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정책위원회 박숙경 사무국장. ⓒ에이블뉴스DB

이글을 쓰게 된 경위는 3월 16일자 에이블뉴스에 실린 서인환씨의 칼럼에 반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인환씨는 3월 16일 ‘장애인인권보장 노력 국회 법사위가 발목 잡다’란 칼럼을 통해 장애인인권보장을 위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서기호의원이 소수의 장애인단체 의견을 들어 발목을 잡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당일 서기호 의원의 행동은 국회의원의 소임을 충실히 행한 것이었다.

2015년 3월 3일 국회 법사위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제2소위에 계류된 것은 서기호의원의 문제제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장애계의 충분한 합의를 담지 못하고, 부실한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려던 복지부와 최동익 의원에 대한 법사위 국회의원들의 문제의식이 깔려있었다. 따라서 3월 3일 국회 법사위에서 장애인복지법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서기호 의원과 일부 단체의 발목잡기로 몰아가는 것은 사건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칼럼에서 언급된 2015년 3월 3일 전후 국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일까? 이 법안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이며, 왜 장애인단체와 법률가들이 이 법안의 통과를 막아선 것이며, 서기호의원은 왜 문제를 제기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제2소위 회부에 동의했을까? 필자는 이점을 꼼꼼히 살펴봐야 당시 상황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 번째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장애인복지법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내용과 추진과정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내용과 관련하여 현재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 포함된 장애인학대예방관련 조항은 장애인권리옹호체계가 갖춰야 할 중요한 내용들을 담지 못하고 있다.

동 법안은 △장애인인권침해를 학대로 한정하고 있으며, △장애인권리옹호체계 선정 기준, 조사절차 및 권한 등에 관한 조항이 결여되어 있고 △모든 권리옹호기 갖춰야 할 독립성에 대한 규정 역시 결여되어 있다. 또한 권리옹호기관을 공공기구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권리옹호는 공공기구에 위탁해서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지시설, 학교, 때에 따라서는 국가와 지자체에 의해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인권침해 사안을 장애인개발원과 같은 공공기구에서 독립적으로 다루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실제로 장애인권리옹호체계인 P&A(Protection & Aavocacy System)가 가장 발달한 미국 P&A법률과 P&A기구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이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 무엇보다 아동 관련법에서 이루어낸 전문기관의 성과(시군구 단위 구성, 구체적인 조사 및 구제절차, 자립지원을 비롯한 사후관리 등)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렇듯 장애인권리옹호체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부실한 법이 통과된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짐작컨대 공공기구와 민간비영리단체 간에 장애인권익옹호기관으로 지정되기 위한 전달체계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일단 구축된 권익옹호기관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구축되면 후일 이를 바로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일단 법을 제정해놓고 고쳐가자’는 주장은 현실을 잘 모르는 낙관론에 근거한 것으로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할 수 있다.

다음 추진과정에서의 문제이다.

서인환씨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준비된 것이나 안철수의원실을 통해 발의된 장애인권리옹호법은 2014년 12월 31일 뒤늦게 발의된 것으로 발의안이 상임위 통과안의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주장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장애인권리옹호 관련 법제운동과 과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안철수 의원실을 통해 발의된 ‘장애인인권침해방지 및 권리옹호에 관한 법률안(이하 ‘장애인권리옹호법’)‘은 도가니 등 수년간 장애인인권침해 현장에서 옹호활동을 해온 장애인단체들이 제안단체로 나서 2012년 이후 장애계 및 관련부처의 의견을 수렴하고, 미국 등 해외 입법 사례를 분석 참조하여 심혈을 기울여 제정된 법안이다.

공익변호사그룹공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탈시설정책위 이상 5개 단체들이 제안단체로 나서 공대위를 구성하여 법제연구와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법안을 마련하고, 2013년 가을 김정록 의원실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발의가 이뤄진 이후 시점에 서둘러 안철수 의원실을 통해 2014년 5월 28일 장애인권리옹호법을 1차 발의하였다. 이후 2014년 12월 31일 수정 보완된 내용으로 새로 2차 발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2014년 12월 초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심의하던 당시 안철수의원실에서 1차 발의한 안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의과정에서는 이 내용은 전혀 고려되고 다뤄지지 못하고 현재의 대안이 별다른 검토과정 없이 통과되어 법사위까지 올라갔다.

이 법안을 추진한 복지부와 최동익 의원은 이 과정에서 장애인권리옹호법 제정을 추진해 온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당시 보건복지위 상임위를 통과하고 법사위에 올라간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장애인권리옹호관련 내용은 △학대 신고의무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장애인전문보호기관을 설치할 수 있으며 △공공기구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이상의 내용은 장애인권리옹호체계로 작동하기 위한 주요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못할뿐더러 당초 비영리민간단체 위탁안으로 되어있던 김정록 의원실안이 어떤 경위에서인지 공공기구 위탁안으로 바뀌어서 추진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권리옹호법제화를 추진했던 5개 제안단체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이 성명을 발표하고, 법사위원장과 법사위위원들에게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안건 상정을 막은 것이었다.

둘째로 왜 장애인단체와 법률가들이 이 법안의 통과를 막아선 것이며, 서기호의원은 왜 문제를 제기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제2소위 회부에 동의했을까?

이점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3월 2일과 3일 법사위 회의가 진행되던 당시 국회 내 상황을 살펴야 한다.

3월 2일과 3일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법사위 안건에 올라있지 않았다. 안건상정을 위해서는 장애계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최동익 의원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사‘한국장총’)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에 동일한 양식의 동의서를 보내 직인을 찍어 보낼 것을 요청했고 이들 단체들은 직인을 찍은 동의서를 최동익 의원에게 보내주었다.

3월 2일 오후 최동익 의원은 두 개 단체 직인이 찍힌 동의서를 법사위원장실에 보내 장애계 합의가 이뤄졌으니 안건상정을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두 개의 단체는 2014년 12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법사위 통과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법사위원장과의 면담과정에서 안건상정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단체에 속해 있었다.

이중 한국장총은 애초부터 ‘장애인전문보호기관을 비영리민간단체로 확대한다면 장애인복지법 대안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따라서 동의서를 제출해도 이상할 바가 없었다.

그러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경우는 달랐다. 연구소는 ‘장애인권리옹호법’ 제정운동 제안단체로 장애인복지법 일부 개정안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연구소가 동의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모두들 믿기어려워 했다. 3월 2일 연구소명의의 동의서를 받자마자 법사위원장실에서 안철수 의원실에 진위여부 확인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연구소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중앙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소가 복지부와 최동익 의원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 입장을 유지하며 동의서제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듯하다.

이 같은 압박감은 당시 연구소의 실무진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사례는 장애인권리옹호체계가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독립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장치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한편 복지부와 최동익의원 등이 단체에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문제가 많았다. 이들은 치우침 없이 장애계 관련 단체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지만 압력을 가하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중앙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위탁을 받고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거대 단체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동의만을 구했을 뿐 나머지 단체와는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이상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입법과정에서 노정된 △ 장애인권리옹호단체들과 공익법률단체들의 의견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무리한 입법을 추진해 온 과정 △ 법안의 부실함 △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재위탁을 빌미로 단체에 압박을 가한 상황 등은 서기호 의원 뿐 아니라 법사위 및 복지위 일부 의원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 대안에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시급히 통과되어야 한다는 데 필자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권리옹호관련 내용은 단순히 추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권리옹호에 관한 법은 도가니, 염전노예, 원주귀례사랑의 집 등 처참한 인권침해 상황으로부터 효과적으로 피해자를 구해내고 지원하기 위한 섬세한 장치를 갖춰야 할 중요한 법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권리옹호체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위원장의 번안신청을 통해 재심의를 통해 장애인권리옹호체계와 관련된 내용은 신중히 제정될 수 있도록 하고, 남은 4개 대안을 중심으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추진하기 바란다.

효율성을 빌미로 부실함을 알고도 입법을 추진할 것인지 이미 대안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대안을 담은 입법을 추진할 것인지 국민으로서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글은 박숙경 탈시설정책위원회 사무국장(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교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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