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음악방송을 통해 가수로 활동했던 故 최찬수씨 모습.ⓒ에이블뉴스DB

메일을 통해 안타까운 비보를 접한 건 지난주였다. ‘이 기사에 나온 분 최찬수씨가 3월14일 비참하게 운명하셨습니다’란 내용. 메일을 보내주신 분은 어렵게 사시다 가신 분이 너무 안타까워 연락드린다고 덧붙였다.

최찬수씨는 8년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의 누워 노래하는 와상장애인 가수로 전파를 탄 이후, 지난 2013년 본지에서 ‘와상장애인 가수 최찬수, 일상이 고통’이라는 제목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다룬 바 있다.

그 이후에도 기자와 여러 차례 통화한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털어놓곤 했는데.

그의 안타까운 비보를 접하고 갖고 있던 집 전화번호를 눌러봤지만 전화를 받는 이는 없었다. 수소문 끝에 그가 몸담았던 세이클럽 음악방송국을 찾았다. 예명인 우하(雨夏)라고 불리며 팬클럽까지 만들어졌던 그는 ‘산다는 건’, ‘회장정리’ 등의 노래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청취자들은 저마다 명복을 빌고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찬수님 편히 쉬세요”, “부디 좋은 곳에서 편하게 노래 많이 부르세요” 명복을 비는 방송국 게시판 속 그의 막내동생과 어렵게 통화 끝에 그의 마지막을 들을 수 있었다.

최찬수씨는 지난 1991년 30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목과 손만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온몸의 뼈가 굳어지는 진행성 강직성 척추염으로 지난 20년간을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왔다는데. 그 약이 문제였을까. 피부에 딱지가 돋아나자 지난 1월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후 지난 14일, 퇴원에 앞서 수혈을 받다 뇌경색으로 사망하고 만 것.

준비 못한 죽음에 찬수씨는 한 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가족을 떠났다. 그의 막내동생은 “퇴원을 준비하는 와중에 갑자기 그렇게 돼서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왔는데…”라며.

최찬수씨는 지난 20년 동안 굳어가는 몸으로 너무나 고통스럽게 살아왔다. 병원에 다녀갔지만 마우스피스를 물지 못해 위내시경을 하지 못했던 일, 병원조차 가지 못해 작은 염증을 수술까지 만들었던 일. 그는 원망과 분노로 하루하루 ‘1평 침대’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특히 그는 활동보조 사각지대인 점을 가장 원망스러워했다. 지적장애3급인 동생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2013년 당시 103시간을 부여받았다. 청와대, 구청 모든 곳에 호소했지만 그에게 온 답은 “법대로 적용한다” 뿐이었다.

1년 열두 달 꼬박 1평 침대에서 누워서만 생활하며 의식주, 소‧대변 모두를 가족에게 도움 받으며 살아왔던 찬수씨. 8년전 트로트를 부르며 음악방송을 했었던 꿈도, 턱을 지나 입까지 위협한 척추염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가 그토록 꿈꿨던 활동보조 시간 확대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찬수씨와 같은 고통에 살고 있는 와상장애인은 사각지대의 고통을 느끼며 하루하루 연명하듯 보내고 있을 것이다.

“와상장애인의 현실을 알리고 싶다. 이런 문제점들을 제보도 많이 해야 한다”며 본지를 통해 어려움을 토로했던 찬수씨. 그는 막대기를 입에 물고 활동보조 사각지대를 알렸고, 죽음으로 와상장애인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또 한번 상기시켰다.

그의 바람대로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하게 노래를 부르고, 고통 받지 않길 기도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