 그와 반대로 근육이 전부 늘어지는 장애인이 있는데 그들에게 느끼는 몸무게의 차이는 어느 쪽이든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신체가 튼튼한 보조인을 요구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어쨌든 이러한 애로사항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증 장애인에 대한 선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필자를 도운 보조인은 하나 같이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어디 필자의 보조인들뿐이랴. 대부분의 중증 장애인 보조인은 이렇다.

이 같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보니 신뢰가 아주 돈독한 지인이 보조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인은 당시 자신이 뜻한 바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힘든 공부 가운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와 동고동락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임금의 인상 말고도 고쳐야 할 점이 많이 존재하는 활동보조서비스, 대략적인 개선점을 다시 한 번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결제 시스템 개선 (융통성 있는 결제 시스템 요망)

․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할 수 있도록 유도

․ 이용자가 필요할 때 콜하여 종전보다 합리적으로 서비스 받을 수 있도록 함

․ 정부 차원의 보조인 인력 확충 (향후 전국 지자체에서 실시할 24시간 서비스에 대비)

이정도가 되겠다. 막혀 있던 길은 언젠가는 뚫리고 원활한 운행을 할 수 있게 된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이제 정체 현상을 걷어 내고 구멍 난 도로에 다시 새 것으로 메우듯이 기존의 서비스를 열심히 손보고 또 수정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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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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