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보. ⓒ와이어투와이어필름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살아간다고 한다. 일례로 사랑을 하게 되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못생기거나 허물이 많더라도 그저 예쁘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흔히 바보라고 비하해서 부르는 지적장애인들이나 발달장애인들을 영화에서 묘사할 때는 영화인들이 보고 싶은 면만을 그려왔다고 할 수 있다.

찰리채플린은 "모던 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약간은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런 바보의 모습으로 그 당시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을 날카롭게 풍자하여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다. 찰리채플린으로 부터 시작된 이런 바보의 이미지는 많은 영화인들에게 계승되어그들의 작품 속에서 바보들을 등장시켜 사회의 모순을 조롱하고 저항하는 방편으로 사용하곤 했었다.

근래에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미국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들 수 있겠다.지적장애인인 검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60~80년대 까지 주위를 둘러 볼 새도 없이 역사가 이끄는 대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미국의 모습을 다분히 우화적으로 표현하였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화라면 83년도에 발표된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보선언"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지적장애인은 착하지만 머리가 좀 모자라단 점을 내세워 군사독재 체재 하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과 가치관의 변화가 심했던 70-8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희화적으로 풍자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예전처럼 거창하게 사회 전체의 문제를 꼬집는 캐릭터 대신 장애인 개인의 특성이나 가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2005년 개봉한 ”말아톤“에서는 장애 때문에 외부 사람들은 물론이고 부모와도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발달 장애인이 마라톤을 하면서 점차 세상과 소통 하는 법을 배운다고 애기한다. 그리고 2006년에 상영된 ”맨발의 기봉이“의 지적장애인 기봉씨는 동네에서 이름난 효자로,2007년 ”허브“의 상은이는 부모님이 모두 사망한 뒤에도 사랑도 하고 당당하게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바보라고 불리웠던 장애인들의 캐릭터는 시대가 바뀌면서 외형상 변화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즉 예전 찰리채플린 때나 최근의 “허브”에서 보여 지는 장애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티 없이 맑아서 주변사람들이나 관객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올 2월 개봉한 영화 "바보"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여기서도 지적장애인 남성(승룡이-차태현) 등장하지만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착하고 순수한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뻔한 내용을 보여준다. 내용을 보면 지적장애인 승룡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토스트 노점상을 하며 동생을 뒷바라지 하며 어린 시절 헤어진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승룡이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 점점 가까워지지만 그토록 아끼는 동생이 병으로 쓰러지고 동생을 살리려 동분서주 하다 뜻하지 않게 죽음을 당하게 되고 친구의 도움으로 동생은 수술을 받아 다시 건강을 되찾는 다는 이야기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점점 삭막해져 가는 현대인들에게  한번쯤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되새겨 볼 기회를 주기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영화나 미국영화나 할 것 없이 이렇게 지능과 관련된 장애인들의 한쪽 면만을 부각시켜 순수한 존재로만 묘사하는 것은 관객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감동을 이끌어 낼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 이들 장애인들의 삶을 왜곡하는 수많은 현실을 덮어버리는 작용도 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아직 지적장애인들이나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체계나 교육 시스템이 거의 부재하고 성년후견인제도도 없는 실정이다. 또 이들 장애인들이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가 수십 년 동안 돈 한 푼 못 받고 노동착취를 당하기도 성폭행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이들 장애인들의 열악한 현실에는 그저 눈감고 귀를 막을 뿐이다. 장애인들의 현실을 연구하면 오히려 참신하면서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영화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오로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구닥다리 바보 이미지로만 가득 차있을 뿐이다.

 

전동휠체어를 몰면서 세상을 돌아 다니다가 3년전 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장애인과 관련된 방송 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방송에서 묘사되고 있는 장애인의 왜곡된 모습에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디어속의 장애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방송에 비치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영화,신문,광고,교과서 등 모든 매스미디어로 연구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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