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허동구. ⓒ씨네서울

학교에서 집에까지 오는 길을 익히는데 3년이 걸린 동구, 공부는 안중에도 없고 시험 날이면 반평균을 위해서 결석을 해줘야하지만 학교가 너무 좋은 IQ 60의 초등학교 4학년 동구는 아침이면 누구보다도 일찍 등교하여 친구들이 먹을 보리차를 주전자에 채워놓습니다.

어떤 아이도 동구와는 짝을 하려고 하지 않지만 물 반장 동구는 학교에 가는 것이 좋기만 합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동구를 특수학교로 보내라고 하는데 허름한 치킨집 사장인 동구 아버지는 어떻게든 동구를 학교에 보내고자합니다.

교실에 주전자 대신 정수기가 설치되자 동구는 주전자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야구부에 가는데 선수가 모자라는 야구팀을 위해 야구부 코치는 동구를 받아줍니다. 야구부에 있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동구와 아버지는 뛸 듯이 기쁘지만 동구는 야구의 기본 규칙도 이해하지 못 하니 앞일이 막막합니다.

즐거운 물반장 동구. ⓒ씨네서울

아이큐가 많이 낮은 아이와 아이를 혼자 키우는 아버지의 이야기, 사실 대부분 짐작했던 대로의 스토리였지만 과장되거나 불필요한 극적인 전개와 반전이 없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편안하고 진솔하게 와 닿았습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20살 청년 초원이의 말아톤이 실화가 주는 감동과 출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꽤 호평을 받았다면, 올 겨울 개봉했던 허브는 말아톤의 성공을 후광으로 날로 먹으려했던 영화가 아닌가싶습니다.

말아톤의 어머니는 아들보다 하루만 더 늦게 죽기를 소원했고 허브의 어머니는 열일곱 딸의 생일에 일곱 살짜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어주는 무지몽매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영화 속 상은이는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데 이는 감독에서 배우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장애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도 갖추지 못한 채 만든 불성실한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숨견진 비밀 병기 동구. ⓒ씨네서울

이에 비해 '날아라 허동구'의 동구는 자칫 관객들의 눈높이를 낮추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활짝 열고 함께 웃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켜주려 하는 아버지, 아들이 집을 찾아오지 못 할까봐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려했지만 동구는 기특하게 이사 간 새 집도 찾아오게 됩니다.

집을 지키기 위하여 암에 걸렸기를 바라는 동구 아버지의 처절함이 안도의 웃음으로 터져 나오고 동구가 감은 눈을 살짝 뜨고 공을 향해 방망이를 내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동구야, 제대로 대기만 해다오"라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을성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는 아버지와 밝고 귀여운 동구, 감동을 쥐어짜내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 배제된 진실한 드라마가 주는 소박하지만 훈훈한, 파장이 긴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건 야구에서건 사람들은 보통 통쾌한 홈런이나 상대의 허를 찌르는 안타에 환호하지만 날아오는 공을 향해 적시에 방망이를 내미는 겸손한 번트 역시 소중한 한 타가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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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호기심으로 구경이라면 다 좋아하는 나는 특히나 불 꺼진 객석에서 훔쳐보는 환하게 빛나는 영화 속 세상이야기에 빠져서 가끔은 현실과 영화의 판타지를 넘나들며 혼자 놀기의 내공을 쌓고 있다. 첫 돌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에 앓게 된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3급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현재 한국DPI 여성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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