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젊은 시절 한 때, 인간에게는 왜 말이 필요한가, 라는 부질없는 망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이러한 망상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책방에서 만난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는 나의 의문에 ‘침묵’ 하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저 현재에 만족하는 속물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는 라즈니쉬의 말은 나의 의구심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 그저 책장을 장식하는 글귀에 불과하였다.

침묵은 허상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이다

이미 모든 사람 안에 현존하는 너무나 뚜렷한 실체이다

다만 우리가 그 침묵의 세계를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내면의 세계에는 고유의 맛 고유의 향기 고유의 빛이 있다

그 세계에는 완벽한 침묵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이 감돌고 있다

그 침묵은 영원하다 그 곳에는 어떠한 소음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언어는 그 세계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그 곳에 도달할 수 있다

- ‘오쇼 라즈니쉬’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책을 읽고자 교보문고로 가는 길이었다. 종로구청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길가에 걸려있는 ‘수화강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조계사에 있는 장애인 봉사단체인 ‘원심회’에서 수화강좌를 한다는 것이다. 수화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강 신청을 하였다. 시골출신인 내가 보기에 세련되어 보이는 서울 사람들과 단아한 모습의 스님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수화를 배웠다. 당시 나는 부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부천과 서울 종로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일주일에 2회~3회, 왕복 세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나는 수화과정을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 전까지 나는 농인(聾人)들을 만난 적이 없다. 아니 만난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아도 보지를 못했으리라. 그런 나에게 수화와의 만남은 새로움에 대한 충격이었다. 처음 농인들을 만나던 그때, 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착각을 했다. 시간이 멎어버린 느낌이었다. 라즈니쉬가 말한 우주공간의 원초적인 침묵이랄까, 그 침묵 속에서도 피어나는 알 수 없는 언어의 조각들.

간혹 손끝에 부서지는 바람 몇 조각

햇살 부스러기

산과 하늘 꽃들의 재잘거림

우주의 침묵마저

손끝에서 피어나고

- 김철환, 「수화」 부분

손을 움직일 때마다, 몸짓을 할 때마다, 표정이 바뀔 때마다 허공에 흩어지는 바람의 조각들, 햇살의 소리, 산과 하늘과 꽃들의 재잘거리는 모습, 손으로 빚어내는 현란한 침묵. 그러한 충격은 그 후에도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한동안 맛보았다. 하지만 수화라는 언어를 배우기에는 버거웠다. 수화를 익히고 외웠지만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끝에 잠시 왔다가 사라져버리고는 했다. 수화를 구사하는 내 모습이 엉성하기만 했다.

수화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즈음 나는 수화반에 참여한 농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인관계가 서툴렀던 나는 수화를 배우는 동기들과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하지만 농인들의 경우는 달랐다. 그 당시 나를 삶의 언저리로 몰아 부치는 망상, 찌든 가난으로 인한 타인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때에 나는 농인들을 만날 때 마다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회사에서 핀잔을 주든 말든 6시 일과를 마치면 부천에서 종로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그 농인들과 어울려 잡담도 하고 술을 마시며, 그들의 삶의 조각들을 엿들었다. 아는 수화가 나오면 읽고 모르는 수화가 나오면 버리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침묵’이라는 망상도 점점 사그라져 갔다.

말 많은 세상, 너무 많은 말들이 낡은 채 거리를 뒹군다

전신주마저 윙윙대는 거리에 서서

길 건너 그대의 소리를 본다

(중략)

그에게 다다르지 못하는 낡은 소리, 그가 전하는 첫 의미

침묵을 일용하라던 오찬(午餐),

그의 손끝에 들린 잘 익은 말들이 나에게 배달된다

- 부현철, 「수화(手話)를 듣는다」부분

고향이 지방인지라 혼자 살고 있던 나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간다고 나무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대부분 서울이 고향이고, 그 중에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 이도 있었다. 언젠가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가면 가족들이 뭐라 하지 않느냐?’ 하지만 그들 중 한사람이 웃음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는 얼마 못가서 알게 되었다. 호형호제하던 농인 한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해준 말이다. 성인이 된 대부분의 농인들은 일이 끝나고 집에 가도 심심해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집에 가도 ‘왔냐?’, ‘밥 먹었냐?’ 외에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가족, 귀가하여 멀뚱멀뚱 그러한 가족을 마주하느니,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텔레비전의 화면을(그때 당시에는 텔레비전에 수화통역이나 자막이 없었다) 보느니 식구들이 잠든 시각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농인의 경우는 자기의 누이가 객지에서 죽었는데 사인을 잘 모르다가 우연히 다른 사람을 통하여 사망 원인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 농아인은 누이의 사인에 대하여 가족들이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서운함 때문에 가족을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한다. 어느 농인은 자신이 장남인데 아우에게 제산 상속을 하는 눈치가 보인다면서 집안에서 칼부림 하고는 부모와 등졌다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많은 세월이 지난 것이라 요즘은 그런 일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도 농인이 있는 집안에서 수화를 사용할 줄 아는 식구가 많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각설하고, 수화에 눈을 뜨면서 처음의 충격과 달리 수화가 침묵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건청인이 사용하는 말에 비하여 수화가 좀 더 직감적인 언어라는 사실이외에도, 수화도 때로는 정갈하기도 했고, 격정적이고, 유머가 있었으며, 슬프고, 수다스러운 언어였다.

뚜껑 닫힌 허공을 빠르게 가슴께에서

휘젓고 뭉치고 던지고 얼굴에 문지르는,

공기들이 자지러지는 소리

성대를 잠근 남루한 침묵이

놋쇠징에 머리를 치받고

우르릉 갇힌 울분을 터뜨리는 소리

농아의 세월, 그 긴긴 밤을 몰아 영혼의

희고 검은 건반을 줄곧 소낙비로 두둘겨온

저 상기된 손가락, 그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말이

말을 찢고 갈가리 너풀거리는 소리

결국, 말을 죽이기 위해 세상의 모든 말을

손가락으로 건져 올려 요리조리 찌르고 자르는 소리,

세상의 여린 詩들이 저 손끝에서 으깨져

희멀건 국물로 흘러내리는 소리

- 김길나, 「소란한 수화」부분

나는 그들과 만남이 깊어지면서 의형제와 친구의 관계를 맺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이는 ‘유비’, 우락부락한 농인은 ‘장비’, 나는 ‘관우’, 또한 ‘장비’ 주변의 농인들은 그냥 나에게 ‘친구’라는 애매한 호칭을 붙였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 주워들은 삼국지의 영웅담들을 들먹이며 삼국지의 주인공들 마냥 세상을 읊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어울리며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백수가 되었다. 라즈니쉬가 나의 가슴에 틀어 앉아 ‘버려라’ 라고 강요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유롭고 싶었다. 말과 말이 뒤엉키는 굴레, 말에 대한 함정, 말을 통한 속박, 그러한 억압된 마음이 의형제를 맺은 농인들을 대하면서 다소나마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17년 전의 아득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때 나와 같이 농인들과 어울렸던 건청인 중에는 진리를 탐구하겠다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이도 있다. 농인 중에는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린 이도 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 한 이도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루 끼니를 잇기 위하여 험한 노동을 하거나 노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 시절의 농인들을 만나지 못한다. 가끔 술 한잔하자는 문자가 오지만 하루하루 사는 게 피곤하여 응대를 해주지 못한다. 과거를 회상해보는 오늘 불현 듯 그 시절, 별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졌던 그들, 벽을 지우고 밤새 술을 마셨던 그들이 보고 싶다. 술이나 한잔 하자고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봐야겠다.

부를 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 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 이해인, 「벗에게」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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