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이 올해 9월 9일 발표한 탈시설 가이드라인 원문 중 일부. ⓒUN CRPD Committee

올해 9월 9일 아태지역 정부에 최종권고를 내린 UN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동시에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 그건 바로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컨퍼런스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주최로 있었다.

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참여한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김미연 부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권리협약 국가심의 때마다 장애인들을 시설에 분리·수용한다는 명확한 공통점이 결국은 모든 나라의 이슈임을 알게 되었기에,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정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단다.

여기에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인해 전 세계 각국의 첫 번째 희생자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정신병원에 감금된 정신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인류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목격하며, 장애인권리위원회는 긴박한 혁명에 가까운 전환점을 국가에 요구하는 일환으로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되었단다.

이 가이드라인 제정 시에는 전 세계의 장애인 대표, 탈시설 운동하는 사람들, 기타 관계자들 등 500여 명의 피맺힌 목소리를 담아냈고, 코로나19 팬더믹 기간엔 Zoom등 온라인 회의를 통해서도 의견을 담아내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유린 등의 문제와 이와 관련한 인권적 관점의 해결책을 담아내려 노력했단 거다.

이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19페이지, 143항에 걸쳐 내용이 상당히 길어, 지면상 한꺼번에 다 소개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2~3차례에 걸쳐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컨퍼런스에서 논의됐던 것을 포함해 말해보려 한다.

‘시설수용 종식에 대한 국가의 의무’내용을 잠시 보면, 국제법의 의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장애인은 삶이 위협받는 환경의 시설에 계속 수용되고 있고 각국의 탈시설 과정이 장애인권리협약과 부합하지 않거나 지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전한다.

다음으로 시설수용에 관련해선 장애인의 법적 행위 능력을 실질적으로 거부하기에, 협약 12조 위반이고, 시설수용을 통해 장애인은 진정제, 기분 조절제 등의 향정신성 약물을 통한 강제 의료개입과 전기충격 치료 등에 노출되게 되니, 이는 15, 16, 17조 동시 위반이라는 거다. 자유롭고 사전적이고 고지된 동의 없는 약물투여에도 노출되기에 역시 15, 25조 위반이며, ‘평등과 비차별’ 조항인 5조에도 위반된다는 거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가 주최한 ‘탈시설 국제 컨퍼런스’에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김미연 부위원장이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Youtube 캡처

시설수용은 장애인의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 권리를 부정하므로, 모든 형태의 시설화, 시설 폐지와 시설에 대한 투자 중단, 시설 신규 입소 금지를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촉구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지원 및 서비스 부족, 빈곤 및 낙인을 시설수용 유지 및 탈시설 지체의 구실로 사용해선 안 되고, 아울러 사회통합적 계획·연구와 시범사업 또는 법 개정 필요성을 지역사회 통합 지원과 관련한 즉각적 행동 제한 등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와 관련해 가이드라인 29항에선 장애인이 시설에 살도록 선택했다거나, 이와 비슷한 주장을 당사국이 해선 안 된다고 한다. 또한, 의사결정 권리를 부정당한 이들은 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통합에 관해 처음엔 불편함 느낄 수 있고, 이들에게 시설은 단 하나의 생활환경일 수 있지만, 당사국은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개인적 성장을 제한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장애인의 ‘취약성’과 ‘약함’을 탈시설 시 새로운 장벽으로 만들면 안 됨을 가이드라인 37항에서 못박는다.

장애인의 위기와 관련해선 치료를 요하는 의료적 문제나 국가 개입, 강제약물투여를 요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로 다뤄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되게 하면 안 되며, 민간 및 공공영역에서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과 장애인에 대한 격리·분리 종식을 탈시설 과정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위원회는 강력하게 강조한다.

아울러 당사국은 장애인에게 시설을 떠날 기회를 즉시 제공해야 하며, 정신건강법령 또는 기타 법률로 인해 부여된 어떠한 형태의 구금이라도 폐지해야 하며, 장애에 의한 비자발적 구금도 금지하고, 시설 신규배치, 신규 입원과 입소, 기존 시설의 보수 및 개조 등도 금지해야 함을 가이드라인에서 강력히 말한다.

한편, 시설거주인의 즉각적 탈시설-자립생활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모든 지원 제공 방향으로 투자해야 함을 언급한다. 이에 따라, 30항에선 통합적 지역사회 지원체계와 주류 서비스의 지속가능성 보장을 위한 국제협력 예산 포함한 예산의 배정을 역설한다.

가이드라인 75~82항을 통해선 탈시설 장애인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되기 위한 전제로 ▲장애인의 의지, 선호 존중 및 장애인이 원할 시 이들의 완전한 참여와 폭넓은 지원 네트워크 보장하는 장애의 인권 모델에 따른 지원서비스 개발, ▲지원서비스를 위한 재정지원 모델은 유연하고, “공급”에 의해 제한되지 말 것,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이 받는 지원을 선택·통제하며 개인의 자율성, 자유, 사생활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는 등의 사항을 말한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가 작년 7월 26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탈시설 정책 즉각 철회를 외치고 있는 모습.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

탈시설 가이드라인의 극히 일부만 말했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시설수용은 선택이거나 복지서비스 아닌 감금 형태인 인권침해임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경고한다. 탈시설 되려면, 지원서비스가 장애인의 의지, 선호 및 사생활 존중 등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라야 하고, 누구랑 어디서 같이 살지 등의 의사결정 권리가 장애인에게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탈시설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탈시설에 제동을 걸려는 입장에 선 자들은 시설에서 나가면, 지역사회의 지원서비스가 부족해 강제 탈시설 우려가 있으니 시설과 지역사회 중에서 자신이 살 곳을 장애인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면 시설에 입소 시에도 시설과 지역사회 중 자신이 살 곳을 장애인이 선택하도록 했는지도 질문해봐야 한다.

그런데 시설에 입소 시 ‘나를 시설에 들어가게 하시오’라고 하며 자의적으로 입소한 경우는 얼마 되지 않고, 대다수는 선택권 없이 비자의적으로 시설입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그리고 시설은 단체생활이라, 자기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잘 수 없고, 직원이나 시설장의 말을 듣고, 시설 법인에서 신봉하는 종교를 의무적으로 믿어야 하는 등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박탈된다.

또한, 지역사회 서비스가 장애인의 욕구와 삶의 필요, 선호, 의지를 반영한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게 아니다. 가정의 소득수준과 의료적 기준에 얽매인 의료적 구 장애등급 등에 기반한 장애의 의료적인 모델에 따른 서비스들이 대부분이며 예산도 전혀 충분치 않다.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따라 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니, 시설 거주 장애인에겐 사실상 시설에 있을 수밖에 없도록 종용받는 상황을 지역사회 상황을 국가가 자초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의료적 모델에서 인권적 모델에 따른 정책으로 계속 전환하려는 국가의 의지는 사실상 전혀 없기도 하다.

장애인의 선호가 들어가지 않은 서비스에 자기결정권 박탈된 시설입소의 상황이 유지된 상태에서 시설과 지역사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탈시설 논란을 계속 키우는 거야말로 탈시설에 제동을 걸려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시간을 버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장애인에겐 고문과 같이 느껴진다.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 ACC.ⓒ국립재활원

또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의사결정 확인이 어려움은 물론 선택을 확인할 수 없기에 시설에서 나오는 건 강제적 탈시설이라며, 탈시설을 반대하는 것 또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떤지 컨퍼런스에서 질문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헝가리의 한 활동가는 장애인의 의지와 선호를 파악할 시 언어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언어가 잘 안 되는 사람도 자신만의 의사소통 방법이 있으며, 참을성을 갖고 신뢰와 관계 구축이 중요함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에게 맞는 조력 의사결정을 제공했던 한 사례를 소개하며 의사소통이 탈시설의 변명이 되어선 안 됨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내용을 듣고 정말로 맞다는 생각이 들며 내 안에 있는 의문점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언어로 의사소통되지 않는 사람들은 보완대체의사소통(AAC)와 그림, 몸짓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력 의사결정을 제공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완대체의사소통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거의 없으며 언어만을 의사소통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결국, 비장애 중심의 의사소통은 장애인에겐 ‘평등과 비차별’이 아닌 차별이며, 시설수용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는 거다. 따라서 시설수용은 5조 ‘평등과 비차별’ 조항도 정면 위반하는 거란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이와 관련해 탈시설 가이드라인 59항은 장애를 이유로 한 시설수용은 금지된 형태의 차별임을 법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시설수용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임을 아예 선언하는 식으로 조항을 신설하고 시설을 인정하는 모든 조항을 폐지하는 것도 탈시설에 관련한 ‘평등과 비차별에 대한 권리’ 이행의 일환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아까 시설로의 투자 중단 및 시설거주인의 즉각적 탈시설-자립생활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모든 지원 제공 방향으로의 투자가 가이드라인에 있었던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장애인복지법에 시설로의 투자를 명시한 제81조 같은 조항을 삭제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안에는 장애인거주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81조(비용 보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애인복지시설의 설치ㆍ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이제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정리해 보겠다. 국가는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폐지하며, 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하며, 시설과 지역사회를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탈시설을 위한 조치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 시민사회 단체 등과 함께 논의에 나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년 8월 2일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보건복지부

그래서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년에 발표한 탈시설 로드맵을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르는 것으로 다시금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국회에 올라온 탈시설 지원법도 통과시키는 등 시설수용 생존자와 시설 거주인들이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시작점과 계기가 돼, 탈시설이 결국엔 현실로 우리 곁에 가까이 오는 세상이 되길.

다시금 이 말을 명심해야겠다.

‘시설수용은 복지서비스가 아닌 감금이다!!’ <다음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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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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