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딸들이 첫 생리를 시작하면 부모들이 축하해 주는 분위기지만(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딸들이 생리를 하면 별로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반기는 경우는 아마 간혹 있었을 것이다.)

그 때만해도 딸들의 첫 생리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은 '이제 너도 고생문으로 들어섰구나' 였다. 그것은 여성의 성 자체를 터부시 해온 전통성에 기인한 것이다.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의 몸은 지극히 정상적인 몸이고 매월 생리하는 여성의 몸은 어딘가 비정상적인 듯이 받아들이는 모순 된 관념!

비장애여성도 이러한데 장애여성인 경우엔 어떻겠는가? 비장애여성에게 생리가 고생의 문이라면 장애여성에겐 절망의 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의 개념 자체가 그렇고 전반적인 주변 반응이 그러하다.

장애여성에게 생리란 '쓸데없는 덫'처럼 여긴다. 물론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개념에 다소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것의 정도와 차이가 어찌됐든 여성은 신체적으로 약간의 장애만 있어도 '저 몸에 그 귀찮은 것을 해서 어떡하냐?'는 소리를 한 번 쯤은 들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전신마비인 아홉 살 난 딸에게 부모가 성장억제 수술을 받도록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아이는 이미 여섯 살 때 자궁 적출 수술 및 유선을 포함한 가슴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성장을 억제하는 에스트로겐 호르몬도 과다 투여했다고 한다. 정말 쇼킹했다. 부모의 권한으로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아이의 부모들은 체구가 작을 수록 더 쉽게 이동하고 여행할 수 있다”며 “애슐리는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TV를 보는 대신에 사회적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임 수술도 애슐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자궁암과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또 애슐리가 성인으로 자라도록 내버려 뒀을 경우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될까봐 두려웠다고 덧붙였다.

부모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아이의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부모들의 편의를 위해 수술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부모들이 성폭력의 위험에 대한 언급을 했는데 물론 그러한 걱정도 있겠지만 아이가 자라 생리를 할 것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보다 여성의 성에 대해 덜 부정적이라 생각했던 미국에서 조차 이런 일이 있다니…. 그러고 보면 장애가 있어도 남성이면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장애가 약한 것이고 장애여성이면 장애가 있는데다가 여성이라는 이유가 또 하나의 장애로 작용하는 이중 장애인 셈이다. 이 말은 곧 남성의 성은 비장애, 여성의 성은 장애라는 것이다.

장애여성에게 여성이란 성은 중복 장애인 동시에 중증장애다. 우리는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달라져야만 여성의 성이 장애가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리플합시다]2007년 황금돼지해, 장애인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분위기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것에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적인 의식이 싹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 차별은 비장애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여성들은 비장애여성들이 겪는 차별보다 더한 몇 배의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문제는 그 장애인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남아선호사상과 전근대적인 남존여비사상은 장애여성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장애여성들은 가정에서부터 소외되고 무시되고 그 존재가치를 상실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여성도 이 땅에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단순한 여성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이 땅에 당당히 살아 숨쉬는 장애여성주의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장애여성주의적인 언어로서 표현하고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정한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전반적인 장애인의 문제와 여성에 대한 문제도 함께 엮어나가겠습니다. 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틀을 거부하며 장애여성의 진정한 인권 실현을 위해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http://www.wd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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