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장애인 행사에서 나온 얘기다. 이 자리에 참석한 팍시 에이블의 운영자인 조항주 씨는 장애인 성의 대안을 ‘섹스 자원봉사’라고 운을 뗐다. 혹자가 듣기엔 대단히 근사한 이 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매우 위험한 발언인 동시에 조항주 씨가 과연 어떤 생각을 갖추고 그와 같은 말을 했는지 의심케 한다. ‘섹스 자원봉사’를 잘 뜯어보면 숨구멍마다 반사회적, 반인권적적인 주장이 졸졸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용어 자체의 애매모호함이 대신 말해주듯 장애인과 섹스, 자원봉사 등 세 가지 용어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정치, 사회적 현상과 구조를 제대로 다시 짚어봐야 한다고 요구한다.

우선 느낀 점으로 다가오는 섹스 자원봉사는 성적 욕구가 있는 장애인 혹은 섹스할 기회(삽입섹스를 전제)를 갖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자원봉사의 차원에서 섹스를 ‘해주자는 것’이다. 이처럼 해주자는 것, 이것이야말로 수직적인 관계이다. 장애인계에서 그토록 반대한 ‘장애인의 성적 대상화’가 여기에 숨어있다.

어떤 사람은 벌써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군. 어쩐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자원봉사는 문자 그대로 자원(육체, 정신, 물질 등 모든 유무형의 인간사회에서 유용한 것들)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원을 자원이 없는 자에게 무상으로 주는 것이다. 요즘은 의도적으로 ‘자원 활동’이라는 용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자원 활동은 감정 이전에 지성과 행동의 영역이고, 자원봉사는 감정에 호소하는 동정의 성격이 짙다.

그런 반면, 성적 관계는 감정적으로 아주 예민한 영역으로서 언제나 보호받고,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각에서 장애인에 대한 섹스 자원봉사는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도대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섹스 자원봉사나 한 번 해줘야지’와 같은 전형적인 대상화 논리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용케도 섹스 파트너를 찾아서 중증 장애인이 섹스할 기회를 가졌다고 해도, 이는 엄연히 ‘상호 합의에 의한 일반적 성관계’이지 자원봉사와는 완벽히 거리감이 있다. 이를테면, 애인끼리나 맘이 맞아서하거나, 혹은 두사람이 서로 합의한 섹스를 자원봉사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따라서 섹스 자원봉사가 대안인양 부추겨지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을 더 깊은 사회적 질곡에 추락시키고, 동정과 시혜를 조장하는 한편, 천부 인권으로서 존중되어야 할 성적 권리를 쓰레기통 속에 버리는 것과 같다. 사실 일본에서도 섹스 자원봉사의 의미는 ‘장애인의 성 향유를 위한 성적 활동보조 서비스’일 뿐이다. 논란이 있다면, 한국에는 이 의미를 담을 용기(개념)를 준비하지도 않은 채 서툴게 번역하여 날 것으로 먹으려는 몇몇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의 안과 밖을 세심히 이해하는 장애인들은 발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숫제 이 같은 말도 한다.

‘우리가 섹스에 환장한 사람들이란 말이야! 왜 섹스까지 자원봉사를 받아야 해? 차라리 안하고 말지!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장애인 성을 문제로 볼 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점은 각종 열악한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장애인 스스로가 만남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님을 보고 뽕을 따더라도 일단 만나야할 게 아닌가. 나아가 다양한 성적 정보가 취약하여 성을 포기한 채 성적 주체성과 자기 결정권이 왜곡되거나, 무성적 존재로 취부당하고, 억압당하여 성을 향유하지 못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결국 문제는 현실적이며, 대안 역시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현실은 순전히 사회적인 수준이다. 성이란 건 개인의 관계로 환원되기 전에는 오로지 사회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성은 사회적인 의미가 아닌, 장애인 개인의 제 능력으로 해결해야 할 혹 해결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자연적 숙명인 것으로 치부당해 왔다. 이렇게 억압당한 성은 위축되다 못해 자신을 검열하였고, 성을 향유하고 싶은 마음까지 과도하게 제한하다가 끝내 무성적 아메바 인생이 되었음은 신이 알고 장애인이 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게 중요하다. 장애인의 성을 향유하기 위한 진정한 대안의 기본 전제는 바로 우리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문제 속에 있기 때문. 무엇보다 장애인을 성적인 존재로 봐야 한다. 이윽고, 억압했던 성을 이제는 향유할 수 있다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구체적 대안과 시스템을 내놓아야 한다.

현재 정부의 장애인 복지정책이 시행되는 장애인 종합 복지관은 150여 개가 넘는다. 각종 장애인 관련 시설, 단체 등을 포함한다면 장애인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수는 흘러넘친다. 이곳에 장애인 복지정책의 하나로서, 장애인 성 관련 정책이 포함되어 지원되고, 시행만 된다면 당장 눈부시게 효과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임은 삼척동자도 예상할 것이다.

특히, 장애인 복지관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약간의 지역적 특성과 복지관의 차이점에 따라서 유동성은 있지만, 기본적인 서비스 내용은 보건복지부 지침에 준한다. 이 보건복지부 지침 안에 장애인이 성에 관한 조항이 새로 삽입되어 시행된다면 이것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바람직한 현상은 장애인 자신의 성적 주체성 및 자기 결정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된 각각의 프로그램, 성 동료상담, 성 전문가 상시 배치, 성 활동보조인에 기반한다.

성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피드백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며,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장애인 간의 만남이 상호 교감의 기회로 상승할 기술적인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실시되어야함은 물론이다.

한 예로, 장애 남성이라도 그가 적극적이라면 채팅을 통해서 여성을 만나 연애할 기회를 만들 수 있으며, 여성일지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예는 만남이야말로 현실적인 대안을 하루 빨리 눈 앞에서 실현시킬 수 있음을 대신 설명한다.

성 활동보조인은 매우 중요하며 또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영역이다. 보조인은 장애인이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활동(성 관련한 정보, 장소 섭외, 목욕, 이동, 옷 벗기기, 성적 대화, 로맨틱한 분위기 조성 등 자위를 돕는 일까지.)을 보조하며,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된다. 보조인 양성은 전문적 교육을 수료한 사람에 의해서 수평적 관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 자립생활 센터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 활동을 보다 세분화하여 보조인 양성 교육이 실시된다면 대안은 더 이상 대안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담론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이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의견이 빈 깡통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에 담론이 실천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특수 상황과 유기적으로 맞물린 구체적인 인식 및 인식을 표현할 걸맞는 명확한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확보하고, 성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애인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비장애인 중심의 성문화를 임의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며, 장애인을 대상화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깊이 없는 고민은 신중하게 자제되어야 한다.

섹스 자원봉사는 있을 수 없으며, 손바닥을 뒤집어보면 ‘섹스 파트너를 구한다.’가 가장 현실적인 문장이다. 극소수의 장애인들에게 사회적으로 동정적 호소를 하여 쉽게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데 유용할지 모를 이 문장은 대다수의 장애인들에게 가서는 수치와 불쾌함을 남길 게 뻔하다.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함께 버리는 격이다. 끝으로 섹스를 하더라도 돈을 주고 받지 않으니 자원봉사라고 판단(?)하는 단순한 접근은 아무리 좋게 봐도 착각이다.

장애인도 다양한 계층적 삶이 있다. 아주 극단적인 사례만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한무리로 몰아넣어, 이거 아니면 저것이란 발언들은 삼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나 성은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 되는 삶의 한 부분이며, 이를 향유하는데도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안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왜곡되어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안이 아니라….

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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