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에이치스 장애인법연구소 박진용 소장. ⓒ박진용

장애를 점수로 환산하여 등급으로 나누어 오던 장애등급제가 올해 7월부터 형식적으로 소멸했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는 인간의 존엄성을 장애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장애인의 보호 안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의 절실한 요구로 비롯된 결과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새로운 제도는 장애인이 원하던 바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지금의 모습은 ‘장애2등급제’로 변용된 ‘폐지인 듯 폐지 아닌 존치’ 같은 장애등급제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현재 복지카드는 장애인등록증으로 바뀌었다. 장애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지는 과거 중증장애인(과거 1~3급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경증장애인(4~6급)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장애인 등록증에 표기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현 시점에서는 이를 실질적 ‘장애2등급제’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애인등록증의 법적 근거는 장애인복지법시행규칙 제5조인데, 장애인의 인적사항과 함께 장애종류·장애등급을 표기하도록 했던 것을 장애정도만 표기하도록 개정되었다. 이 칸(欄)에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인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인지 여부가 표시된다는 것이다.

장애인복지법시행규칙의 개정된 내용은 과거 장애인의 ‘장애 등급’을 ‘장애 정도’로 바꾸어 놓았을 뿐, 장애등급제 폐지를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다고 보기 어렵다.

장애등급제는 일본의 제도를 계수한 것인데, 일본은 과거에도 우리와 달리 장애인이 처한 환경요인과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여 저소득층 장애인이 복지의 사각에 놓이는 것을 방지하는 정책적 보완 기준을 구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장애를 서열화하는 차별 조치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나름의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주차장에 걸린 안내판 . ⓒ박진용

차이가 차별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고려가 필요하다.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공무를 수행하는 관에서야 “장애정도를 표기할 법령의 근거가 있으며, 단순히 한글화 했을 뿐 우리는 명징한 합법적 공부를 수행 했을 뿐 어떠한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행상 상 장애 구분은 불가피하고, 거기에 굳이 이름까지 따로 붙여야 하는 작명가(?)의 고충을 인용할 여지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불리게 된 장애인의 박탈감과 상처를 배려하지 않은 작명센스에는 인권적 사고가 상당히 몰각(沒却)되어 있다고 해도 과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시인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나에게 와서 존재로서 인식이 되었다고 하셨듯이 지금이라도 올바른 인권 감수성에 부합하는 적절한 이름을 찾아야 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신체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헌법적 가치의 실현이며 그 과정에서 장애인을 한시적으로 둘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면, 그 대안으로써 '장애인'과 '중점 보호(보장) 장애인'으로 구분하는 건 어떨까.

물론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된 마당에 또다시 장애인을 구분하는 말을 대안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다지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보호라는 말은 다소 시혜적이고 수동적 인격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언어적 함의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헌법은 장애유무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는 총체적 보호 의무를 부담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보장’은 한 번은 고려되어야 하는 한시적 명제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별론으로 모든 국민이 가진 신분증에는 외모가 뛰어난 국민이 특별히 표시되지 않고 있으며, 그 누구의 인격적 침해의 가능성이 있는 특별한 개인정보에 대한 어떠한 것도 기록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장애인차별 해소의 목표는 이처럼 모든 국민에게 당연한 것이 장애인인 국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그래서 그 누구도 다른 처우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모습일 것이다.

*법무법인 에이치스 장애인법연구소 박진용 소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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