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바람과 염원하는 것이 다르다. 무엇이 본인에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판단해 본인에게 더 필요한 것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런 선택지가 없는 사람. 바로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바라야 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잘 사는 것. 배뇨와 배변에 경우도 같다. 실수 없이 내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는 것. 이것 또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포스터. ⓒ 네이버 영화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장애인의 바람이 딱 거기까지인 줄 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다. 장애인 역시 그보다 높은 차원(?)의 고민을 하지만 그저 인내하고 살아가고 있다. 15년 전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내 주장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앤드류(Andrew)라는 로봇이 있다. 로보틱스 사(社)의 NDR-114 기종 로봇이다. 가정용 로봇이기 때문에 다른 로봇들과 같이 프로그래밍 된대로 상냥하며 가사 일을 돕긴 하지만 앤드류에겐 여느 로봇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사고력이 있고 감정이 있다.

앤드류를 들인 리처드는 그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학습할 것을 권유한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이처럼 앤드류라는 로봇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며 그가 느껴가는 것들을 진중하게 그린다.

수많은 전쟁의 이유는 바로 ‘자유’

몇 십 년 동안 앤드류가 독서와 경험을 통해 느낀 것. 그 첫 번째는 수많은 전쟁의 이유가 바로 ‘자유’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인류 창조 이래 사람들은 줄곧 자유를 꿈꿨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또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간절했던 것이 자유였음을 알고 자신도 누구에게 속박 당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그의 주인인 리처드에게 ‘독립 선언’을 한다.

장애인의 숙원이 뭘까? 아마도 장애 없이 사는 것이리라. 장애에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붙들릴 수밖에 없는 부자연스러움이란 늪에서 벗어나고 싶으리라. 나 역시 같다. 앤드류와 나와의 케이스는 다르다. 하지만 그 형태는 달라도 바라는 것은 일치한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사람. 난 아직도 그런 이들이 부럽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마틴 가(家)와의 독립 선언 후 앤드류는 자신의 동료를 찾아다닌다. 전국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동료들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수집한 뒤 일일이 동료들의 생사(生死)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미 기능이 정지 되어 있는 상태. 마지막 하나 남은 동료를 찾아 발길을 옮기자 우연치 않게 자신이 창조 된 근원지를 찾았다. 그곳에서 갈라테아라는 여자 동료를 만나는데 그녀 역시 로봇이 가진 한계가 있음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고 실망한다.

오랜 시간의 여정 끝에 동료 ‘갈라테아’와 조우하다. ⓒ 네이버 영화

하지만 실망하기엔 일렀다. NDR-114를 처음 개발했던 사람의 아들인 루퍼트가 로봇을 사람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

그 모습을 본 앤드류는 더 이상 로봇의 모습이 아닌 사람처럼, 아니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루퍼트에게 연구비 지원을 약속하며 자신을 인간화(人間化)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그간에 로봇이라고 알게 모르게 무시당했던 날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의 소원대로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마침내 인간의 모습이 된 앤드류. ⓒ 네이버 영화

나를 포함한 장애인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러 차례 집회도 갖고 있고, 이것저것 요구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신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어쩌면 당연하고 또 소박한 바람이다. 이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앤드류의 의지와 같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람인 것을 인정받고 싶다

로봇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완벽 변신한 앤드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전에 자신이 묵었던 마틴 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자신이 모셨던 작은 아가씨 아만다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여인 포샤.

앤드류가 사랑하는 여인 포샤. ⓒ 네이버 영화

앤드류는 아만다의 손녀딸인 포샤에게 첫 눈에 반하고, 후에는 포샤의 약혼자에게 질투어린 마음도 내비친다. 로봇으로선 할 수 없던 일도 그녀 덕에 가능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외모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 때문이었다.

포샤는 결혼을 앞뒀지만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앤드류에게 끌렸다. 포샤 자신도 앤드류에 대한 감정이 있었음에도 로봇에게 마음을 줄 수는 없다고 이야기 했다.

포샤의 이야기에 화가 난 앤드류는 외모 뿐 아니라 장기(臟器)도 바꿀 것을 결심한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앤드류는 포샤의 마음을 얻지만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어느새 늙어버린 포샤는 자신은 언제까지고 살고 싶지 않다고 밝히며 인생은 왔다 가는 것이라고 앤드류에게 이야기한다.

포샤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앤드류는 불멸을 가능케 하는 전자두뇌를 포기한다. 그리고 인권재판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인정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물론 매사에 인정받을 필요야 없겠지만 사람들에게 나의 나 됨을 인정받는 것은 살아가는데 기폭제가 된다. 나라는 존재가 아닌 장애인 혹은 병신(病身)이란 선입견은 그릇된 것이며 소용없는 것이다. 내 신체에 장애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몸의 병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 본인의 마음을 외면하고 겉만 보는 행위는 지양돼야 한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은 리얼리티 적인 부분에선 거리가 멀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꼭 봐야 할 영화일 것 같아 내 생각을 담아 소개한다. 장애인의 그릇된 편견이 사라지는 날이 결코 200년 뒤가 되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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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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