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이상으로 너무 아래 설치된 캔 음료를 꺼내는 입구. ⓒ정지원

얼마 전 시각장애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음악공연을 보고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음악공연이 시작하기 바로 전 그 친구는 목이 마르다며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 친구는 한참 후에야 캔 음료 두 개를 들고 와 하나를 건네주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캔 음료가 뭐가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없을까” 하고 말을 이었다.

이야기인즉슨 자판기의 캔음료 샘플 진열대의 투명아크릴판이 빛에 반사되어 캔음료가 뭐가 뭔지 도통 알기 힘들뿐 만 아니라 지폐를 넣는 입구도 찾기 힘들어 사용할 때 마다 불필요하게 힘이 많이 든다는 말이었다. 하긴 나도 자판기를 사용할 때 마다 캔음료를 꺼내는 입구가 너무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필요이상으로 몸을 많이 숙여 꺼내야하는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이는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이나 힘이 약한 어린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동선수나 건장한 사람과 어린이, 노약자, 일시 혹은 장기적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의 경우는 분명 다르다. 만일 제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대처가능하지 못하다면 제작자는 사용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의식하고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용자에 따라 변형하거나 다양한 사용방법을 가진 제품은 평준화된 사용자에게만 국한된 제품과 비교하여 사용자에게 보다 많은 편리함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일상생활 속에는 의외로 제품을 쓰는 사용자의 인내심을 요구하거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앞의 예에서 보듯 시각적 불편이 있는 사용자일 경우 제한된 기능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디자인적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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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사용하는데 다양한 잡기 방법을 보여줌으로 각기 다른 손근육의 정도에 따라 적용해 쓸 수 있다. ⓒ정지원

* 다양한 체격과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이 각각 자신에게 맞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는가?

* 다양한 사용자가 예상외의 반응이나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신체에 무리한 부담을 가하지 않도록 적절한 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 사용하는 가운데 의미 없이 반복되는 동작에 대해 가능한 한 경감하도록 되어 있는가?

* 사용자의 신체 부담을 주는 동작을 가급적이면 줄이고자 하고 잇는가?

* 부담을 주는 동작이 있을 경우 그 지속시간을 가능한 한 단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정지원은 지난 3년간 자립생활운동(IL)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복지현장에서 일하며 신체의 장애가 아닌 생활환경의 장애가 더 큰 자립의 걸림돌임을 체험하며 디자인과 연관하여 ‘모든 이들을 위한 디자인’인 유니버설디자인의 보급·확대가 절실함과 더불어 IL이념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고, 편리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나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의 유니버설디자인을 소개하며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화여대 학사·석사를 졸업했고, 현재 경성대 유니버설디자인 전공 박사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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