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병원이면서 서울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보라매병원 2층 수납창구에 가면 "장애인보호창구"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장애인보호창구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휠체어(전동휠체어)를 이용 하시는 환자분의 편의를 위한 것이오니 보호자가 있는 환자분은 수납창구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해석을 하면 '휠체어(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병원에 온 장애인 환자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1급 자폐성장애인 아들에게 오래 전부터 고질적인 병이 있어서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몇 년 동안 받았지만 완치가 되지 않아서 보라매병원에 약 2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인지도 때문인지 수납창구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북적대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시간도 꽤 길다.

자폐성장애인의 특성상 '기다림'을 알지 못하고 빨리 가자고 조르다가 통하지 않으면 괴성을 지르고, 손가락을 깨물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자해를 하면, 수납실 대기자는 물론 1층에 있는 사람들까지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달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병원 직원들은 흔한 일이라는 듯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처음에 갔을 때는 '장애인보호창구'에 직원도 배치돼 있지 않았고, 창구는 비어 있었다. 몇 번 방문했던 어느 날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들이 빨리 가자고 계속 보채는데 차례는 아직 멀었고, 마침 주변에 병원 간부인 듯 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어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병원 직원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십니까?"

"장애인보호창구를 설치해 놓고 왜 직원을 배치하지 않습니까?"

"아! 장애인이신가요? 번호표 이리 주세요, 먼저 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먼저 해 달라는 게 아니고 장애인보호창구를 설치했으면 직원을 배치해서 장애인들이 먼저 이용할 수 있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빨리 직원을 배치하세요."

단호한 내 항의에 한 사람이 달려가더니 '장애인보호창구' 옆 직원을 "장애인보호창구"에 배치해서 바로 수납을 하고 의사의 진료를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을 방문해서 "장애인보호창구"를 이용하고 '장애인 먼저'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보호창구'에 갔더니 직원이 보호자와 함께 오면 이 창구를 이용할 수 없으니 다음부터는 번호표 뽑고 이용하라며, 이번만 특별히 먼저 해 준다고 선심을 쓰듯 처리해 줬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환자도 보호자가 동행하면 보호자가 비장애인들과 같이 다른 수납창구를 이용하고, '장애인보호창구'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방문했더니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휠체어를 타고 혼자 온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어떤 영역의 장애인이든 대부분 병원을 방문할 때는 보호자와 함께 가고, 특히 발달장애인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보호자의 도움 없이 대형병원 이용이 쉽지 않다. 장애인과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불편이고 고통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장애인보호창구'는 장애인 이용자는 없고 쉴 새 없이 비장애인 환자들의 번호만 전광판에 점멸하고 있다. 참 '장애인 먼저'를 유별나게 실천하는 보라매병원이다. 하루에 장애인이 한 명도 이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장애인보호창구'다.

보라매병원장에게 할 말이 있다. '장애인 먼저' 운동은 모든 장애인들이 신체나 정신적 불편으로 인해 오래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비장애인들보다 먼저 일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제도이며, 명칭도 '장애인보호창구'가 아닌 '장애인 먼저창구'로 바꾸고, 혼자 왔던 보호자와 왔던 모든 장애인 환자들이 이용 하도록 조치하라는 거다.

장애인 혼자 병원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가 동행하는 것이고, 장애인이 진료 받으러 가는 것이지 보호자가 진료 받으러 가는 게 아니며, 장애인이 먼저 수납하게 해 달라는 것이지 보호자를 먼저 수납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사립대학병원은 '장애인 먼저창구'에서 평소에 비장애인 환자들의 수납을 받다가 장애인이나 보호자가 장애인복지카드만 제시하면 먼저 수납을 처리해서 배려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천방지축 날뛰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기 때문에 수납창구에서 기다리는 것은 여간 고통이 아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보호자 동행 없이 대학병원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가 동행한다.

시각장애인도 혼자 대학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많은 고통이 따른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먼저창구' 직원은 수화가 가능한 직원을 배치하고, 수화 가능 직원이 없다면 수화통역사를 배치하거나 직원이 수화를 배우도록해서 수화통역 수당을 지급하길 바란다.

서울시민의 예산이 지원되고, 서울시민의 건강을 위한 서울시립병원이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이 대한민국 어느 병원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황당한 '장애인보호창구'를 운영해서야 되겠습니까?

다음 달에 병원을 방문할 때는 저 황당한 '안내문'이 사라지고, 장애인보호자들이 먼저 수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글은 권유상 전 한국장애인부모회 사무처장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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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급 지체장애인이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1급 자폐성장애인이다. 혼자 이 험한 세상에 남겨질 아들 때문에 부모 운동을 하게 된 지도 17년여가 흘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수급대상자 이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장애인복지를 하니까 이런 거다. 발이 있으면 현장에서 뛰면서 복지 좀 하길 바란다. 아직까지 중증장애인들의 모든 것은 부모들 몫이다. 중증장애인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장애인 단체들도 자신들 영역의 몫만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얻어먹을 능력조차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 관심 좀 가져 주고, 부모들의 고통도 좀 덜어 달라. 그리고 당사자와 부모, 가족들의 의견 좀 반영해 달라. 장애인복지는 탁상공론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장애인 부모님들, 공부 좀 하세요.’ 부모들이 복지를 알아야 자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갑을 지나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혼자서 우리 자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힘이 모아져야 장애인복지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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