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006년 7월에 아이를 낳았다. 결혼은 하였지만 나의 장애 때문에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사실에 너무도 두렵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당당하게 나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예전에 했던 나의 생각들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뿐인 나의 인생이 장애로 인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 한다면 다시는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은 우리 여성만이 누릴 수 있은 특권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우리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 기회를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15년 전에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장애인이다. 6살 연하의 남편과 5년 연예 끝에 결혼을 하기로 하였지만 시댁의 반대가 심해 쉽게 결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 했다. 장애가 있는 며느리를 누가 환영하면서 결혼을 허락 하겠는가. 특히 시아버지께서는 애는 낳을 수 있는지 진단서를 끊어 오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남편은 그 길로 집을 나와서 나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3개월이 지난 후, 시댁에서 함께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2003년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2005년 12월 31일, 나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나의 장애 때문에, 또 임신기간의 두려움과 출산 후의 육아문제로 임신을 계획하지 않았지만 하늘의 뜻인지 나는 임신이 되었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눈물이 먼저 나왔고, 주변에서도 축하보다는 근심과 걱정으로, 특히 친정어머니는 몸도 성치 않은데 애를 어떻게 낳아서 키우려 하느냐고 하시며 걱정을 하셨다. 나는 나의 장애 때문에 나의 아이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슬퍼 우울하게 임신 기간들을 보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같이 불임부부가 많아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갖고 힘들어하는 부부들을 TV에서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낳으라고 주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뻐하는 남편을 보면서 힘들지만 함께 최선을 다 해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의 임신기간은 시작되었고 나는 나의 장애로 인해(기립성 저혈압) 어지러움이 심하여 매일 침대에 누워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침대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많이 우울했다. 그러나 서서히 배가 불러오고 아기가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태동을 느끼면서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들을 보내면 나중에 후회 할 것 같아서 주변의 아기를 낳은 사람들과 통화도 자주하고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여 태교를 시작하였다.

먼저는 태교가 태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하며 비록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태아가 뱃속에서 엄마의 감정과 행동들을 모두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장애로 행동에 제한이 많아 비장애인들이 하는 다양한 태교를 할 수가 없어 인터넷을 통해서 나에게 맞는 태교를 검색하여 음악태교, 독서, 다양한 그림보기, 전래동요, 이야기, 유아동요듣기, 음식태교 등등.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태교를 하였으며 임산부카페에도 가입하여 다양한 정보교류를 하면서 임신기간을 보냈다.

나는 특히 임신기간 내내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 많이 힘들었고 내가 잘 먹지 않아 아기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식태교를 하기로 하여 태아의 개월 수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들의 음식을 찾아 먹었고 인스턴트식품이나 페스트 푸드 음식, 맵고, 짜고, 신 맛이 나는 자극적인 음식들은 먹지 않았다. 또 입덧을 할 때는 마늘장아찌를 반찬으로 먹었고, 철분제 복용으로 오는 변비 해결은 청국장 가루를 요구르트와 매일 먹었다.

그리고 임신초기에는 2~3시간 간격으로 속이 쓰려 음식을 먹어야하는데 그때는 고구마나 감자를 삶아 두었다가 조금씩 먹으니 속 쓰림과 입덧도 잠잠해 졌다(위가 비어있으면 입덧이 더 심해진다).

그리고 비타민 섭치를 위해 과일은 다양하게 매일 먹었지만 특히 토마토를 많이 먹어 주었고, 단백질 섭치를 위해 콩을 삶아 두유로 만들어 먹었고, 칼슘 섭치를 위해 우유를 하루에 3~4잔정도 먹었고 호두, 잣과 멸치, 가끔은 고기류도 먹어주었다.

그리고 좋은 생각과 예쁜 것들을 보면서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처음에는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지던 임신기간이 어는 덧 32주(임신 8개월)에 접어들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무대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에서 교통사고로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장애인이 되었고, 재활치료로 만난 그림은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였다. 현재는 아내, 엄마, 화가, 임상미술치료사.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 예술을 통해 꿈, 희망, 도전 할 수 있는 교육, 전시, 공연기획, 제작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과 장애, 세상과의 소통, 나의 내면과의 화해를 통해 힐링 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내며, 그 안에서 나를 찾고 감동과 눈물로 또 다른 삶의 경험을 통해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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