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마다 벽쪽의 손잡이 봉 끝에 구슬들이 달려 있다. 이런 것들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어느 맹학교에서였다. 초여름 무렵 어느 날, 필자는 인터넷 약도를 들고 맹학교로 나섰다.

일반 고등학교와 중학교 옆에 자리한 맹학교. 교문입구부터 유도블록이 나 있었고 건물입구에 들어서자 음성으로 외부 방문객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음성이 들렸다. 학교라고 하기에는 다소 조용한 감이 들었지만 교정 뜨락에 빨갛게 피어있는 장미덩굴과 푸른 잔디로 만들어진 운동장은 정감 있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교실들은 비어 있었다. 복도는 일반 학교의 복도 폭보다 훨씬 넓었고, 교실안의 책상들도 아주 널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필자가 맹학교를 찾은 것은 처음인지라 학교 건물 내를 이리저리 유심히 둘러보았다.

층계를 오르내리고, 복도를 따라 걷다가 아주 생뚱맞게 보이는 물건들이 유달리 필자의 눈에 띄었다. 그것은 복도와 계단의 손잡이 끝부분에 달려 있는 구슬들이었다. 간혹 긴 손잡이 봉의 중간지점에도 구슬들이 달려 있었다. 손잡이 봉에 달려있는 구슬들은 약간 허술하게 긴 희색의 줄에 끼워 칭칭 감겨 있는 모양으로 뭔가 부실해 보이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는 선생님이 있어 물어 보았다. 선생님의 답변은 학생들이 앞이 보이지 않아 몇 층인지 헛갈려 해서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구슬들을 손잡이 끝에 달아 구슬수를 세어서 몇 층인지 알 수 있도록 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득 이런 방법밖에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줄곧 남았다.

시각장애학생들이 층수를 알 수 있도록 구슬을 매달아 놓은 복도 손잡이 봉. ⓒ정지원

필자는 얼마 전 읽었던 짧은 글을 떠올리며 현실적으로 일본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수준과 한국의 수준이 너무 차이가 큼을 새삼 비교한 셈이 되었다.

그 짧은 글의 내용은 일본의 쓰쿠바기술대학이 시각 장애학생을 위한 정보보장 환경에 대해 적은 것으로 첨부 사진들 중 필자는 건물 내의 복도와 계단내의 보행유도사인 사진을 떠올렸다.

그곳 건물에는 복도의 손잡이가 나무재질의 사각으로 되어 있어 그 위에 점자모양의 큰 돌출표지가 층층별로 개수대로 박혀있었다. 그래서 시각장애학생들이 이야기를 하며 올라가거나 딴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항상 일정한 위치에 그 개수를 손으로 만져 쉽게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물론 일본의 그러한 설치사례들이 정답은 아니며 무조건 일본을 따라하자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공공건물을 짓고 내부의 편의시설물들을 설치하는 설치자들, 관련 공무원들이 시각적 불편이 있는 사용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실용적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음이며 모든 이들이 생활에 있어 평등하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그네들의 유니버설디자인적인 태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태도를 거창하게 유니버설 디자인적 태도라 할 이유가 없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이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다소 강제적인 태도규정이 다소 거북한 감이 있더라도 필자는 유니버설디자인적 태도라고 지칭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맹학교라는 특수학교를 세우고 내부의 편의시설들을 설치할 때 세심한 배려들이 최대한 실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실용적인 적용이라 함은 관련 설치자 편의중심의 실용적인 적용이 아닌 건물의 주사용자들인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실용적이고 편해야 함을 의미한다.

건물시공의 책임지고 있는 관련자들이 시각장애학생이 건물사용의 주인임을 진정으로 맘으로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설치 초기부터 복도계단이나 층계의 계단이 몇 번째 층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실천되었을 것이다.

설사 그러한 불편함을 미처 몰랐거나 예상하지 못했더라면 관련시공담당자들이 맹학교내의 특수교사들이나 시각장애학생들을 만나 편의시설설치 등과 관련하여 신경 써서 해주어야 할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이라도 물어 보는 성실한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정지원은 지난 3년간 자립생활운동(IL)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복지현장에서 일하며 신체의 장애가 아닌 생활환경의 장애가 더 큰 자립의 걸림돌임을 체험하며 디자인과 연관하여 ‘모든 이들을 위한 디자인’인 유니버설디자인의 보급·확대가 절실함과 더불어 IL이념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고, 편리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나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의 유니버설디자인을 소개하며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화여대 학사·석사를 졸업했고, 현재 경성대 유니버설디자인 전공 박사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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