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면서도 피어있는 원추리 꽃. ⓒ김남숙

< 원추리 꽃 >

희미해진 그리움이 선명해지는 칠월

바라만 보다 돌아선 아픔을 묻고

허공에 흩뿌린 웃음 비가 되는가?

 

만날 수 없으면서 간직한 기다림은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장대비 속

꽃잎을 펼쳐 웃는 주홍빛 원추리 같아.

 

젖은 비에도 화려한 매무새 구김이 없고

다시 열어 보이지 못할 깊은 속내를 닫아야할 때조차

초연함을 잃지 않는 꽃이여!

 

이생의 인연 돌돌 말아 비틀린 꽃잎 뚝 떨어지는 순간까지

행여 올까 빼곡히 고개를 내밀어 깨어있는

그 끝, 한 세상이여!

원추리 꽃술에 맺힌 빗방울, 그 한 삶이여. ⓒ김남숙

비를 맞으면서도 피어있는 원추리 꽃. ⓒ김남숙

원추리 꽃이 비를 맞고 있습니다. 날개가 젖을 테니 나비도 날아들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고운 모습에는 구김이 없고, 접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서두르지 않는 초연함이 거룩해 보입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피어있는 원추리 꽃. ⓒ김남숙

원추리 꽃이 피고 지는 일상을 바라보며 들고나는 나의 하루, 일 년 사계절. 잎이 다 지고 가랑잎 위에 덮여 있어도 그 곳에 뿌리 깊은 내 사랑처럼 원추리가 묻혀있음을 압니다.

 

작년에는 100여송이가 피었다가 졌습니다. 올 해는 적어도 200송이는 필 것입니다.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지는 꽃이지만 꽃대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꽃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꽃은 피어날 것이고, 꽃송이도 더 많이 맺힐 것이고, 더 많이  피어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지만 머지않아 열매도 맺힐 것입니다. 원추리 옆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피어있는 원추리 꽃. ⓒ김남숙

위 사진은 한낮에 찍은 것입니다. 배경이 깜깜한 것은 밤이어서가 아니고 비가 내리고 해가 뜨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입니다. 원추리 꽃은 밤에는 피지 않습니다.

이미 접은 꽃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기다림을 간직한 원추리. ⓒ김남숙

날씨 좋은 날 피어난 원추리 꽃. ⓒ김남숙

김남숙은 환경교육연구지원센터와 동아문화센터에서 생태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서울시청 숲속여행 홈페이지에 숲 강좌를 연재하고 있다. 기자(記者)로 활동하며 인터뷰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숲에 있는 나무와 풀과 새 그리고 곤충들과 인터뷰 한다. 그리고 그들 자연의 삶의 모습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한다. 숲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추구해야 할 방향을 찾는 김남숙은 숲해설가이며 시인(詩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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