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뽀얗게 일어나는 신작로 양 편에 앉아 쉬는 시야로 황금물결 가득한 들판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걸 보니 아마도 늦은 가을이었던 모양이다. 24키로 행군 길 다음에 남아있는 유격 훈련에 대한 공포보다는, 햇살 좋은 가을날 소풍이라도 떠난 것처럼 설레던 그 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단 유격대 연병장에 도착하고 군장을 풀기도전에 빨간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유격조교들은 이내 악마로 돌변하여 소풍길나선 올빼미들의 혼을 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불과 하루가 지난 다음날 아침, 식사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깨부터 시작하여 수저를 쥔 손까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격체조의 악랄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현실에 닥치고 보니 그 고통, 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환경적응 능력은 참말로 놀랍다. 손이 움직이지 않아 식사의 어려움을 느꼈던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유격훈련병들은 이내 밥을 먹는 대체 수단을 생각해내게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저를 쥔 손은 가만히 있고 머리를 움직여 수저에 입을 갖다 대는 방법.

오늘 아침. 이미 오그라든 손으로 힘들게 밥을 먹다 문득 수십 년 저쪽에 있던 유격장의 그 날 아침이 떠올랐다. 힘들었던 유격체조의 고통도, 악마 같은 빨간 모자의 조교들도 없지만, 오늘의 고통은 유격훈련과는 차원이 다르다.

훈련을 끝내고 되돌아갈 자대가 없다는 사실. 오그라진 손은 이제 다시는 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즐거운 소풍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사실.

상상도 못했던 장애로 인해 집 밖으로 단 한걸음도 나서지 않은 하루가 유리창에 저물고 있다. 식탁에 흘린 밥알, 김치 국물. 이렇게 나의 생은 손 쓸 새도 없이 깊은 동토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인가?

1958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시절, 전후 베이비붐 1세대답게 오전반 오후반을 넘어 저녁 반까지 나뉠 정도로 유달리 많은 또래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늘 그렇듯 살아간다는 것은 주연과 조연의 적절한 배치. 안타깝지만 그 많은 또래들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는 그림자 인생이었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훈장으로 여기는 민주화 시절도 공중전화박스에 숨어 지켜보는 것으로 흘려보냈고, 그때의 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참여정부의 시대도 내게 주어진 역은 노동과 식량을 바꾸는데 익숙한 도시노동자.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주연들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그들에게 글을 읽는 작은 재미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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