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빼놓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 장애인권운동의 금언(金言)으로 꼽히는 구절이다. 장애 인권 운동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당사자주의이다. 당사자주의는 권리 운동을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권리를 주장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사자주의는 장애인 당사자를 담론의 객체에서 담론의 주체이자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 장애 인권의 패러다임을 ‘장애인들을 배려하자’가 아닌 ‘우리의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인식으로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이제 장애 권리 운동에서 당사자주의는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장애인 단체 대표들이 당사자이며, 자립생활센터 등의 센터장 역시 당사자가 맡고 있다. 아예 내규나 회칙으로 대표의 자격을 장애인 당사자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주의는 장애 인권 운동의 인식 전환을 혁신적으로 이루어낸 것이 확실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온다. ‘당사자’는 무엇인가? ‘당사자의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혹자는 장애인단체나 기관의 종사자가 비당사자 비율이 높은 것을 지적하면서, 당사자단체의 요건을 강화하여 장애인 당사자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비율을 법률이나 규정으로 명문화하려면 당사자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당사자의 기준과 범위 역시 정해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의 기준은 장애와 장애인의 개념이 변화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이지 않다. 당사자를 법적 기준과 의학적 장애 상태로 규정해야 하는가, 사회적인 낙인과 차별의 경험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장애 정체성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도 없다.

당사자의 기준을 현재의 의료중심적인 법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가장 비합리적이고 부당하다. 절단장애와 같은 몇 가지 유형은 그러한 논란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 장애와 질환, 특성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정신장애의 경우, 법적으로는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재발성 우울장애, 강박장애, 기질성 정신장애, 투렛장애, 기면증이 규정되어 있다. 종전에 규정되어 있던 것은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재발성 우울장애이며, 나머지는 2021년에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새롭게 추가되었다.

강박장애, 기질성 정신장애, 투렛장애, 기면증 당사자들은 이제 법적으로도 확실하게 정신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그러나 2021년에 법이 개정되었으니 2020년까지는 이들은 장애인이 아니었던 것인가? 이전에는 정신질환자였고, 2021년부터는 정신장애인인가?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들은 ‘오늘부터 장애인’인가?

이들 당사자의 장애는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정체성으로도 모두 2021년 이전에 구성되었다. 이들 스스로가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장애인으로서 차별과 어려움을 겪었고,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정소송을 거쳐 시행령 개정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정신장애 유형 당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으로 등록했다고 해서 없던 장애가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장애 역시 판정 이전부터 구성되었고, 장애 등록 절차는 자신의 장애를 재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장애 구성이 먼저이지, 장애 등록이 먼저가 아니다.

발병 기간이 짧으면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정신질환자인가? 발병 기간이 짧음에도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가 있으며, 그로 인한 차별 경험을 겪게 된다. 그러한 당사자도 만성 정신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된다. 의학적으로 경증 혹은 경증 판정조차 받지 못하는 당사자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따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떤가? 어떤 장애인은 극심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지만, 어떤 장애인은 비교적 덜한 차별을 겪으며, 심지어는 차별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별을 느끼지 못하는 당사자를 장애인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장애가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장애 정체성이 있다면 당사자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떤 장애인, 특히 중증 발달장애인은 자신을 장애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조현병 당사자가 자기 인식이 없거나 편견 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증 발달장애인과 조현병 당사자를 당사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 ‘세바다’에서는 신경다양인 당사자의 기준을 “신경다양인은 신경다양성을 가진 당사자이며, 그 기준은 의학적 기준에 따르기보다 신경다양인 회원 각자의 정체성에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는 이 기준 역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어떤 당사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결국 어떠한 개념을 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개념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이 폐단에 이른 것이 현재의 장애등록제이다. 장애와 장애인의 개념이 변화하는 지금, 당사자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배제되는 당사자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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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회로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경다양인들은 어떻게 살까? 불행히도 등록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딱지에 가려져서, 미등록장애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다양인이 사는 신경다양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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