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배운 경제 상식 하나. 1929년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을 불식시킨 정책은? 수업시간 졸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을텐데, 답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다. 여기서 뉴딜이란 ‘소외 계층을 위한 새로운 처방’을 뜻한다. 미국 정부는 불황에 대한 돌파구로 테네시강에 다목적 댐을 건설하는 등 각종 공공사업을 일으켜 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수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복지수당이 아니라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을 빈곤에서 구제했다는 점. 정부가 공공사업을 일으켜 실업자를 고용하면 국민소득이 늘어나며, 국민소득이 늘면 소비재 수요가 늘고 수요가 늘면 생산설비를 늘이기 위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난다. 그러면 다시 소득이 늘어난다는 원리다.

노동부가 10월부터 시행하려고 하는 ‘중증장애인 근로지원인 서비스’는 이런 점에 비추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중증장애인이 일할 권리를 존중하고, 근로지원인의 도움으로 직장 동료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일하게 한다는 취지는 훌륭하다.

다만 문제는 이 사업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기업에 취업한 중증장애인에게만, 그것도 한시적으로 실시되는 시범사업이라는 데 있다.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올 7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장애인 행정 도우미’ 사업에 이어 헛점투성이 선심 사업이 또 하나 탄생한 것이다.

장애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주무처인 노동부는 궁색한 핑계를 댔다. 일반기업의 장애인 고용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비영리기관을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알퍅한 속내는 곧 드러난다.

첫째, 중증장애인의 범주 안에서도 장애의 편차는 꽤 큰 편이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서는 중증장애인을 장애 1, 2급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체장애인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똑같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1급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는 손까지 불편한데 반해 누구는 상반신은 자유로워서 앉은 자세로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일반기업에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사회적 편견도 심할 뿐더러 고용주의 고용의지에 더하여 장애인편의시설, 보조기구 등 물리적 환경이 뒷따라야 한다. 이것은 비용가치를 따지고 고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일반기업의 원리로선 섣불리 받아들이기 힘든 취약점이다.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에게 우호적인 복지관 연구소 시민단체 정부기관 등 비영리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 중에서도 자립생활센터 설립의 활성화는 최중증장애인들에게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주었다.

셋째, 위의 언급을 따라가보면, 노동부에서 제시한 ‘영리기업에 취직한 중증장애인’이라는 정의는 상대적으로 장애가 경한 중증장애인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한 영리기업’이라는 설정도 일부 기업에 국한되기 쉽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일반기업에 취업한 중증장애인이 타인의 전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일하는 것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중증장애인 개인이 일반기업에 취업할 때는 신체 정신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보조인 없이 업무수행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입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고용인인 중증장애인이 기업에 새롭게 근로보조인의 필요를 알리고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업무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노동부가 밝힌대로라면 이 사업은 상대적으로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중증장애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이기 쉽다. 또한, 장애인 고용에 대한 대안으로 설립되어 중증장애인 고용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 장애인중심기업, 장애인특례자회사 등의 일부 기업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근로지원인 서비스로 인해 중증장애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불편이 최소화되고, 이로 인해 비장애인에게도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의 이익에 우선하는 변칙적인 정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최중증장애인까지 아우르는 근로지원인 서비스로 중증장애인 고용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할 때, 장애인 특례기업만이 아니라 일반기업에서도 중증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뉴딜 정책에 버금가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처방’이 절실하다.

[리플합시다]국제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을 촉구합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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