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너와 나의 아르카디아’ 열연 장면. ⓒ서인환

발달장애인 극단인 ‘멋진친구들’이 지난 10일부터 3일간 대학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5층 이음아트홀에서 ‘너와 나의 아르카디아’ 공연을 하였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는 2010년 극단 멋진친구들을 창단하여 그 동안 여러 차례 연극을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아왔다.

연극의 고전인 세익스피어 4대 비극인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 등을 공연하였는데, 연극 제목을 보면 ‘위로받을 햄릿’, ‘오셀로 THE 클라운’, ‘맥베스를 쓰는 세익스피어’ 등 창작극을 하기 위해 원문을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것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발한 원작 비틀기를 통해 창의성을 확보하고, 차별화하면서도 다양성의 인정을 호소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극단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었다.

관객들에게 고전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함으로써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발달장애인이 소화하기 편하도록 공연 시간과 배역을 조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면서 고전 연극을 시도함으로써 연극의 기본을 익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다. 관객들에게 원문 비틀기를 통한 흥미, 발달장애인의 표현력과 예술에 대한 끼를 보여줌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극단 멋진친구들은 애초 인형극으로 출발한 극단이었다. 발달장애인 배우들이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표현하기에 인형극이 잘 맞았고,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소재나 전달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전국을 다니며 장애인식개선교육의 일환으로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하는 ‘요술지팡이’ 등의 인형극은 춘천인형극제 등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2021년부터 멋진친구들의 연극은 지금까지의 시도와는 좀 다른 양상을 가진다. ‘소중한 동행 우리는 산티아고로 간다’는 청주국제액팅어워즈에서 은상을 받았는데, 고전의 비틀기도 아니었고, 인형극도 아니었다. 연극을 시작한 당시의 배우들이 10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성장하였고, 이제는 이 사회에 통합하기 위한 도전과 모험, 그리고 차별에 맞서고 자립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이러한 도전과 시도는 극단으로서는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했다.

2022년 무대에 올린 ‘너와 나의 아르카디아’에서 아르카디아는 낙원을 말한다. 이상향을 말하는 ‘동경의 유토피아’나 파라다이스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인간의 세계가 아닌 신의 세게 같은 완벽한 세상에서는 장애가 없을지도 모른다.

유토피아는 장애가 있어도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장애가 없는 것일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인 가나안과도 아르카디아와는 다르다. 젖은 우유로서 목축을, 꿀은 농업으로 당시 농사를 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풍요로운 땅을 말한다. 노예로 살면서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착취당하는 것에서 해방되어 배고픔이 없는 세상을 가난안으로 보았고, 그것은 자유를 찾은 해방의 희망찬 땅이다.

예술에서 말하는 아르카디아는 명예와 권력, 탐욕과 욕정이 없는 곳이다. 무릉도원은 상상의 장소이지만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실존의 장소다.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목축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생과 행복을 누리는 목가적 장소이다. 아르카디아는 포용의 자연적인 사회로 에덴동산처럼 권력이나 명예가 필요 없는 평등의 사회를 말한다. 개인의 차이가 문제 되지 않는 환경이 이상적으로 갖추어진 무장애 포용 공간이다.

발달장애인 극단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시도를 할 시기가 되었다. 장애인문화예술로서 대중 문화예술의 한 영역이 될 수 있을지의 문제는 발달장애인이 이 사회의 편견을 부수고 통합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닮았음을 발견하게 한다. 드라마터그는 연극의 대본부터 평가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자로서 이 역할은 작가 겸 연출가 오채민이, 연출은 연출가 변영후(활동명 변율)가 맡았다.

대학로에서 전문 극단을 운영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예술감독을 맡아준 하경화 교수와의 인연으로 극단 멋진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지하연습실에서 장시간 연습을 하며 마치 은둔생활을 하듯이 생활하는 극단들의 일상이 발달장애인들의 생활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극연습을 하는 장면과 무한 경쟁 사회에서 차별받고 고정관념으로 멸시하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격리된 발달장애인의 삶과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 문화예술을 상징하여 좀비로부터 피해 숨어 있는 장면을 서로 겹쳐 극중극(Play within a play) 기법으로 대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비장애인의 세계는 좀비의 세계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이니 좀비사회는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비정한 사회다. 등장인물들은 좀비를 피해 대형마트 지하창고로 도망쳐 들어온다. 여기가 물품이 많아 낙원일지 모른다고 호기심이 말하자, 도라에몽은 챙겨온 먹을 것을 먹는다. 소프라노는 배가 고프다고 하고, 호기심은 세트장이니 다 가짜라고 말한다. 무대 앞에 연출이 나타나 왜 대본대로 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연극연습 장면과 좀비를 피해 숨은 장소가 오버랩 된다.

출연 배우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도라에몽(이소정扮)은 도움을 주는 해결사 역할을 맡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따지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캐릭터다. 호기심(조태환扮)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품는다. 푸바오(정승환扮)는 대한민국 최초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판다의 이름(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의미)답게 여유와 평화를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소프라노(김예은扮)은 음악은 힘이라며 노래를 좋아한다. 야생마(신용철扮)는 남자다움과 순수함을 가진 리더격 역할을 한다. 더빙(이예근扮)은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좋은 연기를 하고 싶어한다. 객원 배우로 연출(배시현扮)은 청년실업자로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피해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좌절감에 루저라 여겨 자신감을 잃었지만, 연출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늘 혼자다.

연극 ‘너와 나의 아르카디아’ 커튼콜 장면. ⓒ서인환

배우들의 성격들을 보면, 연출은 발달장애인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두려움을 학습하게 되어 새로운 도전을 기피하고자 하는 내면의 브레이크이다. 장애인들에게는 사람들의 지상의 세상이 바깥세상인데, 호기심을 갖게 한다. 왜 나가보지 않는 것인지 충동감을 보태는 것은 도라에몽이고, 결정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야생마이다.

푸바오의 열린 마음과 소프라노와 더빙의 예술향유에 대한 배고픔과 재능은 발달장애인의 사회로부터의 격리에서 포용으로 가기 위한 발달장애인들의 적극적 참여 정신을 넘어 이 문제를 장애인예술문화의 문제로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각 배우의 이름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야생마는 늘 단역만 맡아 왔다.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고 있지만, 아직 야생마처럼 좌충우돌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이고 가능성이고 리드할 수 있는 힘이다.

도라에몽은 늘 먹을 것과 여러 물건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수다쟁이다. 하지만 따지고 수다를 떠는 것이 뜻을 모으고 문제를 발견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푸바오는 평화주의자이지만 현실과 타협하려는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 지하창고에서 많은 물품을 보고 여기서 행복하게 살자고 말한다. 호기심은 동기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쉽게 믿지 않으며 의심을 하여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여기서 호기심이란 의심보다는 관심의 의미가 강하다.

배우들은 각자 성격에 맞추어 가족도 없는 이곳에서 빨리 나가자는 의견과 여기서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문제는 연극연습을 계속하자는 것으로 일단 덮어버린다.

산타와 순록이 사는 마을에 대한 공연 연습이 이어지는데, 호기심이 빨간 코 루돌프다. 산타는 야생마이다. 사람들이 코가 다르게 생긴 것을 놀리고 있는데 산타(아저씨)가 나타나 말린다. 산록들은 가던 길 가시라고 말하면서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다름과 차이, 공평의 문제를 산타 이야기로 풀어본다. 호기심이 코에 색칠하겠다고 하자, 색칠한 것부터가 차이라서 놀지 않겠다고 말한다. 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자체가 역차이 그 자체라는 것이다. 야생마는 루돌프의 코가 밝아 썰매를 이끌 수 있다며 함께 하기를 원하고 이를 루돌프가 동의한다. 루돌프가 멋지다며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하려고 하자 연출이 화를 내며 대본대로 하라고 소리친다. 순록 배우들은 행복한 것이 뭐가 문제냐며 왜 루돌프와 친하게 지내면 안 되고 왕따를 시켜야 하느냐며 연출을 나무란다.

연출이 혼자가 좋다는 말에 부정적인 상처가 있을 것이라며 야생마가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감수성을 가지고 공감하는 접근을 한다. 같은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는 것이다.

연출에게 우리는 친구인데 연극을 하려면 친구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호기심이 말하자, 연출은 연극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이때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야생마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좀비가 창궐하니 뭉쳐 다니라는 방송이 나온다. 서로 뭉치자는 의견에 연출은 그래도 자신은 후졌다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연극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며 발달장애인이 왜 연극을 하는지 암시한다. 사회로 나아가는 참여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배우 모두가 연출에게 손을 내밀어 파이팅을 하자 연출도 마지못해 함께 하게 되고 모두가 좀비를 물리치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블랙 코믹한 대사와 숨어 있는 대사의 의미,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은 작품의 예술성과 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특히 배우들의 이름은 개성을 나타내도록 하여 표현력을 키우는 것을 고려하여 지은 것이다. 인간 내면의 감정과 재능과 욕구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각자의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다. 반가운 것은 배우 중 4명이 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근로로 인정받아 ‘더휴’라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의 직원이 되어 앞으로 안정적인 배우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지독한 편견과 대치 속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 연극인의 환상 속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 이야기는 막연하고 드라마틱한 환상이 아니라 실제 멋진친구들이 겪어내고 있는 진짜 삶의 이야기이며 너와 나, 우리의 아르카디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는 작품으로 멋진친구들의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색다른 무대가 되었다.

연출을 맡은 변영후는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만나 같이 아르카디아에 도착했는지는 잘 모르겠어도 최소한 만난 것은 분명하다며, 서로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것, 그리고 단순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과 생활 속에 두는 그것이 함께하는 것이고, 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낯섦에서 시작되어 서로 익숙해지고 있으며, 아르카디아에 도착시켜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단하고 험난할지라도 이미 내디딘 이들의 여정에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BON Voyage!!!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안전한 참여가 문화예술과 일상생활 영역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항해의 인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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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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