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패 공연/부산시 동래구청.

“나는 광대패에서 소리를 배와서 이곳저곳 장터를 떠돌믄서 소리를 했지요. 모가비 어른은 내 눈이 사람들 보기에 숭하다꼬 그 때부텀 이렇게 껌정 헝겊으로 가리 줍디다."

소경판수는 아내에게도 잘 하지 않았다는 과거 이야기를 웬일인지 곽씨 부인에게 전부 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예' '아이구짜꼬' '그러키' '저런저런' '시상에' 곽씨 부인은 온갖 추임새를 넣어가며 소경 판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소경 판수는 그냥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듣고 있는 곽씨 부인이 흥분도 하고 눈물도 흘리면서 관객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지송한 말씸인데 판수어른은 소리는 잘 했능기요?"

"잘 했지요. 소리도 몬하믄 눈감은 빙신을 누가 데불고 댕기믄서 밥을 주겠능기요. 모가비 어른이 갈차주고 또 댕기다보이 저절로 배와집디다. 한분 들어 볼랑기요?"

사실 곽씨 부인은 소경 판수의 소리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남편도 소리꾼이라도 할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 뿐이었으니까요.

"옛날 조응이라는 사람이 경상도 동래군에서 판관을 지냈는데 어린 아들 하나를 두고 마느래가 일찍 죽어 새 장개를 갔답니다. 그란데 후처로 들어 온 다신에미의 전실 자슥 구박이 어찌나 심했든지 이우재 사람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네요. 그 소리를 자주 했지요."

소경 판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소리를 시작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그 목소리는 애간장을 녹이는 듯 했습니다.

“1)...이내 나는 죽거들랑 앞산에 묻지 마소. 뒷산에도 묻지 말고 고개고개 넘어가서 가지밭에 묻어 주소. 가지 형제 열리거든 우리 형제 연줄 알고 눈물 한번 뚜기 주소. 우리 동무 날 찾거든 가지 한쌍 따서 주소"

곽씨 부인은 소경 판수의 노래 소리에 또다시 훌쩍 훌쩍 눈물을 찍어내야 했습니다.

"구박 할 다신에미도 엄는 내 신세가 처량도 하고, 눈감은 뱅신아아가 소리를 하이 듣는 사람들도 마이 울었지요"

"그러심더. 지도 눈물이 나네요. 그란데 소리를 이래 잘 하는데 우짜다가 소리를 안하고 판수가 됐능기요?”

“그렇게 몇 년을 떠돌아 다니다가 하루는 화계장터에서 놀이판이 끝나고 나이 어떤 시님이 모가비 어른를 찾았지요.”

“시님이 무신 일로 모가비 어른을 찾았는데예?”

“그 시님이 놀이판에서 나의 소리를 들어보고 재주가 있어 보인다꼬 자기자테 기믄 잘 가르쳐 보겠으이 달라는 것이었지요. 모가비 어른은 우리 어무이자테 많은 패물을 받고 마지못해 데리고 다니기는 했으나 눈감은 소경이라 귀찮은 터에 시님이 맡겠다고하이 몬이기는 채 주어 버린기지요.”

“소리하는 눈감은 여슥아도 있었다믄서요?”

“가는 내가 들어가고 얼마 안돼서 어느 양반댁 영감자테 2)동녀로 팔아 묵었지요.”

“사람을 그리 사고 팔다이.”

“그기 흘러댕기는 기 광대들의 인생아인기요.”

“그래, 그 시님은 머할라꼬 아아를 데려갔을꼬.”

“나도 영문을 모린채 시님 손에 끌리 갔심더. 시님은 지리산 한 기티 쪼맨한 암자에서 동자승 하나와 살고 있었는데 알고보이 그 시님도 소경이었심니더.”

“눈감은 사람도 시님이 되는가베.”

“옛날에는 맹승이라꼬해서 눈감은 시님이 많았답니다. 그런 시님들이나 맹인 판수들자테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는데 그기 3)소경(少卿)배슬이랍니다.”

곽씨부인은 처음듣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머라꼬예? 소경이 배슬이란 말인기요? 시상에, 지는 눈감은 사람을 놀리는 말인 줄 알았심니더.”

“나라가 바끼고 불교를 없앤다고 하는 바람에 절이나 시님들은 전부 산으로 쫓기가고 소경배슬도 엄서졌지만 지금도 관상감의 과거시험에는 음양과라는 기 있는데 음양, 길흉, 점복의 명과학을 담당하는 맹인을 뽑지요. 그게 급제를 하믄 1등은 종팔품 봉사(奉事), 2등은 정구품 부봉사(副奉事), 3등은 종구품 참봉(參奉), 벼슬을 주지요. 또 조정에서는 맹인을 고자(?者)라고도 했는데 조광조라는 대감이 조정에서 여악(女樂)을 맹인들로 구성된 고악(?樂)으로 바꾸자고 주장한 일이 있었답니다.”

“조광조라카믄 그 야시같은 지집 난정인가하는 년이 설치고 다닐 때 말인기요?”

“예, 조정대신들이 눈감은 4)고자는 절주(리듬)도 잘 모리는데 편경 같이 에러븐 악기를 우째 치겠느냐꼬 반대를 하자 조광조가 ‘고자는 그 집의 소재를 잘 알 뿐 아니라 소소세로도 잘 찾아가고 거문고나 비파도 잘 뜯는데 편경 쯤 못하겠느냐’고 주장을 했지만 다른 대신들의 반대가 심해서 결국은 몬하고

말았담미더.”

“조광조라는 어른이 그렇게 안죽어시믄 눈감은 사람들도 살기 좋은 시상이 되었을 거로, 그 야시 같은 지집 난정이 때매 억울하게 죽은 기 맞지예?”

“그렇지는 안을낍니더. 임금이 줏대가 엄서서 그랬지요.”

“그건 다 지나간 이바구고, 그렇다카믄 판수어른은 와 과거를 안보는기요.”

“절에서 공부를 하다보이 다 부질없다 싶데요. 그 시님자테서 첨에는 밥하고 나무하고 불목하니 노릇을 하믄서 육갑과 경문을 배왔지요. 시님자테 얻어맞기도 참 마이 맞아심더. 근 이십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그 시님은 참말로 훌륭하신 분이었심미더.”

“그래 좋은 시님 자테서 그라믄 시님하지 판수질을 와 하능기요?”

*****

1) 조선왕조 때 동래군 판관 조 응이 조생이라는 아들하나를 두고 최씨를 재취로 맞았는데 전실자식 구박이 하도 심해서 동네 사람들이 부른 노래라고 함. 노래 전문. 수수대야 수만대야 오실동동 울아배야 전처자식 두고 후실장가 가지 마소 모시적삼 속적삼이 눈물닦기 바쁘다오

숙굴숙굴 수만대요 만사태평 울아배요

전실자식 있거들랑 후실장가 들지마소

이내눈물 받아서 지양뜰에 뿌렸다가

지양꽃이 피거들랑 날만이기 돌아보소

이내 나는 죽거들랑 앞산에 묻지마소

뒷산에도 물지말고 고개고개 넘어가서

가지밭에 묻어주소 가지형제 열리거든

우리형제 연줄 알고 눈물 한번 뚜기주소

우리동무 날 찾거든 가지 한쌍 따서 주소

*충효예 새생활대전집 12권에 수록된 노래. 도서출판 꿈나무. 1980년

2)동녀(童女) : 나이 어린 여자 애. 나이 많은 남자들이 회춘의 목적으로 동녀를 데리고 잤다. 서양에서는 슈네미티즘, 동양에서는 도교의 논리에 의해 남성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미혼여성 중에서도 동녀를 성적으로 상대하면 회춘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동녀와 함께 자면 건강을 되찾는다는 서구인들의 믿음은 구약성서 열왕기상 편에 나오는, 3천여년 전 이스라엘 왕 다윗의 이야기에서도 유래된다. 다윗이 늙고 기운이 쇠하자, 신하들은 정력을 보강하는 방안으로 동녀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슈넴이라는 마을에 살던 아비삭이라는 동녀를 데려와 왕에게 동침을 권유했다. 이렇게 동녀와 동침하면서 정기를 되찾으려는 습속을 ‘슈넴의 여자’라는 뜻에서 슈네미티즘(Shunammitism)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사회적 행동에 대한 책임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상대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 되어 있고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는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3)소경(少卿) : 고려시대의 관직. 위위시(衛尉寺)·대복시(大僕寺)·예빈시(禮賓寺)·사농시(司農寺)·대부시(大府寺)·사재시(司宰寺)·사수시(司水寺)에 두었던 종4품 벼슬로, 정원은 각 1명씩이었다.

4)고자(?者) : 맹인의 다른 이름. 이 내용은 중종실록 권 35, 중종 14년 2월 병자조의 내용이라고 함. 시각장애연구 제13집(1997년) 임안수의 맹인 명칭고에서 재인용.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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