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인과 한국인의 정서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건 아마도 800년간 잉글랜드의 압제하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유사한 점이 많아서가 아닐까 합니다.

바이킹의 침략과 약탈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는 잉글랜드의 압제하에 놓이게 됩니다. 카톨릭과 교황에 대한 투쟁이 생의 과제였던 크롬웰은 카톨릭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아일랜드를 잔혹하게 통치했었고 지난 세기에 아일랜드을 휩쓸었던 대기근(Great Famine) 때에 영국정부는 방임을 넘어 이를 기회로 세금을 내지 못한 농민들의 토지를 몰수하기조차 했었습니다. 이때에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떠났었지요. 아일랜드인들은 아직도 영국정부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1차 대전 이후 다시금 민족주의에 눈뜬 아일랜드인들의 끈질긴 독립투쟁으로 영국은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 일부를 영국령으로 남겨두는 조건부 독립을 허용합니다. 이러한 투쟁 중에 무장투쟁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결성되었고 의사가 되려던 데이미언은 친구가 영국군에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형인 데디가 이끄는 IRA의 독립 투쟁에 가담하게 됩니다.

침략자에 대한 응징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조국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데이미언 형제와 동지들은 학살을 자행하는 영국군들을 응징하고 비밀 아지트를 마련하고 투쟁을 위해 전략을 세우고 군사훈련도 합니다.

밀고자의 처형, 개인이 짊어져야했던 참담한 역사의 무게

어디에나 내부의 배반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지주와 영국군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었지만 동생처럼 지내던 크리스의 밀고로 혹독한 고문과 시련을 겪고난 후 밀고자의 처형은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입니다.

축제의 기쁨은 잠시......

1922년 그들이 열망하던 아일랜드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아일랜드자유국 [Irish Free State]은 완전한 독립국이 아닌 영국 내의 자치령이라는 허울 뿐인 독립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부터 '공화국군'과 '자유국군'으로 갈라진 두 형제의 갈등은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비극을 낳고맙니다. 이념이 피보다 진했던 아일랜드 형제들의 이야기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

역사는 그저 묻혀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역사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보고 다시 파헤쳐져야함은 너무나 자명하고 그것은 남겨진 이들의 의무이자 빚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켄 로치감독은 영국 좌파 영화의 거장으로 데뷔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노동계급과 빈민, 부랑자, 자본주의 사회와 복지 국가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놓치지않고 있습니다. 1936년생으로 70이 넘은 나이의 감독이 조금도 무디어지지않은 시각으로 두 눈 부릅뜨고 돌아본 지나간 역사는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타고난 호기심으로 구경이라면 다 좋아하는 나는 특히나 불 꺼진 객석에서 훔쳐보는 환하게 빛나는 영화 속 세상이야기에 빠져서 가끔은 현실과 영화의 판타지를 넘나들며 혼자 놀기의 내공을 쌓고 있다. 첫 돌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에 앓게 된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3급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현재 한국DPI 여성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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