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까지 수능을 치르던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학교를 누빌 수 있는 3월이 왔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선 이 시기가 지나가고 학교생활이 조금은 익숙할 때쯤에는 벚꽃이 피고, 서울 어느 거리에는 벚꽃을 구경하는 인파로 붐빌 것이다.

그러나 이 풍경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겠는가?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각자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풍경을 보는 느낌은 다를 것이다. 햇살이 아무리 밝아도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모든 것이 우울하게 보이는 것처럼.

학창 시절을 마치고 대학 입학을 확정지었을 당시 기자가 느끼는 3월은 잿빛이었다. 벚꽃이 피고 사람들로 넘치는 때가 와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어졌던 같은 반 녀석들의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은 끝이 났지만, 10대 초반부터 마지막을 장식한 학교폭력의 기억과 그로 인한 심리적인 위축감은 대학에 들어가 괴롭힘의 당사자들이 모두 흩어진 다음에도 쉽게 없어지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소아마비를 가지고 있는 기자는 학창 시절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늘 힘이 센 아이들의 뜻에 따라야 했고,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네 의견은 그렇니?”가 아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는 말과 거기에 이어지는 폭력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포기를 하지 않으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개인적인 의견은 말하지 않고 지냈었다. “여기서는 나의 생각을 말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러다 또 맞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한 학기가 끝날 무렵 과 동기이자 대표를 맡았던 누나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너는 네 의견이 없니? 왜 항상 yes men 이야? 무슨 말만 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 라고 말하면 어떡해? 네 의견 애기한다고 해서 누가 잡아가는 사람 없으니까 다음 학기부터는 네 생각 좀 듣고 지내자 응?"

그 말은 “이제 네 의견도 듣고 싶다”는 확신임과 동시에 신체적 위협 없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에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았고, 서서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전 학창 시절과 달리 집에 갈 때 혼자 가는 일은 없게 되었다. 물론 학교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정신적으로 큰 버팀목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학교폭력은 적지 않은 학생들이 겪는 일이다. 그러나 경험자의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학교폭력을 겪은 기간을 떠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하게 되면, 그 상처는 몸이 아닌 정신에 파고들어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반 학생들이 가방을 뒤져 금품을 빼앗겼던 경험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누군가 허락 없이 가방을 열어보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월급이 나오면 그것을 부모님께 드리기 싫었다. 마음으로는 “부모님께 드린다”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잠재의식 속에는 학창시절 돈을 빼앗기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과대표를 맡았던 그녀가 “누가 잡아가는 사람 없으니까 네 의견 좀 듣고 살자” 고 애기하지 않았으면 학업을 마칠 수 없었을지 모른다. 학교폭력을 겪으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제 막 신입생이 되는 장애인이 있다면 그의 가족이나 지인의 격려와 응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학 갔으니 괜찮아”가 아닌 “지금 어떤 것이 젤 힘드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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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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