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마다 선물세트가 쌓여가고 귀성길 소요시간 등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명절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명절과 관련된 뉴스나 기사들을 검색해 보니, 올해도 변함없이 “잔소리보다는 격려를” 혹은 충고보다 공감, 소통이 필요“ 등과 같이 친지들과의 소통에 대한 내용들이 올라와 있었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결혼 취업 학업 등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말을 피하고 교감을 나누자는 것이리라.

“너 때문에 네 어머니가 골병들었다.”

장애인 당사자인 기자도 명절은 즐거움보다는 달갑지 않은 기억들의 연속이었다.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사회에 나와서도 학업 취업 결혼 등에 대한 친척들의 질문은 거의 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받은 질문이 있다면, “너 이만큼 키우느라 네 어머니가 골병들었다. 나중에 어떻게 그걸 다 갚을래?”였다. 사촌 동생이 여자친구는 있는지 대학은 어느 곳에 들어갔는지 군대는 언제 가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될 때까지 동일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기자 역시 당시에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고, 역시 동일한 질문을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물어보는 친지들은 없었다.

‘건강하지 않은 아들을 키우느라 골병이 든’ 어머니를 옆에 두고 다른 친지들은 자식 자랑이 이어졌다. 우리 아들은 체육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등의 자랑은 몇 년 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다라는 말들로, 곧바로 그들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현석이는 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살까?”라는 걱정 아닌 걱정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그들의 자랑은 건강한 몸을 가지지 않은 본인에게도 아픔이었지만, ‘골병이 들도록 키워서’ 자란 아들이 친지들 사이에서 비교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봐야 했던 어머니에게는 더 큰 마음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명절이 가고,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자, “시설에 가서 편히 사는 것이 어떤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제(기자를 말함) 보다 장애가 덜 하고 공부도 더 잘한 사람도 장애인시설에 갔는데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충고 아닌 충고도 나왔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그 대화 사이에서 당사자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주변의 반응 역시 “듣고만 있어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친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한 숨 돌리고 나면, 늘 집안의 분위기는 무거웠고, 어머니의 걱정이 섞인 탄식도 함께 깊어져만 갔다. 그때로부터 10~20년이 지나 서로가 성인이 되었을 때 기자는 장애인시설에 있게 될 것 같았고, 친지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뒤처진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설 입소를 은근히 종용했던 시간들도 지나가고 친지들의 비교대상이 되었던 기자와 그들의 아이들도 이제 20·3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그토록 자랑했던’ 그 아이들도,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걱정했던’ 사람도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의 모습과 분위기를 지금에 와서 다시 되짚어 보면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다. 왜 그렇게 일방적인 의견들에 대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눌려 있어야만 했을까? 한 번쯤은 어른들 사이에 끼어든다며 버릇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더라도 당사자가 생각하는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으니 그런 부정적인 말로 분위기를 흐리게 하지 말라고 왜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만약 그 오랜 시간 동안에 한 번만이라도 “그런 말 더 이상 하지 마세요”라거나 “그럼 골병이 들도록 고생하신 저희 어머니께 약 한 첩 지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한 마디 했더라면, 명절 내내 가시방석이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마음이 상당히 오랫동안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같이 얼굴을 보고 있으면 밥이 잘 안 넘어가니 따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애기를 친지들에게 들은 후부터 명절이 두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평상시에도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친구다.

이런 경험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보다 더 심한 말을 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때 기자는 기도한다. 새해 복 대신 그런 말을 한 친지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 언중유골의 지혜를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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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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