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연애시절. ⓒ배은주

“5년만 기다려 줄래? 5년만 기다려 준다면 5년 후에 너랑 결혼하고 싶다.”

어느 날 늦은 밥 집 앞으로 나를 찾아온 그 남자가 느닷없이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프러포즈였다. 5년이라는 세월에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그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폭풍이 불어 닥칠지 미처 알지 못하고 나는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은 작정이라도 한 듯 빠르게만 흘러 어느새 3년 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남자와 나는 여전히 각자의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보는 주위사람들에 시선을 곱지 않았다

“미스배 얼굴은 동그랗잖아. 근데 그 사람의 얼굴은 네모더라고. 그러니까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세모난 아이가 나오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 결혼은 안 된 다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은 그 남자와 나의 결혼를 반대하는 이유를 그럴싸한 비유법을 들어 이야기 해 주었다. 사장님뿐만이 아니라 나를 알고 있고 그 남자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우리의 교제를 반대 했고 결혼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짓곤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 남자에 비해 나의 장애가 너무 심하고 그 남자가 장남이라는 이유였다. 우리 집에서조차 결혼은 힘들 것이라며 친구로만 지내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지쳐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견뎌 내기 힘들었던 것은 그 남자와 나를 여느 연인들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하고 있고 봉사를 받고 있는 관계 어느 한쪽이 헌신적인 희생을 하고 있는 관계로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듯 서로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고, 그런 나를 그 남자가 항상 밀고 다니는 모습만으로 사람들은 그런 시선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 아이고 천사가 따로 없구먼. 젊은이 복 받을 껴.”

어디를 가던 그가 나의 휠체어를 밀고 다니기만 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점점 결혼이라는 현실이 두려워 지지 생각했다. 결혼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가파르고 먼 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되돌아 갈수도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 내게 일어나고 말았다.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장애인이 됐으며 초·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96년도에 제1회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97년도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작품현상공모’에서 장려상을, 2006년 우정사업본부 주최 ‘국민편지쓰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2006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소설부분 가작에 당선되었다. 현재 CCM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남녀 혼성 중창단 희망새의 리더로, 희망방송의 구성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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