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재단, ‘지원사업평가결과 우수단체’ 해외여행 단체 사진.ⓒ한국장애인재단

늘 잠잠하기만 하던 복사기에서 벅벅 잉크 찍는 소리가 들렸다. 팩스가 왔나보다. 그런데 아쉽게도 잉크가 부족한지 앞줄 몇 자만 보여 어떤 내용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전화를 걸어 공문 내용을 확인 했는데 예상 밖으로 우리단체(道와知)가 우수단체로 선정돼 해외연수를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 최 간사님의 알뜰함과 고생한 흔적이 물씬 담긴 연수 관련 내용을 담은 메일들을 받아 보면서 나는 설렘보다 지병으로 인해 긴 일정을 수행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밀려와 며칠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여행 기간 동안 함께 해 주신 분들의 이해와 배려로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지면으로 나마 함께 해주신 그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우여곡절 속에 떠나게 된 지난 8월29일부터 9월5일까지 6박8일의 연수에 대한 후기를 이어 가겠다.

미술을 전공한 나는 해외연수 일정 중 ‘클림트’ 와 ‘에공쉴레’의 원작을 볼 수 있다는 일정표를 보는 순간 긴장과 설렘은 더욱 배가 되었다. 화가의 꿈을 키우던 대학시절 특히 클림트는 나의 스승이었고 그의 작품을 흠모하여 모사도 해 보는 등 나의 작품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작가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스트리아에 도착해 두 거장의 작품을 둘러보게 된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클림트의 은은한 금빛 색채와 옥빛 영롱한 푸른 채색들이 이제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버린 생에 대한 환희와 미적 감수성들을 송곳처럼 마구 찔러댔다.

몽롱한 클림트의 색상들이 나에게 질문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반문했다. 나는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하는가!

그 반문들과 동시에 생에 대한 희망찬 소망과 찬란한 기대 위에 마치 마약을 흡입하듯 작품에 몰입하던 내 자신의 푸른빛에 둘러싸인 한 때의 시대가 눈앞에서 스크린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그 동안 묵혀있던 갖가지 소회가 물밀듯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와 쓰라리게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소위 한창 잘 나가던 화가의 꿈을 접고 이 나라, 이 사회의 거대한 균열처럼, 철벽처럼 버티고 있는 차별장벽에 저항하는 장판(?)에 발을 딛게 된 연유는 2007년 청각장애로 부당해직을 당한 남편의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나의 슬픔과 분노는 평생 꿈꾸던 화가의 꿈을 접게 하기에 충분했고 생소한 활동가로 변신해 활동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루빨리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도 그들의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평등한 환경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절망적인’ 소망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연수 후기가 잠시 무거워 진 것 같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연수 후기로 돌아가야겠다.

연수 기간 중 다양한 국가에 대한 문화 충격은 관광 내내 설렘의 연속이었고 마음 속 작은 탄성으로 나타났다. 만일 내가 외국에서 태어났다면 여러 모양과 바디랭귀지 등으로 표출하지 않았을까?

특히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우리가 본받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예로 우리나라의 경우 한옥 마을이나 일부 인사동 길과 같이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는 공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나 연수 국가들은 오랜 기간 동안 당시의 건축양식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보수 작업을 진행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이제는 좀 더 편리하고 현대적인 실용 문화들을 받아들일 법도 한데 고집스럽게 복원하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또한 현대적인 문화들을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흡수시켜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장인정신으로 인해 거리는 한 폭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풍경과 어우러져 자유롭게 오가는 시민들의 표정 속에선 이방인이 보기에는 당당함까지 엿보였다.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바쁘게 오가는 우리에 비해 이들은 걸음걸이조차 소처럼 느긋하고 느려 터져 어찌 보면 게으름뱅이 같고, 깨달음 한 자락 얻은 산 중 사찰의 도인들 같았다. 거기다 상점의 간판들은 어떤가?

마치 간판들만 사는 세상 같은 한국에 비해 이곳의 세상은 그 흔하고 요란한 간판조차 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이곳이 왜 이렇게 조용하고 낯설었는지를 뒤늦게 알았다고 해야 하겠다.

오히려 간판이 별로 없는 이 낯선 타국의 생활문화가 정적인 동양문화, 동양의 정신세계가 몽땅 옮겨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내가 태어나 자란 한국이 이질적인 세계가 아니었을까 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것들에서 이들의 자부심과 내적 충실이 배어나는 듯 했다.간혹 자투리 벽면이나 다리 밑 등에 아마추어 작가가 낙서를 한 듯 작게, 또는 큼지막하게 휘갈긴 벽화들을 그대로 방치한 것들을 보면서 이곳이 서양에 속한 외국이라는 인상을 주는 점이 이질적으로 와 닿은 것도 ‘조용한 느림’에서 느낀 반작용이리라.

여행을 마무리 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어 가는 중 올해 11월에 진행되는 ‘제1회 국제 장애인 인권 전’에 출품할 작품 구상이 여전히 전혀 진척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도 지난 7여년의 분노와 슬픔들이 내 안에 움츠려 든 창작에 대한 갈망들을 모두 지워버린 것은 아니라는 재확인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손가락들이 일어나 슬그머니 주먹을 움켜쥐었다.

서울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나는 사무실의 한 귀퉁이에서 몇 년간 방치된 탓에 곰팡이와 먼지로 쌓인 굳어터진 물감들과 붓 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작은 소품 두 점을 준비 중이다.

이번 여행은 그동안 나를 잠식했던 슬픔과 분노를 밀어내고 나에게 다시 ‘붓’ 을 잡고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힘을 준 뜻 깊은 계기였다고 결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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