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머리를 꿰매는 `대형사고`를 친 승혁이.

"아줌마가 부끄러울 게 뭐가 있나. 아줌마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야."

가끔 물불 안 가리는 '단순 무식함'이나 최소한의 체면도 무시하는 '철면피'로 대표되는 아줌마스러움을 비난하려는 세인들의 질타가 아니다. 바로 필자와 함께 6년을 살아온 나에게 좀더 '아줌마스러워지길' 당부하는 남편의 진심 어린 충고이다.

주부생활 6년 차이면서도 아직도 새로운 사람과 사귀기를 쑥스러워하고 내성적이기까지 한 나에게도 가끔은 남편의 '아줌마 정신' 충고가 떠올라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파시는 분께 "많이 주세요"를 몇 번이고 크게 외치던가 남편의 정장도 아닌 만 원짜리 바지를 사는데도 천 원이라도 깎기 위해 가게주인과 입씨름을 하곤 하는 걸 보면 나도 아줌마 정신으로 무장한 진짜 아줌마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이렇게 제법 물건값 흥정도 할 줄 알고 우리 집 아이들과 또래일 듯한 아이가 스쳐 지나가면 "아이가 몇 살이에요? 귀엽네"하고 대뜸 아이엄마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도 하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아줌마 정신이 쑥 자취를 감추고 마냥 침묵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네 놀이터에서 아들 승혁이와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마주치고 말 걸기를 시도하는 순간이다. 어린이집을 마치는 오후 3시 30분 무렵부터 승혁이를 집에 데려오는 시간부터 나의 머릿속은 오늘은 또 어떻게 승혁이에게 색다른 놀이경험을 주어야 하나 하는 '프로그램' 계획으로 꽉 차 있다.

놀이라고 해봐야 놀이터에 가서 함께 미끄럼을 타고 모래놀이를 지켜봐 주는 정도이지만 일 년이 십 년처럼 소중하고 하루가 한 달처럼 빠르고 아쉽게만 흘러가는, 승혁이 같은 장애아동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생활 속의 놀이라도 최선을 다해 아이의 놀이에 참여해주며 끊임없는 의사소통의 시도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비록 늘상 어린이집과 놀이터,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과이긴 하지만 언젠가 심리치료 선생님이 "최대한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사고에 따라 놀이를 진행시켜 아이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활동(치료)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놀이치료의 효과를 이야기 해 주신 적이 있어 늘 똑같은 놀이터와 놀이공간에서도 다양한 놀이방법을 시도해서 승혁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해 본다.

바로 어제도 승혁이와 동생과 함께 놀이터에 갔다. 평소 쫓고 쫓기는 놀이를 좋아하는 승혁이를 위해 내가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으으으"하고 소리를 내고 승혁이에게 "이녀석, 난 우주에서 온 괴물이다. 도망가지 않으면 널 잡아버리겠다"라고 제법 겁을 주며 쫓아 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승혁이는 늘상 하듯이 손에 모래만 잔뜩 움켜쥔 채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아까부터 우리보다 먼저 온 아이들에게 관심이 가는 눈치이다.

이제 여섯 살, 어쩌면 유아기와 아동기의 중간단계로 제 나름대로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는 몸짓과 때로는 우유병을 빠는 시늉을 내기도 하는 과도기적 시기이므로 또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긴장감이 앞선다. 혹시나 다른 아이들에게 갑자기 얼굴을 향해 모래를 뿌리거나 때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보통 아이들이었다면 "나 여섯 살이야. 너 몇 살이니?" 혹은 "너네 무슨 놀이하는 거야?" , "우리 같이 놀래?"하고 또래놀이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이제 겨우 낱장의 단어카드를 보며 사물을 인지하고 어렵사리 발음을 따라하는 승혁이에게 또래아이들에게 접촉을 시도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상호작용 놀이'는 꿈도 꾸기 어렵다.

다만 자신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표현, 내가 너에게 관심이 있고 함께 놀고 싶다는 의사표시는 승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만 표현된다. 손을 뻗어 다른 아이의 머리를 만지거나 어깨를 툭 치는 것. 이 정도라면 경미하다. 가끔은 친구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돌을 던지거나 모래를 뿌리기도 한다.

예전에 사람들에게 애꿎게 아무 이유 없이 모래를 뿌리거나 때리고 해서(작은 주먹이지만 승혁이의 손맛은 꽤 매운 편이다) 사람들에게 '아이가 왜 이러냐'는 눈총을 받기 일쑤여서 승혁이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가는 것이 가장 곤혹스럽곤 했는데 한동안 꽤 나아지는가 싶더니 요즈음 언어치료 수업을 놀랄 정도로 잘 받으면서 이에 대한 '공부 스트레스'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소소한 피해를 주는 승혁이 때문에 고민중이다.

몇 주전에는 쇼파 위에서 발을 헛디디지도 않았는데 엄마 앞에서 보란듯이 갑자기 쇼파 아래로 머리부터 떨어져 문지방에 부딪히는 바람에 머리살갗이 터져 승혁이가 그토록 싫어하는 병원에 가서 바늘로 꿰매야 하는 대형사고까지 저지를 정도로 승혁이는 톡톡히 '유아사춘기'를 치르고 있다.

그런데 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싶어 '귀찮게 하는' 승혁이의 지나친 애정 표현이 어른들만큼이나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누군가의 간섭이나 방해를 싫어하는 야무지고 영악한 요즘의 아이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

이제 조금 있으면 '너 저리가'하는 말이 나오겠구나 하는 내 예상과 거의 비슷하게 승혁이의 '말 걸기 작업'에 귀찮음을 느낀 아이들은 몇 초도 안되어서 아예 그 자리를 떠나 어딘가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귀찮으니까 저리가서 놀라'고 떠밀기도 한다. 때로는 "너 왜 그래? 나한테 맞고 싶어?"하고 진짜 승혁이를 때릴 것처럼 주먹을 내보이는 남자아이들도 있다.

이처럼 남에게 위협적일 정도로 자기 표현이 똑부러지는 아이들에게 늘 뭔가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로 '낙인 찍힌' 승혁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더 속상한 것은 그러한 아이들의 반응에 오히려 빙글빙글 웃으며 그것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하는 듯한 승혁이의 태도이다.

그동안 숱하게 "승혁아 친구하고 놀고 싶을 땐 그냥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아니면 같이 놀자"하는 거야"하고 가르쳤건만 승혁이의 뇌는 보통 아이들의 그것과 틀린 것인지 도무지 '입력'이 되질 않고 오로지 어떤 물건으로 다른 아이를 살짝 치거나 뭔가 피해를 주어서 상대방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언어 치료 같은 특수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비장애아동과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아이들과의 놀이에 참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또한번 승혁이의 등을 떠밀며 "아이들하고 같이 놀자고 해봐."하고 또래 아이들 놀이에 참여할 것을 권유해 본다. 하지만 또다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 걸기를 표현하는 승혁이를 보는 아이들은 대부분 '저리가. 귀찮아. 너희 엄마 저기 있으니까 저기 가서 놀아" 대답한다.

다행히도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장애아·비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에 다니는 승혁이가 아침 등원시 현관문 앞에서 들어가길 주저하고 신발 속에서 발을 꼼지락거리며 엄마의 팔을 꽉 잡고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어느새 한 친구가 승혁이의 손을 잡아주며 "승혁아, 우리 들어가서 놀자."하고 이야기 해 주는 고마운 친구들도 있다.

또 한 동네에 오 년 가까이 살아서 그런지 '말 못하는 아이'로 꽤 알려진 승혁이를 자신의 갓난아기 동생쯤으로 여기는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는 승혁이를 가끔 형이나 누나처럼 '데리고' 놀아주는 친구들도 있다.

요즈음 승혁이의 부쩍 늘은 어휘능력에 뿌듯하고 대견해지다가도 길거리만 나서면 눈에 띄게 산만하고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발길로 걷어찬다든가 물건을 빼앗으려 한다든가 해서 피해를 주고야 마는 승혁이를 보면 "얘 혹시 무슨 문제 있어요?"하는 질문이 날아오거나 어디에서든 늘 '튀는' 승혁이를 보며 장애아가 아닌가 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이 승혁이를 어떻게 볼까 하는 자격지심으로 내 쪽에서 이미 마음이 움츠려들 때 가끔은 한없이 무기력하고 약해지는 초라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친구들의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오뚜기처럼 끊임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좀 과격하긴 하지만 '애정이 넘친' 말 걸기를 시도하는 승혁이를 보며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만 싶었던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본다.

"승혁아 우리 내일도 화이팅"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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