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5월.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하는 ‘가정의 달’이다. 며칠 전 영화배우 황신혜씨의 동생인 구족화가 황정언씨를 만났다. 만나기로 한 날 이른 아침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모 신문사에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재활의 중요성과 재활병원건립에 대한 대담이 있었다. 대담이 끝나고 부랴부랴 차를 돌려 용인으로 향했는데, 1시간 30분이면 걸릴 길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워낙 길치인지라. 거의 집 앞 다 와서 헤맸다. 황정언씨에게 오면서 길을 묻는 전화를 어찌나 많이 했던지. 생각해보니 미안하고 창피하다.

황정언씨의 집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전원주택단지. 차를 주차시키고 내리자마자 느끼는 신선한 공기와 맑고 깨끗한 주변 환경. 마치 외국에 온듯 한 느낌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황정언(42세)씨와 예쁜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보다. “어서 와요. 진희씨. 금방 올 것 같았는데...집 찾느라 고생했죠. 잘 왔어요. 여기 집 찾기가 좀 어려워요. 진희씨 기다리면서 에이블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사람들을 인터뷰 했나 봤어요. 그리고 진희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구요. 이일세, 김형희..나랑 무척 친한 사람들인데. 하하하. 만나는 사람들이 거기서 거기죠. 여기 세계가 좁아요”한다. 맞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정언씨가 입으로 그린 풍경 그림.

탁자에 미리 준비되어있는 코코아차와 과자를 먹으며 정언씨의 사고 이야기와 그림 이야기에 대해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황정언씨는 인하전문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93년 5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한동안 미래에 대한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가족들 앞에서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 같은 처지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박우영이라는 선교하는 분이 ‘전화는 어떻게 받는지,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도구들이 있는지’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줬다. 뿐만 아니라 본인이 쓰던 작업도구까지 그냥 주기도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작업도구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술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언씨가 다쳤을 당시 수필집 ‘강한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의 주인공인 이정순씨를 한 지인을 통해 소개 받으면서 전문적으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정순씨는 평소 장애인들과 주부들에게 그림을 지도를 했던 터라 황정언씨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이후 일주일에 한번은 꼭 정언씨의 집을 찾아 그림지도와 함께 살아갈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정언씨는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이씨가 정언씨에게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려면 입에 침이 금방 많이 고인다. 자주 빼주고 침을 닥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며, 많이 힘들 것이다” 라고 한 말에 정언씨는 이씨가 자기를 위해 직접 실험을 해보고 이야기를 해준 것에 대해 무척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다. 그래서 배운지 1년 만에 스승인 이정순씨와 함께 전시회를 갖기도 했었다. 그때가 96년도다.

오랜 기간 미술에 입문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공한 것도 아닌데 아마추어인 제자를 스승이 자신의 개인전에 초대하는 일은 그때 당시 미술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는데, 아마도 사제의 정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돈독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맘이 든다.

그렇게 이씨는 지금의 정언씨가 구족화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왔다. 외국에 나가서도 국제전화를 잊지 않고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림에 필요한 재료라면 한 개가 아닌 꼭 두개를 사서 정언씨에게 주며 그림을 그리는데 용기를 북돋워주곤 했다.

다치기전의 황정언씨. 마른 모습이 애띠게 보인다.

사실 유명연예인의 동생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여러모로 좀 그랬다. 혹시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나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조근 조근 차분하게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한다.

교회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은 98년9월에 결혼했다. 아내는 “건강했던 남편의 모습이 다쳤을 때의 모습으로 봤을 때의 충격들이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잘 가지 않았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천사다. 마음씨가 착하다’라는 표현들을 하는데, 사실 싸우기도 하고 그냥 남들 다 사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데, 저를 너무 착하게 보니까 그런 것들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었어요. 하지만 그런 부담감들은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분위기로 이겨낼 수 있었구요. 이제는 결혼 9년차 주부입니다”라고 했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정언씨의 성격은 결단력이 강하다고 한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할 때 이건 이렇게 하자며 결단을 내리면 이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입장에서는 남편이 믿음직스럽고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언씨 같은 경우 그림을 그리는 다른 장애인들과는 다르게 야외스케치를 나가 그림을 그리기도 힘들다. 해서 좋은 그림을 그리기위해서는 좋은 풍경사진들을 많이 찍어 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가족들과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한번은 누나네 가족들과 여행을 갔는데, 지금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조카 때문에 가족들 모두가 울었던 일이 있었는데, 조카가 4살이었을 때다. 식구들이 여행을 가서 정언씨에게 조카를 잘 보라고 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조카는 자신에게 삼촌을 ‘잘 보라’고 한소리로 알아듣고 종이를 꺼내 ‘껌’을 뱉어 내게 하고는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렸단다. 잠시 후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쯤 정언씨에게 껌을 준 것이 생각이 났던 아내가 껌을 치우려는데 조카가 버려 줬다는 말에 가족 모두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4살짜리가 알면 뭘 알까 싶었는데, 어린 손녀, 어린 조카의 행동에 그렇게 어느새 가족들은 정언씨의 장애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도와주고 챙겨주는 관계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 조카는 정언씨의 집을 찾을 때면 삼촌의 팔이 힘없이 휠체어에서 떨어지면, 다시 휠체어의 팔걸이에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 줄 만큼 잘 거들어준다고 한다.

톡톡 발랄. 미소가 good인 아내와 함께.

정언씨는 그림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정상회’라는 모임에도 참여를 하고 있다. ‘정상회’는 사고로 흉추를 다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곳을 다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모임의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 이 모임은 1달에 1번 국립재활원에서 모인다.

“다치기 전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저를 대해야 할지 몰라요. 그냥 잘 해주려고 해요.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입었으니까 많은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어떤 것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긴장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면 아내가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뭘 사러 갈 때 또는 은행일이나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다른 보호자에게 부탁을 하고 갔다 와도 안심이 된다고 해요. 뭐라고 할까 서로 너무 잘 안다고 할까요. 뭘 도와줘야하고 어떤 손길이 필요한지를 알기 때문에 이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라고 말한다.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정언씨는 구족화가 회원이기도 하다.

정언씨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누구의 동생이다’라는 관심을 갖기보다 당당한 구족화가로서의 황정언으로 봐주기를 바란다며, 어디든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이 부르면 언제든 가서 이런 저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도 해주고 싶고 자신을 보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요즘은 몸이 아파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들이 나오면, 그때 개인전도 준비하고 싶고, 자서전도 낼 생각입니다.”

정언씨.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서 저 또한 힘을 얻습니다. 좋은 그림 많이 그리시구요. 개인전하실 때 꼭 불러주세요.

사람 만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칼럼리스트 김진희씨는 지난 97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를 당하기전 280명의 원생을 둔 미술학원 원장이기도 했던 필자는 이제 영세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재활보조기구나 의료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생활시설에 자원봉사로 또 '지구촌나눔운동'의 홍보이사로 훨씬 더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방송작가로 또 KBS 제3라디오에 패널로 직접 출연해 장애인계에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음식을 아주 재미있고 맛있게 요리를 할 줄 아는 방년 36살 처녀인 그녀는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deco를 운영하고 있다. ■ deco 홈페이지 http://www.uk-or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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