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볼 수 있는 현금지급기. 휠체어사용자의 사용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정지원

7월 어느 날 저녁 무렵, 필자는 저녁식사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지인들과 초면인 몇몇 참석자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도착해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아 삼겹살과 다른 먹거리를 주문한 후, 근황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몇몇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 중 2명은 목발을 사용하고 있어 약간은 불편함을 느끼며 신발을 벗은 후 목발을 집고 테이블 사이를 조심조심 걸어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으나 2명은 목발을 어디에 둘지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당시 음식점의 실내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방석에 앉아 식사를 하는 좌식식탁 구조였다. 저녁 무렵인지라 등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간에 거리는 좁은 편이어서 그들이 목발을 어디에 두고 앉아야할지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렇다고 마땅히 벽에 세워둘 수 있는 거리에 테이블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간상의 불편함이 주는 이러한 에피소드는 목발이라는 보조장치를 사용하는 장애인 뿐 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흔히 경험하게 된다. 승객들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몸을 움츠린 채 불편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비좁은 좌석배열의 고속철도. 짐이라도 많이 든 날이면 단번에 통과하기 힘든 전철의 개찰구.

단지 비장애인들은 그런 불편함을 ‘순간’ 정도로만 여기며 지나쳐버릴 뿐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에게 점차 불편함이 증폭되어 외출할 때마다 불안감, 긴장감을 유발하게 하는 그런 상황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유니버설디자인의 7원칙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용자에 적합한 사용공간과 조건 확보’의 실천은 그나마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개선되어오고 있다.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편의증진법과 같은 법 시행으로 대중교통시설이나 공공기관에 우선적으로 적용이 되어 이동시 휠체어 사용자를 감안한 공간확보 규격 준수, 단차 해소 등이 과거 8, 90년대에 비하면 그나마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전철의 개찰구. 통과공간이 좁아 체격이 큰 사람, 임산부,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하기에는 공간상 제약이 많아 보인다. ⓒ정지원

‘사용자에 적합한 사용공간과 조건 확보’의 배려는 단지 환경이나 건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들에도 충분히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제품의 조작부분이 이해하기 쉽고 기능들을 정확하게 식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지적 측면에서의 조건 확보가 중요하다.

한 예로, 웬만한 사무실이면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 복사기기. 요즈음은 쓰는 사람의 반복적인 동작을 최소화 해 줄 수 있고 복사량과 페이지 정리까지 완벽하게 해주는 고기능의 복사기들이 시판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우수하다 할지라도 시각장애인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복사버튼을 찾는 것조차 쉽게 디자인되어 있지 않아 사용 시 매번 주위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다.

기존의 네모난 회의용 탁자는 전동휠체어 사용자에게는 탁자 아래로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가 없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과의 원활하고 보다 친밀한 소통에 불편과 거리감을 유발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한 탁자들을 간혹 찾아낼 때도 있지만 미적으로 그다지 사용하고 싶은 맘이 들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 외에도 무심코 지나친 일상의 단편들을 곰곰 생각해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시금 관찰하게 되고 고민하게 한다. 다음은 이번 장과 관련하여 던져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 사용자가 어떠한 자세에서도 제품의 중요한 기능조작부분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가?

* 사용자가 어떠한 자세에서도 필요한 부분에 쉽게 도달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까?

* 사용자들의 다양한 신체 형태와 기능, 크기 등의 조건에 가능한 한 잘 대응하고 있는가?

* 사용자가 보조장비를 사용하고 있거나, 도움이가 옆에 있어도 그 제품을 사용하기 위한 크기나 넓이가 확보되어 있는가?

* 사용, 휴대, 보관이 용이하도록 적당한 크기와 형태를 이루고 있는가? 수납의 편리함도 확보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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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디자인을 전공한 정지원은 지난 3년간 자립생활운동(IL)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복지현장에서 일하며 신체의 장애가 아닌 생활환경의 장애가 더 큰 자립의 걸림돌임을 체험하며 디자인과 연관하여 ‘모든 이들을 위한 디자인’인 유니버설디자인의 보급·확대가 절실함과 더불어 IL이념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고, 편리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나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의 유니버설디자인을 소개하며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화여대 학사·석사를 졸업했고, 현재 경성대 유니버설디자인 전공 박사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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