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만난 한 남성 장애인의 이야기를 통해 또 한 번 우리 사회의 한탄스런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겉으로 봐서는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은 경증장애인이었다. 경증의 뇌성마비라 언어 소통과 보행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꺼내기 전까지는 얼마나 뼈저린 장애의 아픔을 갖고 살았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지 보름 정도 되었는데, 참 막막합니다.”

“지금은 아는 선배네 구석방에서 얹혀 지내고 있습니다만….”

“한글을 몰라 사기를 당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오기 전, 동네 아주머니한테 돈 좀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돈을 갖고 도망쳤습니다. 제가 글을 몰라서 은행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글을 못 배운 탓이지요. 장애 때문에 못 배운 탓이지요. ”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 문턱은커녕 그 어떤 형태의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장애라는 이유로 그를 집에서 방치해두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어머니마저 재혼을 해서 더더욱 가정교육조차 받을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 마흔이 넘도록 글자를 몰라 이 지경까지 되었다며 몹시 자책을 했었다고 한다.

절망만 하고 있던 그에게 누군가가 장애인야학생 모집을 한다는 광고지를 보고 귀띔을 해주었다. 용기를 내서 야학 문을 두드렸다. 그는 현재 장애인야학교에 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한글기초와 수학기초를 공부한다. 내년 5월 초졸 검정고시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다.

글을 몰라 고통받았던 그가 문맹에서 벗어나기 위한 걸음마를 시작했다. 장애로 인해 못 배운 설움을 딛고 배움에 도전하는 그의 희망 찾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이게 우리나라 장애인 교육의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우리 사회 다수의 장애인들이 문맹의 고통까지 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교육열, 문해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통계에 걸맞지 않게 장애인 중 42.5%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중 상당수는 문맹으로 알려져 있다.

장애인들이 문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잘못된 의식, 편견, 제한된 환경 때문이다. 차별의 문제다. 엊그제 장차법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장애인들이 교육권의 차별에서 설움을 당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앞으로는 장애인들이 문맹으로 인해 수모를 겪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1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특수학교에서 공부하게 됐고 국문학을 전공해 시를 쓰게 됐다. 솟대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창작동아리 ‘버팀목’ 을 창단해 시동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이 나설 때’라는 사이트에서 스토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 장애인들의 당당한 문화 찾기라는 취지로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여 ‘불꾼’이라는 장애인문화잡지를 창간했다. 열악한 지역 장애인 문화에 불을 지피고 싶은 바람으로 발행할 계획이다. 이런 소망을 담아 문화 사각지대에 있는 지방 장애인들의 일상을 통한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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