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인 벽은 대단히 유익하다. 추울 때는 바람을 막아 주고 더울 때는 햇볕 등을 차단하며 외부와의 경계로 작용하여 사람들을 안심하고 살아갈 있도록 해 준다. 하지만, 벽이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면 이런 유익함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벽”만 남는다. 그 벽은 다이아몬드 보다 더 단단하다.

남한과 북한 간의 벽인 휴전선이 반세기가 넘도록 요지부동이고, 70년대 후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벽이 생겨 아직도 굳건하며 사람들의 마음에도 수많은 벽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이 모두 벽이 인간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결과다.

그 중에 단언컨대 최고는 언어의 벽이다.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사회 자체가 형성이 안 됐을 것이다.

이렇게 언어가 중요한데, 이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말을 못하면 무시는 물론 바보 취급당하기 일쑤다. 말을 못한다고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것이 정당할까?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소외시킨다. 왜냐? 인간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벽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벽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그 속도에 맞지 않고 느린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그럼 이 벽을 뛰어 넘거나 없애 버려야 한다. 없애 버리는 것은 휴전선처럼 굉장히 어렵다. 물론, 이 벽도 아주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벽이 깨지기만을 기다리면 대단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깨질까 말까이다.

그래서 뛰어 넘을 수밖에 없는데, 뛰어 넘기 위해서는 뭔가 짚고 뛰어 넘을 도구가 필요하다. 그 도구를 이용하여 벽을 뛰어 넘거나 균열의 속도를 빠르게 진행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언어 장애인들이 이용할 도구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다. 컴퓨터의 워드 프로그램에 글자들을 입력하여 그 내용을 소리로 변환시키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요즘은 노트북과 테블릿PC 그리고 텝북 등이 출시되어 휴대하고 다니며 사용하기에 편리해졌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좀 부유하고 손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하는 언어 장애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나 같은 언어도 안 되고, 손도 쓸 수 없으며, 가난한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사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 사회에서 나 같은 중증장애인들은 모두 바보 취급을 당하고, 소외 당해야 할까? 그렇게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우리도 당당한 인격체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도 가입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제21조, “표현과 의견 및 정보 접근의 자유”에서도 의사소통보조기기(AAC)를 국가에서 제공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당사국은 수화, 점자 및 대안적인 의사소통 수단과 이들이 선택한 모든 다른 접근 가능한 의사소통 수단, 방법 그리고 형태를 통하여 장애인이, 타인과 동등하게, 정보와 사상의 탐구, 수용, 전달의 자유를 포함한, 그들의 표현과 견해의 자유를 행사 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다음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a) 대중을 위한 정보를 다양한 장애 유형에 적합한 접근 가능한 형태와 기술을 통해 적절한 방법으로 추가 비용 없이 장애인에게 제공.

(b) 공식적인 상호작용 과정에 있어서, 장애인의 수화, 점자 그리고 대안적인 의사소통 수단, 장애인의 선택에 의한 모든 접근 가능한 수단, 방법 그리고 형태의 사용을 수용하고 용이하게 하는 것.

또한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정보접근ㆍ의사소통에서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1항을 봐도 의사소통보조기기를 국가에서 제공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①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정보통신망 및 정보통신기기의 접근ㆍ이용을 위한 도구의 개발ㆍ보급 및 필요한 지원을 강구하여야 한다.

우리 중증장애인들도 국민이다. 그럼 국가가 나처럼 중증장애인도 사회에서 존중받고 어울리도록 해 줄 의무가 있다. 그렇게 안 해 주면, 해 달라고 할 “권리”도 우리에게는 있다.

따라서 국가는 각각의 장애에 맞게 의사소통보조기기를 언어 장애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고, 우리는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나 같은 경우 집안에서는 데스크탑에 롤러트랙볼2를 설치하고, 클리키라는 화상키보드를 깔고, 왼발 하나로 워드 프로그램에 글을 쳐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출하거나 컴퓨터가 있어도 이런 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외출하던지 집 안에서 던지, 어딜 가서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서는 테블릿PC나 텝북에 롤러트랙볼2와 클리키 등을 설치해서 사용하고 싶다.

또 손과 발 그리고 입조차 자유롭지 못하며 타이핑의 속도가 느리다면 뇌파인식기를 설치하여 글자를 소리로 변환시켜 주는 의사소통보조기기가 필요하다.

최종적인 목표는 거치장스럽게 위에 예로 든 것들을 모두 다 없애 버리고 영국의 “스티브 호킹”박사와 같은 거의 완벽한 의사소통보조기기를 언어 중증장애인들에게 제공하고 우리의 재능들이 마음껏 발휘하는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언어 중증장애인도 교육받고 직업도 갖으며 세금도 내면서 당당한 국민으로 살고 싶다. 또 의사소통보조기기로 연애를 하여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결혼도 하며, 자식도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

내가 만약 말만 잘했으면 정치가가 되었을 것이다. 정치가가 되어서 내 여러 글에서 주장하는 것들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장애계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또 솔직하게 때로는 모사꾼도 되어서 개인적인 치부도 했을 것이다.

이런 컴퓨터 장치만 있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시도를 해 보겠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인간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벽을 끄집어내 모래알 같이 산산히 깨버릴 것이다.

그럼 나 같은 언어가 안되는 중증장애인들도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참으로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에이블뉴스 독자 차강석 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차강석 님은 사지마비에 언어 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으로 문학인이기도 합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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