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시락’의 한 장면. ⓒ서인환

서울성북미디어문화누리에서 오디오작가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 ‘하다’ 등이 주최한 ‘2022 청소년 문화축제’가 지난 3일 ‘시작’이란 주제로 열렸다. 오후 2시 개막식에 이어 배리어 프리 영화 개막작으로 ‘우리가 꽃들이라면’이란 영화가 상영되었고, 이 영화의 김율희 감독과 이지봄 배우가 참석하여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꽃들이라면’이란 영화는 영화감상을 좋아하는 시각장애인 정우가 늘 영화를 털어놓고 있는데, 하루는 친구 성현이와 같이 영화를 보다가 아무런 대사가 없는 화면이 궁금하여 어떤 장면인지를 묻는다.

상현은 무심결에 ‘그냥 서 있다’고 대답한다. 눈으로 보는 상현에게는 당연한 대답이 정우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정우가 눈을 보던 꿈같은 지난날을 그리워하자, 상현은 친구를 위해 화면을 해설하는 내레이션을 쓰기로 한다.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에게 화면을 해설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와 누구나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가치봄 영화가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이라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누구나 동등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함을 관객들에게 일깨워주는 영화다. 지역의 장애인인권영화제나 가치봄 영화제, 독립영화제 등에서 여러 가지 수상 경력을 가진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본 시각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에 감사하면서 앞으로 영화를 보는데 편의 제공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게 하였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시각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체험을 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화면해설 작가나 성우를 꿈꾸는 가치봄 영화 제작 초년생들에게는 장애인들과 함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공감하게 하였다.

축제 기간이 이태원 참사 추모 기간이어서 공연은 모두 취소가 되었고, 영화상영과 전시회만 운영되었다. 하지만 영화만으로도 풍성한 성과를 거두었다.

행사 기간 중 오전에는 우정이란 주제로 ‘우리가 꽃들이라면’, ‘별들은 속삭인다’, ‘유빈과 건’, ‘오리무중’ 등 4편이 상영되었고, 오후 2시에는 소통이란 주제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유월’, ‘우리 엄마는 거리의 마법사’, ‘의문의 메시지’(공포 스릴 영화) 등 4편이 상영되었고, 오후 4시에는 성장이라는 주제로 ‘변성기’, ‘털보’, ‘도시락’, ‘엄마 얼굴 그리기’, ‘귀신’, ‘셔틀콕’ 등 여섯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작품성이나 관객 호응도로 오한울 감독의 ‘도시락’이란 영화가 돋보였다. 청소년기에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변화나 문제들은 공감이 가지만, ‘도시락’만큼 진한 여운을 남기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나 유정은 시각장애인인데, 동생 유안과 집에 있다. 아빠는 출장 중이다. 유정은 동생을 위해 음식을 한다. 동생에게 잘 해주고 싶지만 물을 엎지르기도 하고 서툴다.

유안은 그런 누나를 위해 집안일을 돕는다. 걸레질도 하고 누나를 위해 뭔가 할 일이 없는지 찾는다. 유정이 자신을 위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나가 놀기를 권하지만 유안은 아빠가 없을 때에는 자신이 가장이라고 했다며 누나와 함께 있으며 도울 것을 찾는다.

유안이 학교에 갔는데 수돗물에 녹물이 나와서 급식이 취소되자 아이들은 엄마에게 도시락을 가져다 달라고 전화를 한다. 유안도 누나에게 전화를 하는데, 당연히 도시락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누나로서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잘할 자신이 없어 시무룩하다. 냉장고의 식재료들을 찾아 주먹밥을 만들지만 크기가 제각각이다. 나름 꾀를 내어 토토로 인형 도시락을 만들기로 한다. 하지만 모양이 토토로 인형처럼 되지 않고 엉망이 되어버렸다.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가지만, 도시락을 차마 주지 못하고 사 온 햄버그를 전해준다. 보이지 않아 속상하기도 하고 동생을 잘 돌봐 주지 못한 마음에 시무룩한 유정의 감정 표현이 관객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유정은 집에 돌아와 도시락의 주먹밥을 꾸역꾸역 먹는데, 목이 막힌다.

동생 유안과 유정은 저녁으로 자장밥을 먹는데, 유안이 식탁 주변에 떨어져 있는 밥풀과 양념 부스러기를 발견한다. 설거지를 하다가 유안이 주방 끝에 놓인 도시락을 발견하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자리에 누워 유안이 유정에게 도시락을 두드리며 누구 주려고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유정은 그냥 심심해서 만들었다고 답한다. 유안이 도시락을 열어 토토로 인형 도시락의 모양을 유정의 손을 잡고 만져가며 설명한다. 그리고 너무 예쁘다고 말한다.

안도감이 생긴 누나에게 다시 누구 주려고 만들었느냐고 묻자, 동생 주려고 만들었다고 말한다. 유안은 내일 아침 이 도시락을 먹겠다고 말하고 도시락을 가지고 주방으로 나간다. 유정은 유안이 누워 있던 자리로 돌아눕자 참았던 눈물이 치밀어 얼굴을 감싼다. 주방으로 간 유안의 도시락 외에 주방 끝에 엉망이 된 누나가 만든 도시락이 놓여 있다. 동생은 누나를 위해 도시락을 제대로 만들어 누나가 만든 것으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의 마음과 동생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 씀씀이가 관객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주었다. 이 영화의 화면해설을 맡은 오디오해설 작가와 성우는 먼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는지 장면의 내레이션과 해설의 음성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영화 ‘엄마 생신 선물하기’의 한 장면. ⓒ서인환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영화는 ‘엄마 생신 선물하기’다. 시각장애인 유진이 엄마의 생일 선물로 엄마의 초상화를 그린다. 저시력인이 엄마의 사진이 담긴 아이패드를 켜 놓고 확대해서 자세히 보고 축소해서 전체 구도를 살피면서 사진을 자세히 관찰한다. 수없이 확대와 축소를 통해 그림을 그린다. 도화지를 고정시키기 위해 테이프를 붙여 놓고 밑그림부터 점점 진한 색으로 채색해가면서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을 다큐로 찍어서 보여주었다.

시각장애인이 화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관객들에게는 쇼킹한 일이지만, 엄마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집중력과 솜씨에 놀라게 한다. 그리고 유진의 작품들이 이번 축제에 전시되고 있어서 더욱 관심사가 된 것이다.

‘엄마 생신 선물하기’ 영화의 화면해설은 성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컴퓨터 음성을 사용하였다. 컴퓨터 음성이 남성인 경우 여성의 음성보다 조금 부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그런대로 잘 소화하고 있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게 컴퓨터 음성합성 기술을 이용하는 해설의 시험작인 셈이다.

그림 그리는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름을 빨리 돌리는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화면해설이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전혀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설을 통해 그림 그리는 장면을 충분히 상상하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에 관심이 없던 관객이라도 그림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진의 여러 작품들이 서울성북미디어문화누리 1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3D 프린트를 이용하여 판화로 그림을 만들어 촉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점자일람표를 보고 점자를 만들어 본다거나, 여러 가지 촉각 자료들을 볼 수 있도록 전시도 하였다. 화면해설 가치봄 영화 제작을 어떻게 만드는지 실제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직접 수어를 배워 제작해보거나, 해설을 자기의 목소리로 제작해 보는 체험은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많은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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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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