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학기가 시작하는 첫날 아침 그녀는 학생들에게 그들 모두를 공평하게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며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건 앞줄에 앉은 ‘테디’ 라는 이름의 아이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지난 학기동안 아무와도 함께 놀지 않았고 늘 더러운 옷에 제대로 씻지도 않고 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들에게 공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의 구겨진 미완성 과제물에 주저없이 붉은 ‘F’ 자를 써놓곤 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자기반 학생들의 지난 기록을 검토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미루어 오던 테디의 기록을 보게 되었다. 그의 기록을 읽으며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의 1학년때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테디는 명랑한 성격에 아주 영리하다. 과제물도 단정하고 이런 아이가 우리반에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2학년때 선생님은 이렇게 적었다. ‘테디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다. 다만 어머니가 아프셔서 집안 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3학년때 선생님은 ‘ 테디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그에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듯 하다. 이대로 간다면 학업에 지장이 있을듯 싶다.’ 라고 쓰고 있었다.

4학년때 선생님이 쓴 글에는 ‘테디는 우울한 성격이며 학업에는 관심이 없다. 친구도 별로 없으며 때로는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한다.’ 라고 되어 있었다.

얼마후 크리스마스가 되었고 학생들이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 중 구겨진 누런 봉투에 든 형편없는 모양의 선물이 테디가 가져온 것이었다. 그 안에는 구슬이 깨져나간 값싼 인조팔찌와 4분지 1이 남은 낡은 향수병이 들어 있었다. 이를 보며 킥킥거리고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녀는 주저없이 팔찌를 손목에 끼고 향수를 뿌렸다. 수업이 끝난 후까지 남아있던 테디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늘 선생님에게서 우리 엄마의 냄새가 났어요.’

그날 그녀는 혼자 교실에 남아 한참을 울었다. 그후 그녀는 국어와 산수 따위를 가르치기를 멈추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특히 테디에게 신경을 써 주었다, 그도 반응을 보였다. 5학년이 끝날 무렵 그는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금 모든 학생을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테디를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1년후 그녀는 교실 문 앞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테디가 쓴 쪽지에는 그녀가 이제껏 그가 만난 선생님 중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6년후 그녀는 테디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그는 전교 3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아직도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고 적혀 있었다.

4년후 그녀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테디에게서 온 것이었다. 힘들었지만 이제 곧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며 아직도 그녀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4년이 흐른 후, 그녀는 다시 테디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금 더 공부를 했으며 아직도 그녀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에는 의학박사 ‘테디 스토다드’ 라는 서명이 들어있었다.

다음해 봄, 그녀는 테디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수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모석에 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신랑의 어머니 자리에 앉아 달라는 초대의 글이었다.

그녀는 깨진 팔찌를 끼고 낡은 병에 남아있는 향수를 뿌리고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식이 끝나고 포옹을 하며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저의 오늘도 없었을 겁니다.’

그녀가 답했다. ‘나는 너를 만난 후에야 비로서 선생님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단다.’

(얼마전 은퇴한 직장동료가 이-메일로 보내온 이야기다.)

내게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다. 35-6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영등포 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에게서 잠시 영어 개인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름은 잊었고 겨우 얼굴만 생각이 난다. 그에게서 특별히 영어를 배웠다는 기억은 없다. 내가 혼자 공부한 것을 검토해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나를 또래의 남들과 동등하게 대해 주었던 최초의 사람이다. 학교에서 적성이나 지능검사를 하는 날이면 용지를 얻어다가 수업대신 작성하게 했고 결과를 가져다가 설명을 해 주었다. 학교에서 영어시험이 있는 날은 시험지를 가져다가 시험을 보게 하고 다른 아이들의 성적과 비교를 해 주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으며 그들과 경쟁하며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선생님이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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