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제이님이 이탈리아 출장 중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이 시간, 나는 제이제이님에게 펜을 들었습니다.

출장을 가기 전날 간단하게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제이제이님은 나에게 또 한 번 좋은 친구로서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문학노트 부탁하고 갔다옵니다” 라고 보낸 간단한 문자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을 찡하게 만들던 지요. 문화일보 기자 커뮤니티인 장재선의 문학노트 첫 번째 방을 내게 내어준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제이제이님의 고교시절 은사님께서 문학노트에 들어오시면 마음이 순해지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글을 읽으며 스승과 제자의 남다른 정을 함께 느끼며 즐거웠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상이 있어 메모수첩을 펼치니, 수첩 갈피에서 오래 전에 어느 잡지에서 오려둔 기사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 기사 내용은 유안진 교수의 ‘오직 한 사람’이란 수필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다시 읽는 동안에 제이제이님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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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때 초나라 태생인 유백아는 성연자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스승 성연자는 제자인 백아에게 수년 동안 음악 기초를 배우게 했다. 그런 다음 태산으로 그를 데리고 올라가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우주의 장관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봉래의 해안으로 데리고 가서는 거센 비바람과 휘몰아치는 도도한 파도를 보여 주면서 바다와 비바람 소리도 들려주었다.

백아는 스승의 이러한 지도로서 비로소 대자연이 어울려 화합하는 음성과 신비하고 무궁한 조화된 자연의 음악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백아는 저 위대한 금곡인 천풍조, 수선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백아에게는 입신출세의 길이 열려 진나라에 가서 대부의 봉작을 받게도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금예가 도달한 참된 경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음악가로서의 그의 불행이었으며, 견디기 힘든 고독이 아닐 수 없었다.

백아는 진나라에서 20여 성상을 보낸 다음 고국에 돌아와 자기에게 음악의 진경을 터득케 해준 스승 성연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음악이 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스승은 돌아가시고 고금일장만 유언으로 남아 백아를 맞이해 주었다.

백아는 몹시 상심하여 강을 따라 배를 저어간다. 때마침 언덕에는 가랑잎이 지고, 강을 따라 갈대밭에는 갈대꽃이 만발하여 고독한 나그네를 더욱 수심에 젖게 하였다. 백아는 기슭에 배를 대로 뱃전에 걸터앉아 탄식어린 거문고 한 곡을 탄주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스럽게도 어디선가 바람결에, 유백아가 뜯는 거문고의 탄식에 맞추어 어떤 사람의 탄식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이 깊은 가을 저녁, 넓고 적막한 강기슭에서 누가 나의 탄식 깊은 거문고를 들어주었단 말인가?

그때 백아 앞에 나타난 사람은, 땔 나무를 해 팔면서 사는 가난한 나무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산천을 다니며 평생을 사노라 자연의 음성과 자연과 교감하는 음악의 참된 경지를 알아들을 줄 아는 종자기라 사람이었다.

백아는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난지라, 거문고의 줄을 가다듬고 아끼는 수선조 한 곡을 뜯었다. 백아가 수선조를 다 뜯고 나자 종자기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도도한 파도는 바람에 휘말려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군요”라고 말했다.

백아는 이처럼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해 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천풍조를 뜯기 시작했다. 종자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천풍조를 다 감상하고 나서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가슴속엔 해와 달을 거두어들이고 발아래는 무수한 별 무리를 밟고 서 있군요. 높으나 높은 상상봉에 의연하고 도저하게 서 있군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찌 더 이상 주고받을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를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가.

유백아와 종자기는 다음해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때가되어 백아는 종자기를 찾았으나, 종자기는 병들어 죽고 없었다. 백아는 종자기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을 하였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그의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오직 하나뿐인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거문고를 뜯어 무엇 하느냐고 백아는 슬퍼했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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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제이님, 이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사(故事)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주고 서로 통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평생 반려자를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진실로 자신의 내면까지 성숙시켜 주는 스승과 벗을 만난다는 것은 일생 동안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행운이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제자를 제대로 키우고자 하는 스승을 한 분, 자신을 인정해주는 친구를 한 사람 만나면 족할 것이라 말하긴 쉽지만 요새 세상에 진정 그런 스승과 친구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제이제이님은 그 한 사람을 얻었을 것이라 믿어지지만, 내 자신은 과연 그러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됩니다. 과연 죽기 전에 내게도 종자기와 같은 친구가 되어줄 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종자기와 같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백아가 ‘종자기 같은 지음(知音) '내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 이 없으니 연주를 해서 무엇하랴’ 라고 하면서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이야기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제이제이님의 마음에서 기인한 듯합니다. 항상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부족한 친구로밖에 서지 못하는 내가 또다시 부끄러워질 뿐입니다. 조만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3월을 보내는 길목에서

진흙 속의 연꽃 드림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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