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시설 설치 규칙의 화장실 규정(1994). ⓒ국가법령정보센터

최근 휠체어 사용자들은 화장실 이용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 워낙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적기도 하지만, 사회 인식의 변화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그동안 장애인이 주로 이용해 왔던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도시철도 역사와 같은 여객시설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물론이고 일반 건물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까지도 비장애인들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비장애인들의 이용 증가는 상대적으로 휠체어 사용자의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비장애인의 장애인용 화장실 이용 증가는 첫째는 장애인용 화장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장애인 전용 화장실”로 시작되었고, 따라서 장애인 전용이므로 장애인 외의 사람들은 이용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1998년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이 시행되면서 편의시설에 대한 이용 대상자가 장애인에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으로 확대되었고 장애인용 화장실은 더 이상 장애인만 이용하는 화장실이 아닌 노인과 임산부 및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의식이 확산되었다.

둘째는 장애인용 화장실의 편리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용 화장실의 넓은 공간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함께 이용하기에 편리했고, 캐리어 등 짐을 많은 사람들도 짐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어 편리했다. 사람들은 넓고 쾌적한 장애인용 화장실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는 이용자가 적기 때문이었다. 이용자가 적기에 상대적으로 청결했고, 오래 사용해도 부담이 없었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화장실 사용자가 많을 경우 사람이 적은 장애인용 화장실은 좋은 대안이었다. 게다가 이용하는 장애인도 적어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넷째는 노인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급격히 늘기 시작했고, 노인층은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선호했으며, 좁고 이용자가 많은 일반 화장실보다는 넓고 이용자가 적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선호했다. 거기에 장애인용 화장실에 설치된 대변기 손잡이는 앉았다 일어서기 힘든 노인들에게 편리함을 주면서 장애인용 화장실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장애인등편의법의 화장실 규정(1998). ⓒ국가법령정보센터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인프라가 뒷받침 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의 정식 법적 용어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에 의하면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이다(단, 이 글에서는 관용적 표현인 장애인용 화장실로 사용한다). 즉,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화장실이라는 의미이다.

장애인등편의법 이전의「장애인편의시설 및 설비의 설치 기준에 관한 규칙(1994)」에는 “장애인용 화장실”로 되어 있었고, 현재의「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교통약자법 시행규칙) 별표1(이동편의시설의 구조·재질 등에 관한 세부기준」에는 “장애인전용화장실”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보건복지부의 법률에서는 ‘장애인용 화장실’(장애인편의시설 설치기준, 1994)에서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장애인등편의법, 1998)로 확대되었고, 국토교통부 법률에서는 현재에도 여객시설의 화장실은 ‘장애인전용화장실’(교통약자법, 2006)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장애인등편의법」과「교통약자법」에서 장애인용 화장실의 이용 대상을 다르게 하고 있어 혼란을 주고 있고,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도 현재「교통약자법」의 ‘장애인전용화장실’이라는 표현을 개정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약자법의 화장실 규정(2006). ⓒ국가법령정보센터

이처럼 이미 1998년「장애인등편의법」에서 장애인용 화장실의 이용 대상자를 장애인에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으로 확대 했지만, 대상자만 확대했을 뿐, 인프라구축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재「장애인등편의법」에 의하면 공공건물 및 근린생활시설에서의 장애인용 화장실의 설치 비율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다. 남자용과 여자용을 별도로 설치하도록만 되어 있다.

2008년도부터 시행되고 있는「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BF인증) 건축물 기준」에 의하면 일반 등급의 기준은 최소 1개 이상의 장애인 등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남녀 별도)을 설치하는 것이며, 우수 등급은 1층에 기본적으로 설치되고 전체 층수의 30% 이상 설치되는 것이고, 최우수 등급 기준은 1층에 설치되고 전체 층수의 50% 이상에 설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법률에 의하면 장애인용 화장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건물이라도 남녀 각각 1개씩만 설치하면 법을 지키는 것이 된다. BF인증을 받는다고 해도 일반 등급은 받을 수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대부분의 건물에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1층에 남녀 각각 1개씩만 설치된다.

장애인등편의법의 이러한 규정은 장애인용 화장실이 여전히 장애인만을 위한 화장실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 출현율은 5% 대이다.

따라서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장애인용 화장실은 전체 화장실의 5% 수준이면 된다. 건물에 남녀 각각 1개씩만 설치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준에 근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될 당시의 장애 출현율은 3% 대 수준이었다. 문제는 현실은 장애인용 화장실의 사용자가 장애인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위에서 쓴 것처럼 노인들은 물론이고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들도 모두 장애인용 화장실을 사용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현재 교통약자의 수는 전체 인구의 29%에 달한다. 만약 교통약자용 화장실이 된다면, 전체 화장실의 29%를 교통약자용 화장실로 확보를 해야 수요와 공급이 맞는다.

하지만, 장애인용 화장실의 인프라는 장애인전용화장실일 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이용자는 교통약자까지 약 24%(장애출현율 5%, 교통약자 29%)가 증가한 셈이다. 당연히 장애인용 화장실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교통약자가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또는 교통약자까지 이용대상자를 확대한다면 그에 걸맞게 장애인용 화장실의 설치 비율도 현실화해야 한다.

BF인증기준의 화장실 기준(2008).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용 화장실의 설치 비율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첫째, 교통약자 비율만큼은 아니더라도 BF인증의 최우수 등급 수준인 1층을 포함한 전체 층수의 50% 이상의 층에 장애인용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

둘째, 그 외의 층에는 일반 남녀 화장실 내에 칸막이 출입구의 유효폭이 0.9 m 이상이 되고, 대변기 전면에 1.4×1.4m 이상의 활동공간을 확보한 장애인 겸용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

셋째, 일반 화장실의 일부 칸에는 대변기 손잡이를 설치하여 노인들이 일반 화장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1층에는 장애인용 화장실 외에 가족화장실을 설치하여 영유아 동반 가족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개선을 위해 장애인등편의법, 교통약자법, BF인증 기준을 개정하여야 한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이제 더 이상 장애인용 화장실이 아니다. 이미 장애인을 포함한 노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들이 함께 이용하는 화장실이 되었다.

지금처럼 이용대상자만 확대하고 장애인용 화장실의 설치 비율을 늘리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장애인의 몫이 될 것이며, 정부의 이용대상자 확대는 장애인의 접근권 박탈을 담보로 하는 생색내기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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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융호 칼럼니스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서울시 명예부시장(장애)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에서 유니버설디자인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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