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절정의 트로트 가수로 노래 부를 때 모습.

"희망이 없으면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나마 장애를 가진 저에게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의미를 주는 건 노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그날 그 카스바에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신세대 가요 팬들에겐 낯선 이름의 가수 윤희상은 트로트 히트곡 <카스바의 여인>의 주인공. 노래방에서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노래는 20년 무명 가수 생활을 딛고 그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노래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서울 은평구 증산동 자택을 찾아 갔다. 현관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재활 운동기구와 커다란 오디오시스템.

'어서오세요. 추운데...집 찾는데 헤매지 않았어요. 얼른 들어오세요' 라며 반겨준다.

꺼내고 싶지 않은 사고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거실 한 켠 예쁜 탁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한다.

얼마 전 무대에 섰을 때, 유선방송을 통해 TV에 재방영되고 있었다.

그의 사고는 이렇다. 트로트 곡 <카스바의 여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는 2001년 각종 성인가요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그 노래로 `잘 나가던` 그는 2004년 10월. 직접 차를 몰고 지방공연을 가던 중에 그만 ‘아차’하는 순간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냈다. 그 사고로 경추 5, 6번이 골절되어 척추가 손상됐고 전신마비 1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사고 후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4차례에 걸친 대수술과 1년여의 재활과정을 통해서 이제 겨우 휠체어에 앉아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 후 그는 "의식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하면 죽을까“ 하는 고민만 했다. 하지만 손발을 전혀 움직이질 못하니 뛰어내릴 수도 없고, 정말 혼자서 뭘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독극물. 죽기에 가장 쉬운 방법일거란 생각이 들어 친한 동생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해가 간다. 한참 잘나가던 때.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전신이 마비가 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의식만 또렷한 상태에서 뭔 생각은 못할까.

그렇게 죽음만 생각했던 그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준 이들이 있었다. 어려운 무명 가수들이 그를 돕겠다고 3만 원, 10만 원씩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가수 나훈아는 “참, 불행한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뇌를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태진아, 송대관, 현숙 등..많은 가수들이 병원비 보탬에 한몫 거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눈을 뜨나 감으나 그의 옆에서 손과 발이 되어주는 아내 이인혜 씨(48)의 사랑이 그의 자살 결심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나에게 이런 큰사랑이 쏟아지는구나, 난 참 복도많고 인복도 많은 놈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그에게 희망이 보였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아야하는 이유를 알았고, 이를 악물었다.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격려해주는 이들을 위해 생을 마감해서는 안 되겠구나.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진거고, 그 빚을 갚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재활에 성공해 가수로서 다시 무대에 우뚝 서는 것이다.”

폐차 직전 사고 차량의 사진으로 사고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였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재활 치료에 정신없이 매달렸다. 병원 운동장에서 남몰래 악도 쓰고, 발성도 하고 노래연습도 했다. 경추 손상은 호흡이 가쁘고 짧아서 음감이 고르지 못하고 고음이 잘 나오질 안는다. 하지만, 그렇게 연습한 덕이였을까. 잘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이제는 카랑카랑한 예전 목소리로 회복이 되었고, 마이크도 떨어뜨리질 않을 정도의 손힘도 돌아왔다.

의사는 그때당시 그를 두고 “저 사람은 손발도 못 움직이고 인생이 끝났다. 평생 침대에서 돌아누울 수도 없고 식물인간으로 살아야한다”고 했지만, 그는 기적처럼 의사들도 놀랄 만큼 몸도 좋아졌고 폐활량이 좋아졌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지난해 10월. 한 케이블 TV의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에서 사고 후 처음으로 무대에 다시 올려졌다.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리허설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대중들이 동정으로 노래를 들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신인 때 보다 더 떨렸고 더 좋은 노래를 불러야한다고 생각을 해서 리허설 때 노래를 해 봤는데, 되더라구요." 한다. "떨렸지만, 본방이 시작 되면서 4곡 모두를 다 불렀어요.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까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여기에 자신감을 얻는 그는 요즘 지방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찾아 가지만 오히려 그들이 저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 줘요”라고 말한다.

2시간여의 인터뷰 끝에 그는 이런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한다. ‘나 같이 조건이 안 좋은 사람도 해냈다는 그런 모습을 통해 사지가 멀쩡한 좋은 조건의 사람들. 혹 경제적이든,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어려운 처지도 있겠지만 건강하다면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라며 그는 "꼭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고 이후 장애인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밝은 얼굴로 재기를 꿈꾸는 그는 올봄 4월.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으로, 요즘 운동뿐 아니라 발성 연습도 열심이다. “노래는.. 가수는.. 장애인이라 봐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조건하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가슴을 떼려줘야 자신의 노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렵니다”라며 맺는다.

`어둡고 험한 바람 저 바람이 그치면, 내일은 해가 뜬다. 산들바람이 분다, 너와 나의 파티를 준비할 거야~(중략) 힘껏 노를 저어 꿈을 찾아 가련다, 오늘은 그대 내 사랑을 위하여`(윤희상의 <파티> 가사 중 발췌)

카스바의 여인’을 사랑해 주셨던 분들! 곧 새로운 곡이 나온다고 하니까요. 신곡 많이 사랑해주시구요. 서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이제는 앉아서 부르는 노래지만, 다시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찬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람 만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칼럼리스트 김진희씨는 지난 97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를 당하기전 280명의 원생을 둔 미술학원 원장이기도 했던 필자는 이제 영세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재활보조기구나 의료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생활시설에 자원봉사로 또 '지구촌나눔운동'의 홍보이사로 훨씬 더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방송작가로 또 KBS 제3라디오에 패널로 직접 출연해 장애인계에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음식을 아주 재미있고 맛있게 요리를 할 줄 아는 방년 36살 처녀인 그녀는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deco를 운영하고 있다. ■ deco 홈페이지 http://www.uk-or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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