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 운동 안에서 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해 주는 사람을 '활동보조인'이라고 칭한다. 개호인, 돌봄이, 헬퍼, 도우미 등 기존의 사회구조 안에서 통용되던 단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단어를 창출해 냈을까? 자립생활운동이 새로운 운동이기에 활동보조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긴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활동보조인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활동을 보조해주는 사람'이다. 즉 주체는 장애인당사자이며 장애인의 지시에 따라 활동보조만 해주는 것이기에 보호 한다는 의미의 개호인과 돌봐준다는 의미의 돌봄이 와는 다른 뜻을 가진다.

활동보조인을 하다 보면 다양한 장면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대면의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들과도 만나 때론 충돌하고 때론 화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신뢰이다.

자립생활센터의 초보 활동보조인(A는 이용자 B는 활동보조인)

일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자립생활센터의 활동보조를 처음으로 하는 날이다. 집안에 들어서자 A는 덜 깬 얼굴로 B를 맞이한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도록 보조를 하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여 있고, 세탁기 위에는 빨래가 수북했다. B는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몰라 A눈치만 보고 있다가 설거지를 할 요량으로 싱크대로 향했다. 그런 B를 보던 A가 겨우 말문을 열고 “하지 마세요” 라고 한다.

12시 끝날 시간이 되기 전에 빨리 해야겠다는 B의 생각과는 달리 A는 느슨하게 앉아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A는 B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테이블 앞에서 졸기도 하고 TV를 보기도 했다. B도 따라서 졸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12시가 되자 A가 수고 했다고 가라고 한다. B는 3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 미안했다.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일 안 했다고 센터에 보고를 해야 할까? 아님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얼마 후 B는 어느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이용자) 사람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도 중요한 활동보조이다. 활동보조인이 옆에 있기 때문에 이용자는 불안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아니면 시키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피곤했을 수도 있다.”

A는 정말 죽고 싶었을까?(A는 이용자 B는 활동보조인)

A가 또 활동보조인에게 말로 상처를 주었고 B의 앞 시간대의 활동보조인은 그 자리에서 해고 되었다. A는 가슴속에 있는 분노를 가끔 활동보조인에게 푼다. 자정가까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A는 전동을 운전하며 집으로 향했다. 가끔 분노가 덜 풀렸는지 혼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B는 묵묵히 뒤에서 부지런히 뒤 따라간다.

갑자기 철도 건널목에서 A가 전동을 멈추어 선다. 30초 1분…. A와 B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마지막 전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B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짧은 대화가 시작된다.

B: "혹시 이곳에서 죽고 싶나요?"

A: (눈을 지그시 감고)"응! 죽고 싶어."

B: "어 곤란한데요. 전 죽고 싶지 않거든요. 죽고 싶으면 내일 죽으실래요? 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죽고 싶으면 내일 일본인 활동보조인이랑 같이 죽으세요!"

A: (살짝 눈을 뜨면서 B를 보고 웃고 장난을 친다) "같이 죽자."

A가 한참을 웃다가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뒤 따라 가는 B를 향해 이야기 한다. “고마워 이해해주어서 하하하하하하.”

A가 헛것을 봤다. A가 힘들다. A를 지켜야 한다.(A는 이용자 B는 활동보조인)

술에 취해 자정이 넘어서야 A의 집에 들어왔건만 A는 또 술을 가져오란다. 혼자서 술을 마시던 A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놈 너 왜 여기 있나?너 스토커지! 당장 나가! 여자 둘만 있다고 우리가 무서워 할 줄 알고?” A는 B의 옆자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B는 소름이 끼쳤다. 이 집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A가 이상하다. 혹시 헛것이 보이는 것일까? 알코올이 중독수준이니까 그럴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 눈에도 헛것이 보여야 한단 말인가? 진짜로 A가 헛것을 본다면 지금 얼마나 무섭고 힘들까? 라고 생각한 B는 부엌에서 술잔을 가지고 왔다.

B는 A를 진정 시키고 A에게 이야기 한다. “나만 믿어요. 활동보조인은 이용자를 위험한 순간에 지켜야 하니까 내가 저놈의 스토커를 처치해 줄께요. 우선 우리가 힘으로 못 이기니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경찰에 신고합시다” 라고 말 한 뒤 새로 가져온 잔에 술을 따랐다. B는 양손에 술잔을 들고 옆을 향해 술 먹이는 시늉을 했다.

A가 조용해 졌다. 무섭게 노려보던 그 눈이 조금 부드러워 졌다. 소리를 질러서였는지 힘도 빠진 듯하다. B는 “이 사람 취했나 봐요. 걱정 마세요. 내가 경찰서에 전화 했으니 금방 올꺼에요” 라며 계속 혼자 떠들고 있다. 그런데 A는 지쳤는지 피곤한 모습으로 졸기 시작하더니 침대에 눕혀 달란다.

얼마 후 B는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봤다. 영화는 실화였으며 헛것과 평생을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A는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느낌이 빠를 뿐이다.(A는 이용자 B는 활동보조인)

B는 평소에 눈치도 느낌도 빠르다. 일 할 때 누군가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그런 B가 B만큼 눈치와 느낌이 빠른 A를 활동보조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지시하는 대로 해야 하고 세탁기를 맘대로 돌리거나 쓰레기를 맘대로 버려서도 안 된다.

A는 까다로운 이용자일 수도 있다. 가끔 B는 A가 옷을 입거나 휠체어에 앉을 때 일일이 지시하는 것이 맘에 안 들어 “그냥 나에게 맡기면 안 되나?” 나에게도 순서가 있는데 말이야” 라고 혼자서 각을 세울 때가 있다. 그러나 어쩌다가 B맘대로 하게 되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작은 트러블들이 생긴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B는 생각했다. “A가 일일이 지시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꺼야.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자”라고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A는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느낌이 빠를 뿐이다.

B가 해고당하다.(A는 이용자 B는 활동보조인)

A는 부모랑 오랫동안 같이 살다가 막 자립생활 시작한 초보다. B는 처음에 A에게 밝은 웃음으로 이야기도 해주고 말도 많이 걸었다. 그런데 B가 그만 향수병에 걸려버렸고 말 수가 줄었다.

활동보조를 그만 두고 싶었지만 활동보조인이 부족하다니 티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녔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A가 B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결국 반찬으로 계란말이 해달라고 했는데 계란후라이 해줬다고 주의를 받고 2개월(주 1회씩 8회) 만에 짤렸다. (코디네이터는 다른 이유를 댔다)

A는 B자신이 향수병임을 알게 된 것 보다 먼저 B가 힘들어 하고 활동보조를 성의껏 하지 않음을 눈치 챘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지만 B보다 B의 감정을 A가 먼저 느낀 것 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B는 A에게 미안했다. B가 향수병으로 힘들었던 1개월간 A는 많이 참았을 테고 한계를 느껴 B를 그만 두게 했을 때니까.

부끄럽지만 필자의 경험담을 적어보았다. 사실 더 많은 실수담과 보람스러웠던 경험들이 있으며, 그 경험들 덕분에 많이 성숙해졌고 지금의 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도 했다. 장애인복지를 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성장 과정 속에 그분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98년 일본의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를 시작했고, 99년부터 한국과 일본사이에서 동료상담,연수,세미나 등의 통역을 통해 자립생활이념과 만났다. 02년 부터는 활동보조서비스코디네이터로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과도 만났다. 그렇게 10년을 죽을 만큼 열심히 자립생활과 연애하고 사랑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본에 있다. 다시 한번 일본의 정보를 한국에 알리고 싶어 이 공간을 택했다. 일본의 장애인들 이야기(장애학)와 생존학(장애,노인,난치병,에이즈,죽음,윤리)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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