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야류 <사진출처:부산시 동래구청>

“실컨 우이소. 서방 눈치보느라 울지도 몬했을낀데 실컨 울고나믄 속이 좀 시원해 낌니다.”

넋두리를 섞어가며 한참을 울고 난 곽씨 부인은 겨우 진정을 하였습니다.

“이왕지사 눈은 감은 기고 앞으로 우째 살아야 할지 판수님 이바구를 쫌 들어 볼라꼬예.”

“이바구를 하자믄 김니더.”

소경 판수는 곽씨 부인의 심정을 짐작했는지 길게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내 눈을 좀 볼람니까?.”

판수의 말에 곽씨 부인은 저고리 고름으로 눈물을 닦고 판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렇게 가리 놓고 멀 보라꼬 해 샀는지...’곽씨 부인은 어리둥절하여 판수를 바라보았더니 판수가 뒤로 묶인 검은 헝겊 띠를 풀었는데.‘아이고...’ 곽씨 부인은 입을 딱 벌린 채 말문을 잊었습니다.

“봤능기요?”

아이들이 찰흙놀이 하다가 던져놓은 흙반죽 같이 더러는 뻘겋고 더러는 검은 살점들이 짓이겨지고 엉겨붙어 어디가 눈인지 눈썹인지 분간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판수의 눈부분은 흉측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판수는 다시 헝겊 띠로 눈을 가리고 뒤로 묶었습니다.

“우리 집사람 자테도 잘 한합니다만 아지매 사정이 하도 딱하이 한분 들어나 볼람니까?"

소경 판수는 정말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본래 1)동래 이가의 장손이었심니더”

“동래 이씨라카믄 정승판서 집안 아인기요?”

“그랬지요. 정승판서 가문이지요. 웃대에 정승판서도 나왔다 캅디다. 그 잘난 가문 때문에 내가 이꼬라지가 됐다 아입니까.”

“우짜다 눈은 그리 됐는데예.”

“내가 서너살 때라 캅디다. 우리 집안에 경사가 있었지요. 아버지가 소과에 급제를 해서 진사가 되던 날이랍디다. 그 날밤 집안에는 잔치가 벌어지고 마당에는 2)사당패놀이가 한창이었답니다. 우리 어무이는 손님접대 한다꼬 바빴고 3)교전비가 나와 동생을 돌보고 있었답디다. 모두가 흥에 겨워서 춤추고 소리하고 잔치는 무르익어 가는데, 아직 어린 교전비가 잔치구경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모양입니다. 방안에서 도련님 잘 보고 있으라는 마님 즉 우리 어무이의 분부에도 불고하고 교전비는 잔치구경에 몸이 달아 갓난장이 남동생은 들쳐업고 나는 방안에 놔둔 채 밖으로 문고리를 걸어놓고 바깥마당으로 잔치 구경을 가버렸지요.”

“그래서 우째됐는데예.”

“다 내 팔자겠지요. 때는 겨울이라 방안에는 화롯불이 있었는데 혼자 남겨져 심심해진 아아가 벌건 숯불을 쑤시보다가 언젠가 어무이가 화롯불에 밤을 굽어주던 기억이 났던 모양입니다. 방구석에는 마침 교전비가 몰래 갖다 놓은 생률이 한웅큼 있었는데 아이는 생률 몇 개를 화롯불속에 넣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저런, 생률을 칼집도 안내고 꿉으믄 터질낀데.”

“맞심더. 바로 그 기 사달이었지요. 생률이 터지믄서 벌건 숯댕이가 아아 눈을 덮친기라요.”

“집안에 난리가 났겠네예.”

“앞마당은 사당패의 풍물소리로 시끄러?고 모다 잔치에 정신이 팔려가 생률 터지는 소리나 알라 우는소리는 아무도 몬들은 기라예.”

“저런 그래 아아가 얼매나 아팠을꼬.”

“밤이 늦어서야 잔치는 대충 끝났고 먼저 들어 온 어무이가 아를 발견했을 때는 아는 울다 울다 지치가 이미 자물?는기라요.”

“교전비가 혼줄이 났겠네예?”

“교전비는 우리 할배자테 끌리가가 머슴들에게 실컨 얻어맞고 광에 갇히 있다가 결국은 장독으로 죽었지요."

"아이고짜꼬. 생목심을 그래 배릿구먼"

"울 할배가 용하다는 의원을 모다 불러들이고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아무 소용도 없이 내 눈은 이 꼴이 되고 말았지예. 삼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더 이상 가망이 엄서 보이자 할배는 나를 뒷방에 가두게 했심니더.”

“그 애린 기 무신 죄가 있다꼬 방에 가둔다 말인기요?”

“눈감은 뱅신이 생기서이 집안 망신이고 가문을 욕되게 한다는 거지요. 뱅신이라꼬 장손자리도 동성자테 넘기주어야 할 판이었던 모양입디다.”

“시상에, 그래도 그렇지 뱅신자슥도 자슥인데 자슥이 중하지 가문이 그리 중한가.”

“우리 가문은 그랬지요. 자슥을 골방에 가다놓고 우리 어무이는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답니다.”

“하기사, 자슥이 그 지경이 됐서이 에미 맴이 오죽 했겠능기요.”

“그것만이 아니었지요. 집안을 망치 묵을라꼬 그런 매누리가 들어와서 뱅신이 생깃다꼬 어른들의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디더.”

“어무이 맴 고생이 참으로 막심했겠네예.”

“내가 일곱 살 나던 해 우리 마실에 단오놀이 온 광대패가 있었는데 그 광대패에서 눈감은 여슥아가 소리를 기차게 한다는 머슴들의 이바구를 어무이가 우연히 듣게 되었나 봅디더.”

“그기 무신 소린데예?”

“그날 밤 어무이는 자신의 패물을 몽땅 챙기서 나를 데불고 광대패의 4)모가비 어른을 찾아갔답니다. 소리하는 여슥아 맹키로 내자테도 소리를 갈차달라는 부탁을 함시러 패물을 한 보따리 ?낀기지예.”

“저런, 뱅신이라꼬 자슥을 떼놓다이, 그라고 어무이는 어찌됐능기요.”

“어무이는 내가 방안에 가치가 짐성 맨키로 사는 것 보다는 광대패라도 따라가서 팔도 유람이라도 댕기는 기 낫다고 여긴 기지예. 그란데 소문을 들으이 어무이는 나를 보내노코 그 질로 대들보에 목을 매었답디더.”

판수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였으나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는 그도 목이 메였습니다.

“시상에, 그럴갑세 차라리 어무이도 같이 갈끼지.”

“우리 어무이는 몬 그럴사람임니더. 내가 철이 들고 생각해보이 어무이 친가를 위해서도 그럴 수 빼기 엄을끼라 싶데예.”

“그러키. 우리 맹키로 아뭇것도 엄시 살믄 숭될것도 엄지만서도 양반가문에서 매누리가 달라뺐다카믄 집안망신이라꼬 사돈댁까정 화가 미칠을낌니더.”

소경 판수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나 구구절절 해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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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래 이씨 : 한국 성씨에 없는 본관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실제로 가문에서 장손 자리를 내놓는 사례가 있어 특정 성씨를 사용 할 경우 그 가문에 혹시라고 누가 될까봐 없는 성씨를 사용 하였음.

2)사당패 : 지난날,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면서 노래와 춤을 팔던 여자, 또는 그 무리. 남자는 남사당이라고 했는데 남녀가 함께 다니기도 하고 했다고 함. 양반 댁의 잔치 등에 불려가 풍물 등 놀이를 놀아주기도하고 장터를 떠돌기도 했는데 사당패 풍물패 걸립패 등 규모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寺黨· 社黨· 社堂’으로 적고 있다.

3)교전비(轎前婢) : 신부가 시집갈 때 데리고 간 계집종

4)모가비(某甲) : 사당패 등을 총지휘자 하는 우두머리, 꼭두쇠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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