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서 멈춰버린 휠체어리프트(명학역).

본지의 칼럼리스트들의 간담회가 있던 날, 꽃샘추위로 무척이나 추웠다. 지하철을 이용해야하는 중증장애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겠다고 약속도 했고 도우미 아주머니도 같이 동행해 주겠다고 하고, 나도 좀 더 사회로 나오는 통로가 자유롭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용기를 내어 전동휠체어를 타고 갔다 .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다. 지하철마다 엘리베이터보다는 휠체어리프트 시설이 더 많고 리프트도 불안 불안하였지만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기에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을 받아 타고 올라갔다. 명학역에서 대방역까지 1호선을 이용해야하는 나는 무사하게 지하철을 올라타고 대방역까지 왔다.

휴~,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내리려는데 지하철과 승강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전동 휠체어 앞바퀴가 빠지고 말았다. 이미 도우미 아주머니는 내려 바깥에서 나의 전동휠체어를 잡아당기려고 했으나 힘이 모자라 도울 수가 없었고 전동휠체어를 뒤로 돌려 내리려고 하는데 지하철 기관사는 나의 존재를 모르는지 문을 닫아버리고 출발하였다.

도우미 아주머니와 나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지하철 안의 시민들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으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 지 모르고 눈앞이 아찔했다.

다음역인 노량진에서 어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나는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리프트를 타고 반대편으로 가려고 올라갔는데 공익근무요원이 달려와서 반대편으로 가는 곳에는 리프트 시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하니 다시 내려가서 용산역에 가서 타든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급행을 타고 가라고 했다. 난 할 수 없이 리프트를 다시타고 내려가 급행을 기다렸다가 타고서 대방역까지 왔다. 그리고 역무원을 호출하여 도움을 받으며 3번 리프트를 더 갈아타고 모임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래도 고생은 하였지만 여러 가지로 경험이 됐다고 생각했고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남으로 올 때의 고생은 잊을 수가 있었다. 오후 9시가 다 되어서 모임을 마치고 장애인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안양까지 간다고 하니 택시가 연락이 오질 않는 것이다. 한참 후에 안내원이 연락이 와서 택시 연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시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시 대방역으로 와서 역무원을 호출 하였으나 아무도 오지 않아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마음은 조마조마하였다. 그렇게 두 번의 리프트를 이용해 명학역으로 가는 지하철이 있은 곳으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이용하려고 올라탔는데 작동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역무원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해 보더니 전동휠체어가 무거워서 그런다고 하는 것이다. 리프트는 수동휠체어만 사용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타고 올라오고 내려갔는데, 그리고 225kg까지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정말 산 넘어 산이라고 가는 곳마다 이러니 너무 힘들었다.

역무원은 영등포역 까지 가는 급행을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명학으로 가는 지하철로 갈아타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영등포역에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나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호출을 해도 대답도 없고. 할 수 없이 도우미 아주머니가 3층까지 올라가니 한참 후에 엘리베이터가 작동되는 것이다. 잠가둔 모양이었다.

명학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오면서 고생한 것을 경험삼아 맨 앞 칸의 기관사 앞에서 타기로 했다. 장애인을 보면 천천히 문을 닫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그리고 지하철이 들어 왔고 안에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귀에는 이어폰을, 또는 핸드폰을 하면서 내가 전동휠체어를 뒤로 돌려 들어가려고 해도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고 전화들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과는 빗나가게 전동휠체어의 앞바퀴가 빠져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기관사는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내리시던 어느 한 아주머니가 기관실을 두드려서 다시 문이 열리고 나이 드신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앞바퀴를 들어주어 힘들게 탈 수가 있었다.

명학역에 도착하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리프트를 타고 역사를 빠져나와 마지막 한 번의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데 지옥여행의 마지막을 장식이라도 하는 듯, 이번에는 중간에서 리프트가 멈춰 버린 것이다. 역무원이 나와서 아무리 이리저리 해도 안 되고 리프트에 매달려 내려올 수도 올라갈 수도 없고 무거워서 들어 내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어서 119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수동휠체어를 가져다 달라고 아버지께 부탁을 했다. 그런데 20분이 지나도 119는 오지도 않고 전화가 걸려 와서 어떻게 되었냐고 하는 것이다. 일단 사람은 수동휠체어로 내렸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난 119가 와서 전동휠체어를 내려줄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사람 내려왔다고 해서 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다시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119가 와서는 환자가 있느냐고 우리는 환자가 있을 때만 출동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이 추운 날씨에 장애인이 리프트에 걸려서 기다리다가 병이 나야 오시는 거냐고 하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럼 뭘 도와 주냐는 것이다. 그래서 ‘계단 중간에 있는 전동 휠체어를 내려주셔야 집을 가죠’ 그랬더니 마지못해서 밑에까지 내려주고 가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였다.

3월 6일, 장애인차별금지법도 국회에서 통과되고 많은 장애인들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장애 때문에 운전도 못하고, 장애인 택시도 서울지역이 아니면 못 간다고 하고, 지역에서 운행하는 리프트 차량은 자기 지역에서만 운행을 한다고 하고 그럼 혼자서는 외출 한번 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은 이런 막막한 현실에서 어떻게 사회로 나와야 할까요?

용기를 가지고 사회에 나오기를 도전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이동 수단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하철이 비장애인은 2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를 난 8시간을 걸려서 돌아와야 했다니 지하철 타고 지옥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또한 아직도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시설관계자들의 인식이 너무 부족하고 멀었음을 절실하게 실감하게 했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이동의 현실 앞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지옥여행을 하는 용기 있는 중증장애인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됐다고 해도 당장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은 천천히, 한 번의 양보, 작은 배려로 힘들어도 다시 지하철을 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면서 언제쯤 우리 중증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사회에 나올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무대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에서 교통사고로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장애인이 되었고, 재활치료로 만난 그림은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였다. 현재는 아내, 엄마, 화가, 임상미술치료사.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 예술을 통해 꿈, 희망, 도전 할 수 있는 교육, 전시, 공연기획, 제작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과 장애, 세상과의 소통, 나의 내면과의 화해를 통해 힐링 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내며, 그 안에서 나를 찾고 감동과 눈물로 또 다른 삶의 경험을 통해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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