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는 나치 시절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 있던 1100여 명의 유대인들의 목숨을 건져낸 실화를 다룬 영화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그 속에서의 구출을 다룬 영화 같은 사건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면 믿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나치 시절 유대인들과 함께 많은 장애인들이 학살됐는데,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아직도 시설에 수용되고 인권을 침해당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2012년 발생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은 사이비 복지가가 21명의 발달장애인들을 자신의 친자로 등록해서 시설에 감금하고, 그들의 인권을 끊임없이 침해하며 다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슬픈 사례다.

장애인들에게 강제 노역을 일삼았고, 도망가면 잡아와 구타하고 장애인이라는 문구와 이름, 연락처를 문신으로 새겨 놓았다. 죽어간 이들의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병원 냉동고에 방치했다.

그곳에서의 참혹한 인권침해는 인권활동가들에 의해 발견돼 4명의 발달장애인들이 겨우 구출될 수 있었지만, 말기 암을 진단받았던 40대 발달장애 여성 장성아씨는 자유를 찾은 지 6개월 만에 숨지고 말았다.

고 장성아씨 같이 늘 잊혀진 존재였고 그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돼 왔던 성인 발달장애인 지원 문제에 대해 이제는 최소한의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등을 포함해 약 15만 명의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살고 있는데, 성인 발달장애인의 20%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활시설에 수용되어 집단생활을 하며 지낸다.

생활시설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5만여 명에 이르며, 이들 중 발달장애인이 3만여 명이나 된다.

발달장애인들이 끊임없이 생활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국가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시설 거주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발달장애인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발달장애인들은 학대와 착취, 성폭력의 위험에 놓이기 쉬우며, 경제적 지원이나 재활지원이 없어 의미 있는 활동을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재가 발달장애인의 절대다수가 가족에게 의존하거나 방임되고 있는데, 발달장애인 가구의 44.7%가 수급권 생활을 하고 있는 취약계층이라는 복지부 조사결과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발달장애인들도 가정과 동네에서 인간답게 살도록 권리를 지원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의 권리와 지원서비스를 명시한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는 과제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전국의 4개 장애인 부모 단체가 2년 전 ‘발달장애인지원법제정추진연대(발제련)’를 구성해 법 제정 운동을 펼쳐왔다.

발제련은 작년 5월에 집권 새누리당의 민생 1호법안으로 김정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벌률’이 1년 동안이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며, 지난 3월 부터 국회 이룸센터 앞에서 조속한 입법화를 촉구하는 무기한 농성을진행하여 이제 3개월 반을 넘기고 있다.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우선 추진해야할 국정과제 라고 밝혔고, 복지부 장애인정책국도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제1의 우선과제라고 말한 만큼 필요예산을 반영한 진지한 법안 검토가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법에는 공적인 지원센터에 의한 발달장애인 지원서비스 구축, 부양의무와 무관한 최저임금 수준(100여만원)의 소득보장, 공무원과 대기업의 0.5% 발달장애인 의무고용 규정, 의료비 및 발달재활 비용 지원 등 규정하고 있는데 매우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소득보장액 1조 6천억원을 비롯해 연간 2~3조원으로 추산되는 예산에 대해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막대한 예산 소요 때문에 법 제정이 곤란하다거나, 무상의 예산지원이 다른 소외계층이나 다른 유형 장애인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런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 부재로 나타나는 시설화는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에 반하며, 자기결정과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시설거주시 소요되는 비용은 지역사회 거주시 보다 2배가 넘는다. 발달장애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설거주인 5만여명에 대한 지원예산이 대략 연간 1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원 예산은 지나친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발달장애인 가족에 대한 기존의 기초생활 수급액을 제외한 실질적인 소득보장 추가액은 8천억원 정도로 예상되며, 법안에는 당장의 국가재정 부담을 고려하여 특별기금을 규정하였고 소득보장 예산도 단계적으로 증액한다면 충분히 실현가능한 수준이다.

탈시설화는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지키는 지름길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국가예산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이유들로 선진국들은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법 제정을 통해 생활시설 신설을 억제하고 시설거주인들을 지역사회로 환원시키는 탈시설 정책을 펼쳐 왔으며, 우리도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 3월, 법제정 촉구 집회에서 서울 성북구에 사는 발달장애 청년 조영조군은 “예산 때문에 입법이 미뤄진다면 내년도 내후년에도 안되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하였듯이 당사자들에겐 절박하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법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희망한다.

[발달장애인법 주요내용]

1.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고려한 개인별 맞춤지원 구현

- 만 18세 이상 지적·자폐성장애로 등록된 사람 또는 뇌병변·간질·언어·시각·청각 장애 중 18세 이전에 발현된 지적장애 또는 자폐성장애를 동반한 사람 등(지적.자폐성장애인 136,454명)

- 장애 등급과 소득과 무관하게 개인별 서비스 및 급여를 판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서비스조정자, 발달장애인 및 보호자, 발달장애인 서비스 제공자,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개인별지원팀 구성 및 개인별지원계획 작성

2.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적인 지원센터를 구축하여 서비스 조정

- 발달장애인서비스를 통합 관리하는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개설하여 서비스조정자가 개인별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서비스 제공기관 연계, 종합적인 사례 관리를 담당

3. 발달장애인의 높은 실업률, 낮은 사회경제적 수준 등을 고려하여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보장

4. 발달장애인의 낙후된 고용 환경 개선을 위한 경쟁, 지원, 보호 고용 지원 강화

- 300인 이상 사업주의 경우 1000명당 5명의 비율로 발달장애인 의무고용제도 실시

5. 발달장애인의 생활시설 중심의 거주 환경을 지역사회 중심의 독립 거주 환경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 완전독립형, 부분독립형, 공동생활형, 요양형 등 4개의 거주환경을 최소제한환경의 원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발달장애인주거지원센터를 시·도별로 설치·운영

6.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 촉진을 위한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 참여 기회 확대

7. 발달장애인 의료지원 및 물리, 작업, 언어, 심리 등 발달재활 지원

8. 발달장애인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및 자기권리 옹호 기회 제공

- 자조그룹, 동료상담가 배치

9. 발달장애인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발달장애인복지사 양성 및 배치

10. 발달장애인의 인권 침해 예방 및 권리 구제를 위한 권익옹호센터 설치 등 옹호 체계 마련

11. 발달장애인특별기금 등 재원 확보 대책을 조항으로 명시

*박인용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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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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