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웹서핑을 하던 중, 왜소증 장애를 가진 50대 아들을 과실치사로 죽게 한 70대 노모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기사가 시선을 잡았다. 28일 오후 대구지법 21호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왜소증을 앓고 있는 50대 아들을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왔던 김 씨는 지난 3월 아들이 자동차 두 대를 할부로 구입한 후 이를 처분한 돈을 유흥비로 탕진한 것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아들의 무분별한 낭비 탓에 발생한 채무 2억 원을 갚아주고 전셋집과 구두수선점까지 차려준 터라 '더 이상 아들의 낭비벽을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평소와 달리 김 씨는 흉기까지 들고 엄하게 다그쳤고, 그 과정에서 소파에 앉아 있던 아들이 갑자기 일어서다 넘어지면서 흉기에 찔렸다. 결국 김 씨는 지난 7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정상을 참작, 불구속 기소하고 징역 1년을 구형했다.‘(11/29일자 매일신문 발췌)

왜 이 기사가 내 눈에 띄었을까? 내용만 보면 아들은 장애만 있었지 하는 행동은 여느 비장애인 못지않게 낭비벽 심하고 노모에게 불손했다. 그런 탓에 노모는 평소완 달리 흉기까지 들고 아들을 훈계 하려다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 뭐 그런 사건이다. 물론 왜 노모가 흉기를 들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지만 나를 더 불편하게 한 점은 다름아닌 판사의 판결문이었다. 다음은 판결문의 요지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거늘 장애아들을 둔 운명 때문에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서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고 비록 스스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피고인 역시 아들의 죽음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큰 슬픔과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적으로 피고인을 가해자로 망인을 피해자로 구분 지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지만 50년간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해 왔고,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다가 이 사건이 발생했으며 망인의 처가 관대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을 고려,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판사는 또 천병상 시인의 시 ‘귀천’을 인용해"피고인이 칠십 평생을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음에도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까지 이 사건으로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겼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날 불편하게 했을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가족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여긴다. 판결문 서두를 보면 “장애아들을 둔 운명 때문에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심파조로 나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애인을 둔 가족들은 평생 죄인인가? 또 만약 죽은 그 아들이 비장애인이었다면 같은 판결이 나왔을까? 흉기를 들고 집으로 찾아갔다는 것 자체가 살인미수라고 봐야 한다.

몇 달 전, 우리는 어느 대통령 후보의 ‘장애아는 낙태해도 된다.’는 발언에 분노했었고 그의 선거 캠프로 쳐 들어가 항의하고 시원치는 않았지만 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었다.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의 머리 속에 생각하는 장애인관이 어떤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과연 그 판사의 장애관과 장애아 낙태 발언을 했던 어느 대통령 후보의 생각과 다른 것이 있을까?

장애인과 그 가족은 우리사회에서 힘들고 고달프고 죄인 아닌 죄인 취급받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죽은 그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노모의 꾸지람을 백번 들어도 마땅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흉기로 위협받고 더 나아가서 죽어 마땅한 행위를 저지르진 않았다. 그러나 실수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그것도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노모의 손에 말이다. 물론 노모의 형을 더 무겁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노모 역시 죽은 아들로 인해 평생 가슴에 피멍이 들어 살아가야 할 테니까.

다만 우리사회가 아직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이런 판결문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나는 불편할 뿐이다.

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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