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참여의 기회가 어려운 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 평생 삶의 근간인 고용에서 오는 차별이다.

그래서 일신상의 불편으로 인하여 사회참여 기회가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소외의 아픔을 겪는 장애인에게 누구나 마땅히 참여할 수 있는 통합된 사회의 길을 여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바로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일자리는 더욱 필요할 것이고, 적극적인 일자리를 통한 복지 이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완전한 해소’다.

어쩌면 인간은 오르지 편견이 없는 가장 완전한 이상적인 미래 사회로의 희망을 안고 현재의 아픔과 고통을 참고 모순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바로 인류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것 외에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편견에서 오는 차별을 해소하는 것, 이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비단 편견으로 인한 이 차별의 해소는 장애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전반의 갈등은 바로 올바른 사고를 가로막는 잘못된 인식의 편견에서 오기 때문이다.

인식이 잘못되면 고용을 늘린다 해도 장애인에게 참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직장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애인 또한 기계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인간 속의 인간관계를 접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만큼이나 잘못된 장애인 인식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운오리새끼에서 아름다운 백조의 본성을 되찾을 때까지 그 얼마나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만했는지 어릴 적 책을 읽고 감명을 받지 않았던가? 장애인에게 아무리 좋은 일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들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연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그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회 속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또 자기의 소질과 끼를 마음껏 발휘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장애인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든지 여행도 갈수 있고, 직장 생활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보조공학을 통한 일의 불편이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보편적 평등이라는 접근에 있어 하드웨어적 장애인의 불편 해소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적 편견의 극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올바른 생각을 통한 인식의 창조적 발상전환이 없다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고, 모든 것은 사고의 인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애인에 대한 사랑을 그윽한 묵향 속에 묵묵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있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개성에 따라 끼를 발산하고 그 능력을 창조하는 것에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실천하는 분이 있다.

바로 머나먼 제주도에서 시작되는 ‘장애인에게 문화의 참여를 보편화하고 또 문화의 참여를 위해 봉사’ 하는 서예가 소정(素亭)선생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그윽한 묵향에 녹여버리는 분이다.

이분의 말이 정말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소정 선생은 ‘장애인이란 말을 하고 싶지도 표현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장애인이라 표현하는 것은 이분법적인 또 다른 차별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심신이 불편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분의 말이 세삼 가슴이 저미어 오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벌써 장애인이란 언어 사용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차별적인 의미로의 뇌에 각인되어 있지는 않나 하는 순간적 자각 때문이다.

심신이 그냥 불편한 분들이지 장애인은 아니라는 생각, 이것이 바로 인식의 본질적 개선이 아닌가 싶다. 장애인은 고정적이요, 심신이 불편한 사람은 가능성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윽한 묵향(墨香)에서 배어나는 창조적 인식전환이다. 소정 선생은 불편한 사람을 표현함으로써 그분들이 발전과 재능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은 이렇게 생각을 달리함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답게 할 수가 있다.

콜럼버스처럼 달걀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달걀을 바위에 깨뜨려 세운 일화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바가 크다. 달걀은 결코 세울 수가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 모두는 불안전한 존재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장애인은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실존하는 것이다. 소정선생은 그냥 장애인을 실존을 언급한 듯하고 그 실존에서의 가능성을 항상 보고 있는 것이다.

저 형산(荊山)의 박옥(璞玉)같이 우리 모두는 박옥의 진가를 모르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일이 없도록 항상 누구나 옥석(玉石)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제주지사 고용지원부장 오창식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기고를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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