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3학년은 조회대 앞으로 모이세요!”

확성기를 통해서 학생들을 부르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코앞으로 다가 온 운동회를 준비하느라 서연초등학교 운동장은 날마다 시끄럽습니다. 매스게임이며 줄다리기 연습에 탬버린을 흔들어대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응원연습까지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소리의 북새통입니다.

그렇게 모두들 운동회 연습으로 정신없이 바쁠 때, 은혜는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 혼자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혼자 놀고 있는데 저쪽에서 탬버린을 든 정원이, 홍석이, 빛나가 달려오며 “은혜야!”하고 부릅니다. 응원 연습을 하다가 혼자 있는 은혜를 보았나 봅니다.

“심심할 텐데, 그냥 집에 가지 그랬니.”

걱정해주는 홍석이 말에 은혜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젓습니다.

“괜찮아. 5교시에 음악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렸다 같이 수업 듣고 갈래.”

“그럼 혼자 있지 말고 매스게임 연습이나 같이 하자.”

홍석이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빛나가 탬버린으로 홍석이 등을 툭, 치며 “너, 지금 은혜 놀리니? 누가 썰렁이 아니랄까봐 그런 농담을…”하는데 정원이가 빛나 말을 끊으며 끼어듭니다.

“아니야. 실은 나도 은혜가 우리랑 같이 운동회 연습을 했으면 했었어.”

빛나가 펄쩍 뛰며 이번엔 정원이를 나무랍니다.

“은혜가 어떻게 체육을 하니? 더군다나 요즘은 매일 운동회 연습인데.”

빛나 말에 홍석이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긴, 운동회 연습은 나도 싫어. 땡볕에 서서 하루 종일 펄쩍펄쩍 뛰는 건 정말 재미없어.”

“왜 재미없어? 난 구경만 해도 신나더라.”

은혜가 부럽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러자 정원이가 얼른 “그러니까 은혜야, 너도 운동회 같이 하자. 응?”하며 은혜 팔을 잡아끕니다. 말도 안 된다며 은혜가 펄쩍 뛰자 이번엔 홍석이가 정원이를 거듭니다.

“내가 보디가드 해 줄게. 다른 녀석들이 널 밀지 못하게.”

그러자 빛나가 “너희들 왜 자꾸 은혜 놀리니?”하며 화를 내는 바람에 “운동회 같이 하자는 게 놀리는 거야?”하고 대드는 홍석이랑 작은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그 실랑이는 이기자 선생님이 확성기로 아이들을 부르는 바람에 잠시 멈췄습니다.

“거기 계신 녀석들, 당장 이리 안 와?”

홍석이랑 정원이는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무척 좋아 하실 거야.”하며 서로 손을 짝, 마주치더니 빛나가 말릴 새도 없이 선생님께로 쪼르르 달려갑니다.

“선생님! 은혜도 우리랑 같이 운동회에 참가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태도는 아이들이 짐작했던 것과는 영 달랐습니다.

“은혜가 운동회에 참가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니들이나 빨리 연습하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선생님은 홍석이 귀를 잡고 계주 연습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그렇지만 정원이는 선생님 뒤를 졸졸 쫓아가며 끈질기게 묻습니다.

“왜 말이 안돼요?”

“목발 짚는 애가 할 수 있는 종목이 어디 있어?”

“그거야 찾아보면….”

“이건 너희들끼리 하는 놀이가 아니야. 학교 체육 대회란 말이야.”

하지만 선생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정원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운동회는 학생들을 위한 잔치라고 그러셨잖아요. 은혜도 우리학교 학생이니까 당연히 참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원이 말에 이기자 선생님은 속이 뜨끔합니다.

“참가할… 권리?”

그날 저녁. 은혜네 집 저녁 식탁에서도 운동회가 중요한 얘깃거리였습니다.

“운동회에 너를 참가시켜 달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다니, 친구들이 네 생각을 참 많이 해주는구나. 그렇지만 선생님께 까지 말씀드린 건 좀 너무했다.”

엄마 말에 은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요?”하고 묻자 엄마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선생님은 네가 운동회에 참가하고 싶어 해서 그러는 줄 아실 것 아니니.”하십니다.

“맞아요, 엄마. 나, 운동회에 참가하고 싶어요.”

식탁을 치우다말고 엄마가 깜짝 놀라 은혜를 쳐다봅니다.

“다시 한번 친구들과 함께 뛰어보고 싶어요. 생각나요, 엄마? 유치원 때, 내가 얼마나 달리기를 잘했었는지? 언제나 일등을 해서 저금통이랑 고깔모자랑 상으로 받아왔잖아요.”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처럼 눈물이 왈칵 넘쳐납니다. 엄마는 얼른 은혜를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안다, 은혜야. 엄만 다 기억해.”

다음 날, 정원이네 집에 은혜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은혜를 운동회에 참가시키려는 정원이를 말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를 생각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은혜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될까 겁이 나요.”

하지만 정원이 엄마는 은혜 엄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은혜가 용기를 내겠다는데 왜 엄마가 말려요?”하며 아이들 편을 듭니다. 은혜 엄마도 말이 안 통해 답답하다는 듯 다시 한번 부탁을 합니다.

“생각 좀 해 보세요, 정원이 어머니. 선생님들이 허락하시지도 않겠지만 허락하신다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은혜가 구경거리뿐이 더 되겠어요? 또 은혜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다보면 자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고 좌절감만 더 크지 않겠어요. 생각만 해도 전 겁이나요.”

이번엔 정원이 엄마가 ‘휘유~’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은혜 엄마. 장애아 부모 노릇하려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아세요? 엄마가 아이보다 먼저 겁을 내면 어떡해요? 은혜가 좌절감만 클지 어떨지, 그건 은혜가 감당할 몫이라고요. 엄마가 평생 은혜 일을 대신 판단하고 결정할 작정이세요?”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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