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드라마는 안방에서 본다는 데 있다. 더 큰 차이는 영화는 전체 관람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19세 관람가 등의 등급이 있어 그 등급의 나이에 해당되지 않으면 영화관에 입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도 등급이 있어 TV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이 프로그램은 15세 이상 시청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어쩌구 저쩌구하는 자막이 스쳐가기는 한다. 그러나 영화관처럼 등급을 관리하는 문지기가 없으니 몇 살이 된 사람이 보는 지 무슨 수로 알겠는가. 설사 어른들이 같이 보는 경우라도 19금으로 벌거벗고 뒹구는 장면만 없다면 어린 손자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함께 보는 것이 우리들의 안방극장 TV드라마다.

‘착한여자백일홍’ 백일홍과 차승표. ⓒKBS

드라마는 허구다. 우리사회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작가가 만들어 낸 것임에도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는다. 많이 울고 많이 웃기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일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가장 좋은 드라마 내지 인기 있는 드라마는 보통사람들의 양심에 불을 질러 경상도말로 보굴을 가장 잘 채우거나 많이 채우는 드라마다. 시청자들에게 보굴을 잔뜩 채우고 염장을 질러 허파가 히뜩 뒤비져서 시청자게시판에 아우성을 쳐야 인기 있는 드라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륜 패륜은 물론이고 공갈 협박 사기 폭력 살인교사 등 엽기적인 범죄행각도 서슴지 않아야 된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3사의 아침드라마가 공히 이 분야에서 순위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KBS의 ‘착한여자 백일홍’ MBC의 '그래도 좋아‘ SBS의 ‘미워도 좋아’가 그것이다. 마지막 한방에 울고불고 눈물로 참회하면 만사 오케이이가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장애인복지 일을 하는 필자가 굳이 거론할 사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아침드라마를 거론하는 것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아무도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다. 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장애를 입어 경제적 물리적 심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재활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그리고 장애요인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교통사고이다.

‘미워도좋아’ 윤현수와 양동희. ⓒSBS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지 않듯이 교통사고 무서워서 차량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대 생활이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사망자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2005년 21만 417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6376명이고, 부상자는 34만 2233명이다. 죽은 자에게는 안타깝지만 명복을 빌 뿐이고 우리의 관심대상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 즉 34만여 명의 부상자 중에서 영구장애로 남은 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007년 3월말 현재 등록 장애인은 201만 560명이다. 이 가운데 교통사고 장애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필자가 운영하는 상담실에 2007년 총 594명이 직접상담을 했는데 이중에서 교통사고 장애인은 52명으로 8.7%이다. 2006년에는 842명 중에 61명(7.2%)이고, 2005년에는 1510명 중에 138명(9.1)이 교통사고 장애인이었다. 해가 갈수록 전체상담자가 왜 점점 줄어드는가하면 그동안 누적된 상담사례가 많아 직접 상담자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각종 질병으로 인한 장애원인이 50%쯤 되고 그 다음이 원인이 교통사고이다.

교통사고가 나면 목 즉 경추를 제일 많이 다치기 마련인데 심할 경우에는 1급 척수장애인이 되거나 전신마비가 된다. 시력을 잃거나 청력을 잃는 경우도 있고, 뇌병변장애나 지적장애인이 되는 이도 많다. 어디 그뿐인가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유자녀가 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최근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10여년 동안 320만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42만명의 교통사고 후유장애인이 발생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교통유자녀만도 20만명에 이르는 실정이다.」(한국교통장애인협회 자료)

교통사고 발생 현황. ⓒ경찰청

누가 교통사고를 내고 싶어서 내겠는가. 만에 하나 누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다면 그것은 살인할 의사가 있다는 것으로 천벌을 받을 짓이다. 그럼에도 걸핏하면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드라마 주인공들이다.

장애인단체에서는 교통사고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려고 교통유자녀돕기와 뺑소니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전 국민이 보는 안방극장에서는 걸핏하면 뺑소니사고를 조장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KBS의 아침드라마 ‘착한여자 백일홍’에서는 백일홍(박소현)이 모델하우스에 가구납품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천덕희(이보희)가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게 한다. 이 사고로 가구를 싣고 가던 트럭기사는 병원에 입원 중이다.

MBC의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는 교통사고 천국이다. 서명지(고은미)의 엄마 권여사가 교통사고로 죽고, 서명지의 시누이 석경이 교통사고로 휠체어장애인 되었다. 그럼에도 서명지는 이효은(김지호)이 자신의 비리를 남편에게 이를까봐 사람을 시켜 이효은을 치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효은의 남편 윤석우(이창훈)가 다치고 만다. 역시 뺑소니 사건이다.

SBS의 ‘미워도 좋아’에서도 황준혁(유태웅)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불의를 저지르다 탄로가 날까봐 강회장의 큰아들 명진을 쫓다가 명진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허영선(민지영)은 이혼한 남편 윤현수(최필립)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공작을 꾸미는데 사람을 시켜 윤현수를 치게 되면 허영선이 대신 뛰어들어 윤현수를 구해준다는 각본을 꾸민다. 각본은 절묘하게 들어맞아 차는 허영선을 슬쩍 스치고 뺑소니를 친다.

방송 3사의 아침드라마가 하나같이 교통사고를 일부러 내고는 뺑소니라니.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05년도 교통사고 야기도주 사건은 1만 4653건인데 1만 744건을 검거하여 검거율은 73.3%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에 나오는 경찰은 어찌나 멍청한지 뺑소니 범을 절대 잡지 못한다.

교통사고 야기도주 사건 검거 현황. ⓒ경찰청

또 하나 어이없는 것은 교통사고 당시에는 중상으로 죽네 사네 사경을 헤매게 하면서 얼마쯤 지나고 나면 멀쩡하게 다 완쾌가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교통사고는 잠깐 스쳐가는 양념 깜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이렇게 장난을 쳐도 된다는 말인가.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이고 인기를 먹고 산다고는 하지만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쳐서 가족이나 본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일부러 내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에서라도 이 같은 사고를 자주 접하다보면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헤이해질 것이고 더구나 철없는 사람들의 모방범죄도 심히 우려된다. 드라마는 손자손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안방극장이 아닌가 말이다. 

*MBC의 ‘그래도 좋아’는 복사가 금지되어 있어 싣지 못하였음.

*경상도 말 ‘보굴’은 화 또는 골을 뜻하는 것으로 ‘보골’이라고도 하는데, 인터넷 사전에는 ‘허파’의 방언으로 나와 있으나 부산 토박이 필자로서도 아는 바가 없음. -필자 주-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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