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한테 한창 전략을 설명하던 이기자 선생님은 잔뜩 인상을 쓴 인영이 엄마를 보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 은혜가 주자로 참가하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거나 허락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죄송합니다, 지금 좀 바빠서요. 운동회 끝나고 말씀하시지요.”

하고는 선수 명단을 주러 본부석으로 갔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급하게 가버리자 인영이 엄마는 더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화는 얼굴도 모르는 은혜 엄마에게로 쏟아집니다.

“대체 뉘 집 자식인지, 저 애 엄마도 미쳤어.”

그러자 다른 엄마들도 여지저기서 혀를 차며 은혜 엄마를 나무랍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런 애를 어떻게 달리기에 내보낼 생각을 하는지, 쯧!”

“자식을 구경거리 만들려고 작정했나, 원!”

은혜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아예 귀를 막아 버립니다. 용기 있게 은혜를 운동회에 참여시키라던 정원이 엄마도 그런 은혜엄마를 보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와~~아!, 와~~아!”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운동장이 떠나 갈 듯한 함성 속에 백군의 첫 번 주자로 나선 오정원이 성큼성큼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주자인 정인영은 배턴터치 지역에서 정원이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세 번째 배턴터치 지역에 서 있는 은혜한테 크게 소리칩니다.

“걱정하지 마, 은혜야! 내가 바람같이 달려가서 배턴을 넘겨줄게! 넌 천천히 걸어 들어가도 돼!”

손가락으로 막 V자를 만들어 보이는데 갑자기

“야! 뭐해?”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돌아보니 어느새 오정원이 바로 뒤로 달려오며 배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배턴을 받아든 정인영은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대로 보폭을 크게 내딛으며 시원스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연습할 때와 달리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까 김밥을 그렇게 많이 먹는 게 아니었어!’

후회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습니다.

“인영아, 좀 더 속도를 내!”

애가 탄 친구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지만 척!척!척! 하고 급하게 걸어가는 속도에서 조금도 더 빨리 나아가질 않습니다. 정원이가 벌어놓은 시간 차이를 어느새 따라잡은 청군 주자가 쌩, 하니 바람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인영이 마음은 바싹바싹 타들어갑니다.

백군 학부모 석의 엄마들도 안타깝게 발을 구르며

“에구, 쟤 땜에 우리 백군이 지겠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인영이 엄마 등에도 진땀이 흐릅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정인영이 세 번째 배턴터치 지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은혜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배턴을 받아들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한 발로 통통 뛰며 달리기 시작하자 관중석 여지저기서 웅성웅성 놀라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렇게 말렸건만 기어이 내보내는군!’

본부석 뒤 전망 좋은 곳에 마련된 귀빈석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바늘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초대한 손님들이 뭐라고 할지 몰라 더 걱정입니다.

“교장 선생님!”

이 지역 시의원이 교장선생님을 부르자 지레 놀라 혈압부터 오릅니다.

“저 선수는 장애아 아닙니까? 이 학교에선 장애학생도 선수로 출전시키는군요?”

교장 선생님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머니회 회장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어머, 쟤 좀 보세요. 한발로 어쩜 저렇게 잘 뛰지요?”

합니다.

학부모 석에서도 다들 ‘대단하다’하며 감탄하기도 하고

‘아유~, 힘이 들 텐데….’

하면서 걱정해주기도 합니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은혜가 한발 한발 나아갈수록 백군 응원석의 응원소리도 점점 커져 갑니다. 하지만 팔팔하게 시작한 은혜의 뛰는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느려집니다.

“아마 배가 아파서 그럴 거예요. 복근이….”

은혜 엄마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은혜를 데려올 것처럼 벌떡 일어섭니다. 그때 청군 응원석에서도 “이은혜! 이은혜!”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뭐야? 청군이 우리 은혜를 응원해?”

백군 응원석에선 질세라 더 목청을 높입니다. 은혜 엄마는 그만 펄썩 주저앉더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읍니다.

‘제발 넘어지지나 말아야 할 텐데….’

청군의 네 번째 주자가 은혜를 앞지르자 여영구 선생님은 몹시 걱정되는 얼굴로 이기자 선생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저…, 청군의 네 번째 주자가 벌써 들어오는데요.”

합니다. 이기자 선생님이 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소문을 들어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기자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 목표는 완주하는데 있으니까.”

그때 백군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 나갑니다.

“힘내, 은혜야!”

오정원과 정인영, 그리고 뛰어보지도 못한 네 번째 주자 김홍석이 은혜 옆에 서서 나란히 뜁니다. 그러자 청군 쪽에서도 주자들이 달려 나옵니다.

“우리도 같이 뛰어줄게!”

은혜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뭉클 솟구칩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배가 아팠지만 결승선까지는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픈 것이 훨씬 덜해집니다.

“저것 봐요! 청군 백군이 함께 뛰네요.”

인영이 엄마와 다른 아주머니들도 소리 높여 ‘이은혜!’를 외칩니다. 그러다 마침내 은혜가 결승선에 다다르자 여기저기서 “꺄호! 해냈어!”, “장하다, 녀석들!”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은혜야!”

“선생님!”

이기자 선생님이 팔을 벌리고 달려 나와 은혜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눈물이 막 쏟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다 언뜻, 활짝 웃는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여영구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순간 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처럼 창피해, 얼른 은혜를 떼어내며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야단을 치십니다.

“정인영, 이은혜! 너희들 때문에 진 거 알지? 다음 순서에서 점수 만회하지 않으면 혼날 줄 알아!”

여영구 선생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기자 선생님을 쳐다봅니다. 하지만 그런 담임에게 익숙한 4반 아이들은 까르륵 웃어댑니다.

“교장선생님, 이 학교 학생들, 정말 훌륭합니다!”

“오랜만에 참교육의 현장을 보고 갑니다. 오늘 배운 게 많습니다.”

귀빈석에 앉아 쏟아지는 칭찬을 듣는 교장 선생님은 왠지 부끄럽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을 배웅하고 난 후에 운동장으로 슬슬 내려갔습니다. 이기자 선생님을 만나면 수고했다는 칭찬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엔 오늘 운동회의 마지막 종목인 “숨은 사람 찾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자기가 뽑은 쪽지를 펼쳐 본 후에, 거기 적힌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결승점까지 함께 달려가는 게임입니다. 물론 가장 빨리 달려간 팀이 상품을 타게 됩니다. 상품이 푸짐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가방 멘 고등학생’이며 ‘반바지 입은 아저씨’ 등 사람 찾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옵니다.

선수로 나온 최민희가 쪽지를 펼쳐보더니 한숨을 내쉽니다.

“안경 낀 할머니를 대체 어디 가서 찾는담. 은혜야, 넌 뭐니?”

“난 치마 입은 아줌마.”

“에이, 내 것 보다 훨씬 쉽네.”

그렇지만 ‘학부모 달리기’가 있는 운동회 날이어서 그런지,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바지 차림입니다. 학부모 석을 돌면서 치마 입은 아주머니를 찾던 은혜가 겨우 치마 입은 사람을 만났지만 정원이 엄마였습니다.

“미안해서 어쩌니. 모래 위에선 목발이 푹푹 빠져서 달리기는커녕 걷기도 힘들단다.”

그러면서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반대쪽을 가리킵니다.

“저리가면 투피스 정장을 입은 아주머니가 계실거야. 그 아주머니께 부탁드려 보렴. 아마 싫다고 안 하실 걸.”

정원이 엄마가 시킨 대로 은혜는 투피스 입은 아주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은혜를 보자 움찔하며 조금 놀라는 것 같습니다.

“아줌마, 저랑 같이 뛰어 주실래요?”

은혜가 쪽지를 보여주자 아주머니는 두말 않고 얼른 일어서시더니 은혜 손을 잡아끌며 서두르십니다.

“우리가 먼저 가서 일등하자. 저 애들이 짝 찾기 전에.”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는 정인영이 ‘구두 신은 선생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캄캄한 하늘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불꽃 속에 선생님과 아이들, 엄마 아빠가 서로서로 손을 잡고 신나게 춤을 춥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요? 늦도록 온 동네가 잔칫날 같았습니다.

[리플합시다]2007년 황금돼지해, 장애인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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