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장애인 문제는 개인 또는 가족의 문제로 치부되었으며,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왔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거부감의 대상이자 깊은 이질감의 원천이며 낮은 지위의 표상이다. 그리고 장애인은 신체적 손상을 지닌 몸 자체에 ‘무능력’과 ‘무가치’를 부여받은 존재로 여겨졌다. 장애인에 대한 이러한 가치 규정은 ‘이 사회에서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바로 장애인’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선입견은 장애인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게 하며,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 속에 나타나는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은 장애인이 느끼고 겪는 ‘장애’가 그들의 신체적 손상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바로 사회가 그렇게 느끼고 겪도록 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것들을 없애고 보다 질적인 삶을 살기위해 도와주는 곳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자립생활 운동은 60년대 미국의 버클리대학에서 태동하였다. 병원에서 통학하던 한 학생이 자신의 거처를 자신의 집으로 옮기면서 시작된 운동으로 장애인의 삶이 자신들의 선택권 행사 하에 놓여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실제적으로 확인시킨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도 2000년 이후 자립생활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쉽게 말해 보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란 어떤 곳이며 무슨 일을 하는 곳일까? 난 현재 한 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란 방에만 있던 장애인들을 사회로 나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을 건널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돌다리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돌아보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활동보조 사업을 통해 각자 밥벌이 싸움들만 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모든 센터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돌다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첫 번째 취지는 장애인들의 자립이며, 두 번째는 중증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이며, 세 번째는 인권옹호이며, 네 번째는 장애인식개선, 끝으로 장애인들간의 동료상담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위의 다섯 가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활동보조서비스 모니터링을 동료상담이라고 여기지 말고 제대로 된 동료상담을 하길 바란다. 또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마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차별을 하고 무시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립센터의 직원의 개념은 꼭 비장애인이 장애인보다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장애인들의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길 바랄 뿐이다. 장애인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가 아닌 능력 있고 노력하는 장애인이 되길 바란다. 이 글의 목적은 돈이 중요하지만 돈을 쫒아가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아닌 정도를 걸을 수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오늘의 두 번째 주제는 활동보조 서비스이다. 모든 사람들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제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 각자 각자에게 의존적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혼자서 수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차를 스스로 수리하는 대신에 수리공에게 그것을 맡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에 관하여 충분히 알지 못하거나 그럴만한 시간이 없기도 하다.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의 지식과 자원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들은 능력의 결핍이나 시간의 부족을 보충할 수 있듯이.

그렇다면 '활동 보조'라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우리의 장애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스스로 수행할 수 없는 혹은 우리가 잘 하지 못하는 활동들이다. 우리는 좀 더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가 잘 수행할 수 있는 활동들을 더욱 전문화할 수 있는 에너지를 소유하기 위하여 그밖에 일들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이다.

'사적인(personal)'이라는 말은 그 서비스(assistance)가 자신의 개별적인 욕구에 따라서 맞춤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적이라는 말은 소비자가 어떠한 활동들을 부탁하고 그 활동들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수행되는가를 모두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개인 컴퓨터와 개인기술들이 중요시되는 오늘날, '활동보조'라는 표현이 위의 내용들을 아주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활동보조 서비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이며 의무이다. 하지만 활동보조 서비스가 없었을 때를 생각하고 기억해보자. 1시간이 걸리든 2시간이 걸리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자기 스스로 다 했을 뿐더러 자기가 못하는 일도 스스로 하기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활동보조서비스가 생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어떻게든 활동보조 시간을 더 받으려고 할 수 있는 일도 못한다고 거짓말을 할뿐더러 이의신청을 하러 갈 때 잘 걸을 수 있으면서도 휠체어를 타고 보호자를 동반하여 간다. 물론 권리, 의무 다 맞는 말이며 한편으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런 짧은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정말 시간이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지 참 답답한 현실이다.

이런 일들을 도와주는 중개기관인 자립생활센터에서 마저 이렇게 시킨다. 병원에 가서 무조건 다 못한다고 하라고…. 이런 일들이 과연 올바른 일들이며 올바른 장애인 운동일지 의문이다. 급격히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늘어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활동보조를 받기 이전에 나를 한 번 더 생각하자.

*이 글은 충북 청주시에 사는 에이블뉴스 독자 조우리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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