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 조사보고서. ⓒ버지니아 주정부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 보고서가 8월30일(현지 시간)에 공개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46일만이다. 버지니아 주지사가 임명한 8명의 위원들이 작성한 방대한 보고서지만 그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책임은 대학 당국에 있다.

조승희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언어 문제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승희가 중학생이던 1999년에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가 이 사건을 모방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담임이 알게 되었다. 담임은 곧바로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승희는 부모와 함께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13개월 동안 약물로 치료한 결과 ‘상태가 호전되어 치료가 중단되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자였지만, 1달에 한번 50분 동안 언어치료를 받는 정도였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승희는 전 학년 평점 3.52를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특히, 과학과 수학을 잘 해서 명문 버지니아공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학교 당국의 적절한 개입으로 무난하게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면서 상태가 심해졌다. 끔찍한 글을 쓰고 전화나 이메일로 여학생을 스토킹하였다. 대학 당국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연방 사생활보호법을 핑계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 결과, 33명이 죽는 끔직한 참사가 빚어진 것이다. 보고서는 대학 측의 나태한 학생 관리를 비판하는 수준에서 결론을 맺는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도 보고서의 결론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다. 술ㆍ담배보다 총 사는 것이 더 쉽다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은 빠졌다. ‘가련한’ 동포 청년이 저지른 끔찍한 다중살인 사건이 미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대충’ 마무리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따질 게 남아 있다.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를 이참에 다시 한 번 짚어야 할 것 같다. 사건 초기 국내 언론들은 사건의 근본 원인은 제쳐두고 승희의 정신상태 진단에만 열을 올렸다. 별 다른 근거도 없이 결과에다 원인을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 이런 정도로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으니 범인은 당연히 심각한 정신병자일 거야, 이런 ‘망상’이 유일한 근거였을지 모른다. 게다가, 하나같이 전문가들의 입을 빌리면서도 그 진단은 저마다 달랐다.

조승희는 ‘정신분열증’이었다?

가장 많은 진단은 정신분열증이었다. 다만, 중앙일보는 ‘정신분열증’(4. 20), 한겨레신문은 ‘망상형 정신장애’(4. 23), 내일신문은 ‘편집증적 피해망상’(4. 19) 따위로 표현만 달랐을 뿐이다. 이런 진단에 대해, MBC는 ‘정신분열증과는 다른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4. 20)라고 점잖게 꾸짖었다. 또, 동아일보는 ‘정신분열증, 성격장애, 우울증 등 전통적인 정신질환의 범주에 들지 않는 새로운 정신과 질환’인 ‘외톨이 증후군’(4. 23)이라고 주장했다. 기사 말미에는 친절하게도 외톨이 증후군 체크리스트까지 덧붙였다.

같은 신문에 서로 다른 진단이 실리는 경우도 많았다. 가령, 조선일보는 ‘편집증적 정신분열’(4. 19)이라고 했다가, 바로 그 다음날에는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또, 한국일보는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가능성’(4. 18)을 언급하다가, 며칠 뒤에는 자폐증의 일종인 ‘야스퍼스증후군’(4. 22)이라고 진단했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은 승희가 기존의 질서에서 이탈하여 유목민 생활을 하는 ‘스키조 키즈의 극단적인 사례’(4. 19)라면서도, 같은 날짜 다른 지면에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외톨이 증후군(引きこもり, 히키코모리), 아스퍼거증후군(Asperger's Syndrome) 따위의 단어들은 버지니아주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 한 마디로 언론들이 제각기 소설을 쓴 것이다.

조승희는 ‘게임광’이었다?

승희가 ‘PC 외톨이’, ‘게임광’이었다고 주장하는 신문들도 있었다. 뉴스메이커는 ‘게임광’(5. 3)이라 했고, 세계일보(6. 5), 조선일보(6. 25), 동아일보(7. 3)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들은 ‘PC 외톨이’라 했다. 중앙일보는 노골적으로 ‘총기난사 조승희, 외톨이에 폭력적 게임 즐겼다’(4. 18)고 썼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버지니아주 보고서에 따르면, 승희가 대학2학년 때 한 방을 썼던 기숙사 룸메이트는 ‘그가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도서관이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곤 했다’(p42)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룸메이트도 ‘승희의 유일한 일과는 공부하거나, 잠 자거나, 음악을 다운로드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이 비디오 게임을 하는데, 승희는 전혀 게임을 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p51)고 증언했다. 국내 언론들의 ‘망상’과 정반대로, 승희는 비디오 게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동안 조승희를 닮아서는 안 된다면서 청소년들의 과도한 비디오 게임 실태를 집중 보도했던 언론들이 괜스레 멋쩍어 졌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조승희씨 사건을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분석한 기사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겨레신문은 ‘정신질환자 범죄율 일반인보다 낮아’(4. 22)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 나라의 조사에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은데도,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편견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경향신문은 ‘‘승희조’는 자폐증 아니다’(5. 4)는 제목의 칼럼에서, 승희는 자폐증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신문들도 전체적 기조는 다른 신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승희는 ‘자폐증’이었다?

가장 터무니없는 분석은 승희를 자폐증으로 진단한 대목이다. 경향신문은 승희의 외가 쪽 할머니(85세)의 말을 인용하며 ‘어릴 때 자폐증 진단’(4. 20)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승희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는 현지 한인교회 목사의 말을 듣고 ‘자폐증을 앓았다’고 단정했다. 세계일보는 한 술 더 떴다. 이 신문은 <설왕설래> 코너에서 자폐증 환자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욕구불만에 휩싸여 공격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전제 한 뒤, ‘이번 대량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 조승희씨의 특성 가운데는 자폐증의 공격성도 엿보인다’(4. 19)고 썼다. (세계일보의 자폐증 혐오감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2월28일자 <설왕설래>에는 ‘자폐증의 발병요인은 맞벌이부부의 잦은 양육자 교체나 부부싸움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면서, 의학적 근거도 없이 자폐인 부모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자폐증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이런 주장을 할 수가 없다. 자폐 증상(시선회피, 반복적 행동, 의사소통 단절, 특정 사물에 집착 등)은 보통 생후 6개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3살 정도면 뚜렷해진다. 그렇다면,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승희가 한국에 있을 때 이미 그 증상이 나타났어야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승희에게 그런 증상이 있었다는 증언은 없었다. 버지니아주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승희는 ‘미국에 오기 전까지 정신병 진단 기록이 없었다.’(p.33)

또, 자폐인들은 종합적 사고력이 부족해, 말로든 글로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데, 승희는 명문대 영문학도이자 소설가를 꿈꾼 청년이었다. 그가 고등학교 때 쓴 글이다. ‘나는 토크쇼와 얼터너티브 스테이션 음악, 그리고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엑스맨이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니콜라스 케이지이고, 가장 좋아하는 책은 Night Over Water이고,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U2이고,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이고, 가장 좋아하는 팀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즈이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이고, 가장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다.’(p.32) 이런 표현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자폐증일 수 있는가.

특히, 승희의 행위에서 자폐증의 폭력성을 엿볼 있다는 주장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자폐인들은 불만이 쌓이면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다고 남을 공격하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더구나, 사전에 계획을 세워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이야말로 수많은 자폐인들과 그 부모들에 대한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정적으로, 버지니아주 보고서는 ‘(조승희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특수교육 평가를 실시한 결과 자폐증이 아니었다’(p36)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도 ‘조승희는 자폐인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비디오를 통해 똑똑히 보았다’(8. 27)고 주장하였다.

조승희는 ‘선택적 무언증’이었다!

그렇다면, 조승희의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보고서는 여기에 답을 내놓았다. 승희는 8학년 때인 1999년에 ‘선택적 무언증(selective mutism)’과 ‘주요 우울증: 단일 에피소드(major depression: single episode)’ 진단을 받았다. ‘주요 우울증: 단일 에피소드’란, 4가지 이상 우울증 증상들(가령, 불면, 식욕부진, 집중력 저하, 자살 충동, 무기력 등)이 적어도 2주 이상 지속되는 것을 일컫는 의학 용어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은 환청, 환각, 환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과 다를 뿐더러 죄의식 없이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와도 거리가 멀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승희의 우울증은 약물 치료를 통해 호전되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승희에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선택적 무언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낯설지만, 이 말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정신과 용어이다. 국제질병분류표인 ICD-10을 보면, ‘선택적 무언증’은 불안, 위축, 반항심 때문에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불안장애(anxiety disorder)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 증상은 발달장애(자폐증), 정신분열증, 그리고 언어발달장애와는 별개라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승희에게 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린 나이에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거라지만,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그 또래 이민자들 가운데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도 많은 까닭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내성적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내재적 증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희가 어릴 때부터 ‘선택적 무언증’이라는 불안장애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던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의 우울증은 그의 불안장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결과, 똑똑하고 얌전하던 한 아이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선택적 무언증’과 같은 불안장애가 치료하기 어렵거나 희귀한 증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좀 더 일찍부터 꾸준하게 치료만 받았더라면 이런 비극을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불안장애는 우리나라 청소년기들에게도 흔한 증상이다. 지난 4월15일 서울시학교보건진흥원은 서울 거주 청소년들의 정신장애 유병률을 발표하였다. 서울 시내 초ㆍ중ㆍ고등학생 2,6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안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이 무려 23%나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특정공포증이 15.6%, 사회공포증이 2.5%, 분리불안장애가 1.8%, 강박증이 1.6%, 광장공포증 0.6%로 나타났다. 이 조사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 10명 가운데 2~3명은 조승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안장애로 인한 살인 사건이 보고된 적이 없다.

따라서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은 단순히 조승희라는 한 개인의 정신적 상태만 가지고는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 ‘폭력이 구조화된’ 미국 사회라는 변수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선택적 무언증’에 걸린 한국 언론들

다시, 우리 언론의 문제로 돌아가자. 조승희 사건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미국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몇몇 신문이 짧게 보도하는 정도이다. 사건 발생 당시 미국 언론들을 훨씬 앞질러 가면서 호들갑떨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조승희가 정신분열증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혹은 사이코패스다, 외톨이증후군이다, 아스퍼거증후군이다, 자폐증이다라고 확신하던 그 ‘기백’이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우리 언론들도 혹시 ‘선택적 무언증’이 아닐까. 하고 싶은 말만 마구 내뱉고, 불편하고 불리한 말은 절대 하지 않는 고질적 증상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억측과 거짓말로 수많은 정신장애인과 자폐인들을 잠재적 다중살인자로 내몰아 놓고도, 어찌 사과 한마디 없단 말인가. 참으로 뻔뻔스럽다.

미국 언론들이 한국 언론들처럼 했다면 수백만달러의 손해 배상 소송에 휘말렸을 터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긴 한국이다.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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