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구 회장님이 또 다른 길로 떠나셨습니다. 깊은 슬픔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초저녁부터 손님이 와서 기절직전까지 술을 먹고 이제야 깼습니다. 문득 남은 날을 세어 보니 2014년은 다섯 손가락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무한대의 영광의 시간을 보내고 올 해는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은 어찌 변할 까요?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마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이후를 알게 된다면 두려움도 없겠지요. 또한 준비를 하게 될 테니 더더욱 그러 할 것입니다.

미력한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대한민국은 이후 그리 아름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성장의 시대가 그것도 긴 시간에 걸쳐 도래 할 것이고, 어쩌면 퇴행의 길을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부터 노년을 아우르는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순위를 차지하고 있고, 앞만 쫒다가 한 숨을 돌릴 40대는 암이 사망원인의 일 순위가 됐습니다. 즉 자살이든 암이든 사회적 타살 앞에 대한민국은 혹독한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영광의 날이라 생각했던 일류대학, 좋은 직장, 행복한 가정은 가당치 않은 꿈이 되었고, 혹시 그리 된 들 영원을 약속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이제 100세 시대에 도래 했다는 것은 과학의 승리가 아닌 재앙의 전조가 될 것임을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50대에게 살아온 만큼 살아갈 날이 먼 길로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돌아볼 90년대는 장애인당사자에게 주류사회와는 달리 아이러니 하게도 희년의 세대이었습니다.

90년대는 4월 20일 경이 되면 유독 장애 관련 신문기사에는 자살 혹은 부모와 동반 자살 기사가 많았습니다.

1989년 4월 16일 장애운동 사상 최초의 대중 집회이었던 명동성당 집회에서 주요 슬로건은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었습니다.

당시 장애인선배들의 관점에서는 장애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라는 반증입니다. 90년대 장애인당사자, 부모님들의 자살과 동반 자살의 뒤안길은 인간이 아님에 대한 분노의 최종적인 표출이라 할 것입니다.

IMF가 오고 자살과 동반 자살로 대변되는 분노는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사회학적 분석에서는 절대빈곤에서 상대적 소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합니다.

아!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라는 정서가 그나마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님들께 위안(?)을 준 것입니다.

2000년대를 넘어와 장애인당사자들은 간접적인 타살에서 직접적인 살인을 목도하게 됩니다.

중증장애인당사자들의 전면적인 사회 변화에 대한 전투적 운동이 생성되고 이제까지의 자살과 동반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직접적인 원인을 밝혀내게 됩니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보일러에서 새어 나온 물이 온 몸을 감싸는 냉기와 함께 자신의 발가락에서 마지막 숨을 멈췄던 가혹한 시간까지 엄습했던 것을.

활동보조인이 없어 불길이 자신을 감싸 안는 가혹한 순간의 멈춤 들을.

절대 빈곤의 늪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장애운동에 바쳤던 헌신과 희생들을.

대한민국이 옥 죄여 왔던 장애운동가들의 죽음의 순간과 희생과 헌신의 기억들을.

이제 장애운동이 한반도 남단에서 시작된 지 반 세기가 되어갑니다. 성경에서는 반세기마다 희년이 올 것이니 기쁘게 맞이하고 준비하라 하십니다.

모두 질곡이라 하지만 장애운동의 관점에서는 희년이 될 것입니다. 90년대 그들의 비명이 장애인당사자들에게는 위로와 희년(?)의 시작이었듯이 2015년에는 돌아 볼 희년의 반세기와 이후 희년의 장을 열어갈 새로운 반세기의 서막을 장애운동이 열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장애운동은 주류 사회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내도록 하는 기준이고 잣대이었듯 이 말입니다.

이것이 거짓이라 해도 제발 장애운동가들이 죽지 말았으면 합니다. 90년대 선배들이 내뱉었던 긴 한숨의 순간들을 우리가 희년으로 바꿔 냈듯이 지금의 절망 역시 질곡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발 장애운동가들이 죽지 말았으면 합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남아있는 2014년이 긴 시간을 두고 다짐해야 할 희년의 서막은 살아남는 것이고 생존하는 것이며, 60이 되고 70이 되어서라도 후대들이 두려움 중에 있을 때 넉넉한 웃음으로 따뜻하게 안아 줘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발 장애운동가들이 죽지 않았으면 합니다. 살아남기를 기원 드립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남아있는 2014 끝자락에서

*이 글은 장애인당사자인 이상호 전 서울시의원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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