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탁구 개인 지도를 하는 이용로 단장. ⓒ대한장애인체육회

“도와줘요! 저도 운동하고 싶다구요.” 장애인으로 집안에서만 지내던 올리브는 방콕생활이 지루하다 못해 이렇게 소리쳤죠. 그 때, 긴 머리 휘날리며 뽀빠이 알통 자랑하며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용로 단장이었어요. 보디빌더에서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헬스 트레이너로, 다시 장애인 생활체육 지도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찾아가는 생활체육 서비스’ 프로그램을 맡고 계시다고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전화번호가 쉬워요. 1577-7976. 뒷번호는 ‘친구체육’이란 의미인데 외우기 쉽죠? 전화만 주시면 찾아갑니다.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데요. 저까지 모두 사회체육을 전공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요. 각자 주력 종목인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를 지도해 드려요. 휠체어를 탔더라도, 편마비라도 몸을 움직이는 게 이렇게 즐거운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알맞는 운동처방도 해드리고요.

-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달려 가겠습니다”란 홍보 문구가 인상적인데요.

▶복지관, 재활병원, 재활원, 재가 장애인들까지 찾아갑니다. 다만, 이 서비스가 현재 서울 경기 지역에만 한정돼 있어요. 부산에서 전화 주신 분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엔 사시는 곳의 체육시설이나 장애인 운동 동호회 등을 소개해 드리고 있어요. 복지관의 경우에는 체육시설은 있지만 지도자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지도자도 파견해 드려요.

-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어떤 분들을 만났는지 궁금한데요.

▶많은 장애인들이 운동을 하고 싶어도 어디서 해야 하는지, 나에게 맞는 운동은 어떤 종목인지 고민만 하다가 말더라고요. 한번은 재활병원에서 사고로 목도 못 가누고 의식도 온전치 못한 분을 만났어요. 이 분에게 어떻게 운동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테니스 공을 보여줬죠. 그런데 공이 움직이니까 눈이 따라가는 거예요. 전에 테니스를 치던 분이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병원에 입원하면 하루에 재활치료 한 20분 하나요. 거기에만 목맬 게 아니라 이렇게 운동을 하다보면 활력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죠.

사회체육을 전공한 전문강사들이 생활체육을 지도한다. 수원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탁구교실을 열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 ‘휠체어를 탄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갖고 계시죠.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 전엔 보디빌더였어요. 그 때는 짧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 누가 봐도 딱 운동선수다운 외모를 하고 다녔어요. 머리를 기르게 된 건 사람들의 시선들 때문인데요.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는데 트레이닝복 바람에 땀냄새 풀풀 내고 다니니까 밥 먹으러 간 식당에서 눈치를 주더라고요. 마치 구걸을 하러 온 것처럼 보였나보죠.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손재주가 좀 있어요. 팔찌에, 금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고 다니니까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나약한 사람으로 보는게 싫어서 헤라클레스처럼 긴 머리를 했는데 근육질 몸이랑 어울렸던가봐요. 자연스레 그런 별명이 생겼어요.

- 휘트니스클럽을 운영해서 화제가 된 걸로 아는데요. 비장애인에게 운동을 지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어떻게 운동을 가르치나? 이 얘기는 대학원 면접에서도 들었는데 전 그랬죠. 제가 운동하는 게 아니라 운동하는 법을 가르치는 거니까 문제될 게 없다고요. 휠체어를 탔다고 왜 못해요? 말로 해도 되는 거고 시청각 자료로 보여줘도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핸디캡이 최고의 장점으로 활용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저희 회원 중에 사업이 망해버리니까 자살할 생각을 했다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래요. 저를 보면서 반성을 했다고. 저는 그러죠. 내가 운동하는 거 봐라. 니들은 장애인이 아니니까 나보다는 운동하기 쉬울 거 아니냐.

- 그럼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는 언제부터 일하신 건가요.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건강관리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입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벌써 학위 과정에 이르렀네요. 열심히 하고 싶고 또 논문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시 휘트니스 클럽을 접게 되었어요. 장애인이 되고 나서 내 스스로가 운동할 때의 어려운 점들이 많았기에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마침 국가에서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계획안을 발표하게 되어서 올 7월부터 일하게 됐어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는 장애인들이 손쉽게 익힐 수 있는 스포츠이다. 국립재활원 배드민턴 초보자 교실. ⓒ대한장애인체육회

- 늦게 시작한 공부 얘기 좀 들려주세요.

▶제가 역도에선 금메달을 땄고, 모노스키 국가대표,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로 활동했는데 전문지도자가 많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비장애인 선수들에게 전문지도자가 붙는 것처럼 장애인 스포츠도 그렇게 돼야죠. 그러자니 전문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늦었지만 대학, 대학원, 결국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게 되었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문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공부하고 싶습니다.

- 그럼 장애인이 되고 나서 대학에 들어간 거군요.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해봐요.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공부를 했을까. 저는 8남매 가난한 집에서 자라나 딱 한 번 대입에 떨어지고는 미스터코리아가 되고 싶다는 꿈만 쫓아갔어요. 그런데 장애를 갖게 되자 주변 사람들이 공기 좋은 시골에 내려가 요양이나 하라고 그러더군요. 저는 그런 말들이 정말 싫었어요. 단지 불편할 뿐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았잖아요.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비장애인들과 함께 하면서 당당하게 경쟁하고 싶었어요. 그러자니 배워야겠더라고요.

- 재활병원 입원 시절, 굉장히 힘든 환자였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그런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저는 깽판 치는 환자들이 죽고 싶다고 발악을 하면 그냥 죽으라고 그래버립니다. 그 사람들 그런다고 죽지 않거든요. 죽고 싶다는 건 관심을 끌고 싶다는 거고 살고 싶다는 얘기도 되는 거거든요. 저는 바뀐 인생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장애인이 돼서 못하는 것도 많지만 할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많아요.

- 팔뚝이 왠만한 장정 허벅지보다 더 굵어서 깜짝 놀랐는데요. 어떤 운동을 하세요?

▶어떤 사람들은 저는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 재활이 쉬웠을 거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제가 흉추 12번 완전마비인데 어떻게든 걸어보겠다고 보조기 차고 목발 짚고 신촌 세브란스에서 연세대 교정을 누비고 다녔거든요. 엑스레이를 일주일에 3번을 찍을 정도로 힘들게 노력해서 지금의 근육질 몸이 만들어진 거예요. 지금도 바쁠 때는 못하지만 매일 2시간 정도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겨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즐겨하는 이유는 약해진 두 다리 대신 강한 두 팔로 열심히 살아야 하니까요. 하하하. 여름에는 수상스키를 타고요. 요즘 날씨가 추워졌죠. 이제 겨울이 왔으니 스키 타러 가고 싶어 마음이 셀레이죠.

바른 자세와 올바른 방법을 알면 장애인들도 너나없이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다. 삼육재활학교 학생에서 스트레칭을 해주는 이용로 단장. ⓒ대한장애인체육회

- 중증장애인에게 운동은 남의 얘기인데요. 심한 뇌병변이나 경추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운동 방법이 있을까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운동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전문적인 지도자 부재를 크게 느껴요. 상해 부위의 근력 강화나 잔존 기능을 유지 내지 강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앞으로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운동방법 책자를 발행한다거나, 체육시설이 만들어지면 중증장애인들에게도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직접 장애인 운동기구까지 만드셨다고요.

▶제가 토목과를 나왔거든요. 그 적성을 살려 ‘알투 파워’라고 다기능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만들었어요. 상체 26가지 운동이 가능하고요. 경추장애인 같은 경우 배 운동이 힘든데 굴신이 아니라 근육 협응성을 키워주면 되는 거거든요. 특허권을 따놨는데 제작 회사가 도산하고 자금이 달려 손을 놓고 있어요. 하나 만든 건 수원장애인종합복지관에 드렸더니 아주 좋다고 하시더군요. 장애인들이 잘 사용하고 있대요.

- 내년에 ‘찾아가는 생활체육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 있나요?

▶2008년에 서비스팀을 2~5곳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시범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있는데요. 장애인들에게 효율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차적으로 장애를 갖게 됐더라도 2차로 척추 변형, 관절 경직 이런 게 오는 건 막아야 되지 않겠어요. 단련된 체력으로 직업재활까지 이뤄서 장애인들도 건강하게,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게 살아야죠. 앞으로 공공 체육시설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확충될 거라고 하니까 장애인들이 생활체육을 즐기기가 더 나아질 겁니다.

*문의. 대한장애인체육회 찾아가는 생활체육 서비스 1577-7976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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