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늘 조간 신문에는 1면부터 유난히 장애인에 관한 기사가 많다. 마침 이번 4.15 총선을 통해 국내 장애인 역사상 최초로 장애인 국회의원을 4명이나 탄생되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최초의 휠체어 여성장애인과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을 맞이하기 위해 국회가 문턱을 낮추는 등 시설 개수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반갑고 뜻깊은 일이기도 하면서 왜 이러한 당연한 일들이 이제서야 이루어져야 했는지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부끄럽고 장애인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 새삼 안타깝기만 하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한번 더 가져보는 것이 장애인의 날의 취지라면 나는 일년 365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승혁이를 키우며 장애인의 세상 부딪히기를 매일 경험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집과 놀이터, 언어치료실 등 제한된 장소이긴 하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하루 한시간 이상 놀지 않으면 길바닥에 누워 꿈쩍도 하지 않는 승혁이의 넘치는 에너지탓에 매일 오후 놀이터에서 승혁이와 그만의 작은 세상 부딪히기를 시험해 본다.

이제 언어능력은 비록 단순하긴 하지만 간단한 자기표현을 위한 문장구사는 가능할 정도로 일년 전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건만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일곱 살이나 먹은 아이가 서너 살 된 제 동생보다도 못한 말썽꾸러기'로 보이는 승혁이는 활기가 넘치고 어휘능력이 넘치다 못해 간혹 눈살이 찌푸려지는 욕설도 곧잘 하는 아이들 무리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늘 아이들 주변에서 배회하고만 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고는 싶은데 갈 자신이 없어 긴장한 나머지 한 쪽 손가락까지 빨고 있는 승혁이가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한 여자아이에게 손을 뻗는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던 나도 숨을 죽이며 오늘 승혁이의 '상호작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엿보고 있던 나조차도 왠지 긴장이 된다.

승혁이가 같이 놀고 싶다는 눈짓을 보내보지만 어딘지 어눌해 보이고 말없이 행동으로 표현하는 승혁이가 제 상대가 못 된다고 생각되었는지 무시해 버린 아이. 이어서 또 한번 다가서기를 시도하는 승혁이는 "같이 놀고 싶다"라는 말 대신에 그만 그 여자아이의 머리방울을 잡아당기고 만다.

곧이어 이어지는 여자아이의 비명소리. "너 왜 그래? 미쳤어? 죽을래?" 속사포같이 빠른 말소리와 앙칼지고 째진 여자아이의 다그침. 당연한 결과이다. 놀라며 움찔 뒤로 물러나며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승혁이. 멋적게 웃으며 한편으로는 여자아이의 반응에 재미있어 하는 듯 하다. 이미 두 아이 앞에 온 나는 전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입에 밴 말 "미안해. 얘가 아직 말을 잘 못해서 그래. 내가 대신 사과할게"하면서 승혁이의 잘못을 대신 사과한다.

난데없는 못된 장난에 여자아이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내 사과로 참아내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버린 여자아이는 "쟤 땜에 짜증나. 우리 다른 데 가서 놀자" 하고 친구들과 함께 우루루 가버린다. 이번에도 실패한 승혁이의 '상호작용'에 또다시 절망감이 느껴지며 한편 그렇게 친구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도 해내지 못하는 승혁이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 승혁이는 어느새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저만치 멀리 떨어져서 한쪽 팔을 바람개비 날개처럼 빙빙 돌리며 놀이터를 뛰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놀이터 바닥에 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주워먹기 위해 내려온 비둘기가 제일 만만해 보이는지 비둘기를 귀찮게 쫓아다니며 깔깔댄다. 아마도 저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듯 하다. 또 이어지는 나의 잔소리.

승혁이와 매일 오후 놀이터에 들어서며 가지는 마음가짐이 기대에서 긴장으로, 이어 실망감과 안타까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일은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작은 희망도 결코 버릴 순 없다.

비록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장애인들 역시 나와 승혁이처럼 세상 밖을 나서는 순간 넘어야 할 수많은 절망감의 문턱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승혁이의 장난에 피해를 입은 여자아이처럼 아마도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와 잠시의 기다림에 익숙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다.

왜 아직도 우리의 일상생활은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비장애인들 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뒤늦게 반성해 본다. 어쩌면 이것이 승혁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얼마전 개통한 고속철도에 탑승을 요구했던 지체 장애인들의 시위를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20여명의 장애인들이 승차권을 샀어도 정작 2명밖에 탑승할 수 없는 고속철도 내부공간 때문에 탑승하지 못한다고 절규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날, 시승식에 제일 먼저 장애인들을 초대해서 무료시승 행사를 했더라면 또 그 장면이 TV에 방영되었더라면 그 행사에 초대받은 사람들 뿐 아니라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했을 것이다.

일년에 단 한 번 뿐인 장애인의 날 행사만으로 이 땅의 장애를 겪고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다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형식적이고 연례적인 장애인의 날 행사 대신에 이제부터라도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행사를 기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일년 365일 늘 장애인을 배려하는, 연중무휴 장애인의 날 행사를 말이다.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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